[파스카 성야] 예수님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태 28,1-10)

2020. 4. 11. 오전 5:33:16

글자

2020411일 토요일

[성토요일]

성토요일에 교회는 주님의 무덤 옆에 머물러 주님의 수난과 죽음, 저승에 가심을 묵상한다. 그리고 기도와 단식을 하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린다.
교회는 미사를 드리지 않고, 제대는 벗겨 둔다. 장엄한 파스카 성야 예식을 거행한 뒤에야 부활의 기쁨이 찾아오고, 이 기쁨은 50일 동안 넘쳐흐를 것이다.
이날은 노자 성체만 모실 수 있다.
교회는 고해성사와 병자 도유를 제외하고 모든 성사를 거행하지 않는다.


[파스카 성야] 예수님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태 28,1-10)

   

1독서<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 1,12,2)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4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5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7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 그대로 되었다.

8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0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15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6 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궁창에 두시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화답송 시편 104(103),1-2.5-6.1012.13-14.2435(30 참조)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시옵니다. 존엄과 영화를 입으시고, 광채를 겉옷처럼 두르셨나이다.

땅을 기초 위에 든든히 세우시니, 영영 세세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바다로 땅을 옷처럼 덮으시니, 산 위까지 물이 가득 찼나이다.

골짜기마다 샘물 터뜨리시니, 산과 산 굽이굽이 흘러내려, 하늘의 새들은 그 곁에 깃들이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나이다.

당신 거처에서 산에도 물 대시니,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가축을 위하여 풀이 나게 하시고, 사람을 위하여 나물 돋게 하시나이다.

주님, 당신 업적 얼마나 많사옵니까! 그 모든 것 당신 슬기로 이루시니, 온 세상은 당신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하옵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3독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갔다.>(탈출14,1515,1)

*이 독서는 결코 생략할 수 없다.

1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16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17 나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너희를 뒤따라 들어가게 하겠다. 그런 다음 나는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18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9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서서 나아가던 하느님의 천사가 자리를 옮겨 그들 뒤로 갔다. 구름 기둥도 그들 앞에서 자리를 옮겨 그들 뒤로 가 섰다.

20 그리하여 그것은 이집트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 사이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자 그 구름이 한쪽은 어둡게 하고, 다른 쪽은 밤을 밝혀 주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아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땅으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22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23 뒤이어 이집트인들이 쫓아왔다. 파라오의 모든 말과 병거와 기병들이 그들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24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5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집트 병거들의 바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어, 병거를 몰기 어렵게 만드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 하고 말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위로 손을 뻗어,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로 물이 되돌아오게 하여라.”

27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날이 새자 물이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도망치던 이집트인들이 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

28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의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30 그날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해 주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인들을 보게 되었다.

31 이렇게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에게 행사하신 큰 권능을 보았다. 그리하여 백성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15,1 그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이 노래를 불렀다.

 

화답송 탈출 15,1ㄷㄹㅁ-2.3-4.5-6.17-18(1ㄷㄹ)

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하셨네. 주님은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찬미하리라. 내 조상의 하느님, 나 그분을 높이 기리리라.

주님은 전쟁의 용사, 그 이름 주님이시다. 파라오의 군대와 병거를 바다에 내던지시니, 뛰어난 장수들이 갈대 바다에 빠졌네.

바닷물이 그들을 덮치니, 돌처럼 깊이 가라앉았네. 주님, 당신 오른손이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시니, 주님, 당신 오른손이 원수를 짓부수셨나이다.

당신은 그들을 데려오시어, 당신 소유의 산에 심으셨나이다. 주님, 그 산은 당신 거처로 삼으신 곳, 주님 손수 세우신 성소이옵니다.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시나이다.

 

7독서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겠다.>(에제 36,16-17.18-28)

16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이 자기 땅에 살 때, 그들은 자기들이 걸어온 길과 행실로 그 땅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8 그들이 그 땅에 쏟은 피 때문에, 그들이 그 땅을 더럽히며 섬긴 우상들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내 화를 퍼부었다.

19 그래서 그들을 민족들 사이로 쫓아 버리고 여러 나라로 흩어 버렸다. 그들의 길과 행실에 따라 그들을 심판하였다.

20 사람들이 그들을 두고, ‘이자들은 주님의 백성인데 그분 땅에서 나와야만 했지.’ 하고 말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가는 곳마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21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 집안이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이름을 걱정하게 되었다.

22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

23 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화답송

시편 42(41),3.5ㄱㄴㄷㄹ; 43(42),3.4(4241,2)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영광의 초막, 하느님의 집까지, 환호와 찬미 소리 드높은 가운데 축제의 무리와 행진하였나이다.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서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3-11)

형제 여러분,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7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8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10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복음 <예수님께서는 되살아나셨고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입니다.> (마태 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3 그의 모습은 번개 같고 옷은 눈처럼 희었다.

4 무덤을 경비하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

5 그때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 계셨던 곳을 보아라.

7 그러니 서둘러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일러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리는 말이다.”

8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세례전례

<세례 받을 사람은 없지만 세례 샘을 축복할 때>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샘에 강복하시어 이 물로 새로 태어나는 형제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세례수 축복

주 하느님, 성사의 표징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힘으로 구원의 신비를 이루시니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물이 세례성사의 표징이 되게 하셨나이다.

하느님, 태초에 성령께서 물 위에 머물게 하시어 그때 이미 물이 거룩하게 하는 힘을 지니게 하셨나이다.

하느님, 홍수를 통하여 죄를 씻고 그 물의 신비로 생명을 되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 주셨나이다.

하느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마른 발로 홍해를 건너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세례 받은 새 백성의 예표로 삼으셨나이다.

하느님, 성자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으로 축성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흘리셨으며 부활하신 다음에는 너희는 가서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하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나이다.

하느님, 교회의 정성을 굽어보시고 교회 안에 세례의 샘이 솟아나게 하소서.

성령의 힘으로 외아드님의 은총을 이 물에 부어 주시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이 세례성사로 온갖 묵은 허물을 씻어 버리고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소서.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묻힌 모든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샘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주님을 기리며 찬양하여라.

물 축복

<세례 받을 사람도 없고 세례 샘도 축복하지 않을 때에 신부는 아래와 같이 신자들을 물 축복으로 이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념하여 뿌릴 이 물에 하느님께서 강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시어 우리가 받은 성령께 충실히 머물게 하실 것입니다.

주 하느님, 이 거룩한 밤을 지새우는 주님의 백성을 자비로이 도와주시어 인간을 오묘히 창조하시고 더욱 오묘히 구원하신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는 저희를 위하여 이 물에 강복하소서.

주님께서는 이 물을 만드시어 땅을 비옥하게 하시며 사람이 마시고 몸을 씻게 하셨나이다. 또한 이 물로 주님의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의 백성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사막에서는 그들의 갈증을 풀어 주셨나이다.

예언자들은 이 물로 주님께서 사람들과 맺으실 새로운 계약을 미리 알려 주었나이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는 요르단 강 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재생의 세례를 마련하시고 부패한 인간 본성을 새롭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 물로 저희가 이미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새로 세례를 받은 형제들과 파스카의 기쁨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세례 서약 갱신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세례로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사순 시기의 여정을 마치며 마귀와 마귀의 모든 행실을 끊어 버리고 거룩한 가톨릭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한 세례 서약을 새롭게 합시다.

여러분은 마귀를 끊어 버립니까? , 끊어 버립니다.

마귀의 모든 행실을 끊어 버립니까? , 끊어 버립니다.

마귀의 모든 유혹을 끊어 버립니까? , 끊어 버립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까? , 믿습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동정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묻히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습니까? , 믿습니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습니까? ,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게 하시고 저희 죄를 용서하셨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아멘.

 


파스카 성야 제1독서 (창세1,1-2,2)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1~2)

 

'한 처음에'로 번역된 '뻬레쉬트'(bereshith)는 천지 창조의 시점, 곧 하느님께서 우주 자체와 우주 만물의 구성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무()에서 유()로 동시에 섬광처럼 생겨나게 하신 원천적 창조 사건이 일어난 ''를 가리키는 말이다.

'뻬레쉬트'(bereshith)''(be)'레쉬트'(reshith)의 합성어이다. 먼저 ''(be)는 명사들과 결합하여 그 명사와 관련된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전치사로서 영어의 'in'에 해당한다.

 

그리고 '레쉬트'(reshith)'근원'(창세2,10), '머리'(창세3,15), '꼭대기' (1열왕18,42)등의 의미를 가진 어근 '로쉬'(rosh)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시작'(창세10,10), '근본'(시편111,10), '으뜸', '우두머리'(욥기40,19) 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레쉬트'의 합성어인 '뻬레쉬트'는 직역하면 매우 단순하게 '시초에', '한 처음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뻬레쉬트'가 말하는 '시초'(처음)는 시간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원점, 곧 시간(時間; the time)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결국 '뻬레쉬트''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바로 그때에'(in the beginning)라는 뜻이다. 즉 인간 역사(歷史)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처럼 천지 창조는 다름아닌 모든 우주 만물의 존재와 그들 사이에 발생할 모든 사건의 기원을 이루는 원초적 사건이다.

 

이런 천지 창조의 시점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뻬레쉬트'는 천지 창조 사건이 일어났던 ''가 시간 자체도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기원', '시간의 원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실로 천지 창조는 시간 자체도 이제 막 시작한 때에 바로 그와 동시에 섬광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만유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계시는 그리고 만유를 뛰어넘어 계시는 유일한 절대 자존자(自存者), 초월자(超越者)이시다. 이러한 하느님께서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여 계신다(시편90,4). 반면에, 우리 인생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오직 공간(空間; the space)안에서 시간(時間; the time)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즉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시공에 얽매인 차원(dimension)에 존재하지만, 이 우주 만물 각각은 물론 이 모든 것들의 존재 양식인 시간과 공간까지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이곳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얽매여 있는 인생을 포함한 피조물과의 관계만 아니라면 하느님께 시간은 의미가 없다.

 

심지어 하느님 자신의 실존에만 국한해서 볼 때에는 천지 창조 이전과 이후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는 시간으로부터 완전 초월하여 시간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계시는 분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천지 만물은 오직 시간의 시작과 함께, 곧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또한 역으로 말해도, 시간도 오직 그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만 그 존재 양상이 전개되어 가는 만물들의 존재와 함께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무()로부터 유()로의 천지 창조(creatio ex nihilo)는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시간 또한 천지 만물이 창조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함께 창조되었고, 또한 그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편, 우리는 '한 처음에'로 번역된 창세기 11절의 '뻬레쉬트'를 새 성경에서 그 역시 '한 처음에'로 번역된 요한 복음 11절의 '엔 아르케'(en arche)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뻬레쉬트'는 하느님의 천지 창조로 이제 막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던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키고, 반면에 '엔 아르케'는 시간이 아예 흐르기 이전의 영원한 때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뻬레쉬트'가 무로부터 유가 시작되어 시간이 출발했던 영원과 시간의 접촉점만을 가리킨다면, '엔 아르케'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차원 전반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이 구절은 앞서 '한 처음에'란 창조 시점에 제시된 것에 이어서 이제 천지 창조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앞서 천지가 '언제' 창조되었는지를 밝힌 데 이어서 천지를 '누가' 창조하였는지를 밝힌다.

 

여기 '하느님'에 해당하는 원어 '엘로힘'(ellohim)은 제1위 성부 하느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을 경우에는 모두 다 '하느님'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권세있다', '힘세다'라는 뜻을 가진 ''(ul)에서 유래한 것 (2열왕24,13; 시편73,4)으로서 '권세있고 힘있는 뛰어난 분'이란 뜻을 가진 '엘로아흐'(elloah)의 복수형이다(탈출12,12; 신명32,15).

 

하느님의 이름이 복수형으로 되어있는 것은 그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 단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복수형으로 표기함으로써, 그 대상의 권위와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고대 근동 전반의 수사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태초의 천지 창조는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만물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얽혀서 빚어내는 모든 역사의 유일한 원초적 기원이다. 따라서 결국 천지 창조의 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만물과 역사의 궁극적 기원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기원이시다. 만물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욥기1,21; 시편90,3; 코헬렛12,7; 로마11,36).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우리 인생의 궁극적 관심일 수밖에 없다.

 

또한 천지 창조 기사 전체가 오직 하느님만이 온 천지를 모두 다 직접 창조하셨음을 거듭 강조하는 것은 전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하느님께 대한 전 우주의, 특히 전 우주의 대리 통치자인 우리 인간들(창세1,26)의 하느님께 대한 복종과 경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한 주체가 어떤 사물을 만들거나 사거나 이를 소유함에 있어서 그 주체 자신이 요구되는 의무를 다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게 되는 완전하고도 정당한 법적 근거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천지 창조 기사는 거듭해서 전 우주가 스스로 생겨났거나 다른 그 무엇에 의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엘로힘 하느님'에 의해서 지어진 것임을 그토록 강조한다.

 

즉 이것은 전 우주와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소유권과 통치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소유권(탈출18,5; 신명10,14; 에제18,4)과 통치권 (탈출15,18; 시편72,8; 다니엘5,21) 사상은 성경 전체에서 나타난다.

 

'하늘과 땅을'

 

본문은 창조의 시점, 곧 언제 천지 창조가 있었는지를 밝힌 '한 처음에'와 창조의 주체, 곧 누가 천지를 창조하였는지를 밝힌 '하느님께서'에 이어서 이제 창조의 대상(對象), 곧 무엇이 창조되었는지를 밝히는 구절이다.

원문은 '에트 핫샤마임 웨에트 하아레츠'(eth hashamaim weeth haarets; the heaven and the earth)이다.

 

우리말의 '~'()에 해당하는 것으로 직접 목적어임을 표시하는 대격 전치사 '에트'(eth)'그 하늘을'이란 뜻의 '핫샤마임'(hashamaim), '그리고'()에 해당하는 접속사 ''(we)'에트'(eth)가 결합된 '웨에트'(weeth), 끝으로 '그 땅'이란 의미의 '하아레츠'(haarets)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이 복수형으로 표기된 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은 현대 천문학이 말하는 지구의 대기권 및 그 너머에 무한히 팽창하는 공간으로서의 우주에 대해 과학적 개념이 없었다.

 

그 대신에 하늘에 새들이 날아다니는 눈에 보이는 공중인 첫째 하늘,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서 해, , 별 등이 붙어 있는 거대한 금속판인 소위 궁창(firmament)과 그 위에 보관된 엄청난 양의 물로 구성된 둘째 하늘, 그리고 그 너머의 순수한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이

 

하느님의 영광의 현현을 매일 보며 머물고 있는 셋째 하늘 등 모두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 420여회 나오는 하늘은 모두 다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여기서 ''을 말하는 '아레츠'(arets)도 하늘과 대조된 의미에서의 '온 땅', 곧 우리들이 발붙이고 사는 이 '지구'를 가리킬 뿐 아니라, 넓게는 땅 아래의 '지하 세계'(the underworld)까지 가리킨다.

 

성경에는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시편113,3),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2사무17,11) 등과 같이 양극단을 함께 말함으로써, 그 안에 있는 것이 모두 다 포함됨을 강조하는 용례가 많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그 하늘들과 그리고 그 땅을'이라는 원어의 표현은 비단 하늘과 땅 뿐만 아니라 가없는 양자 사이의 공간 자체는 물론 그 안의 모든 물질들, 곧 하늘에서부터 땅 끝까지의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창조의 대상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셨다'

 

'창조하셨다'의 원어는 '빠라'(bara)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불명확하다. 이 단어는 용례상 대략 '자르다'(cut), '새기다'(carve), 그리고 '낳다' 또는 '출생하다'(bear or be born), 끝으로 '먹다'(eat), '양육하다'(bring up), '살이 오르다'(get weight) 등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빠라'(bara)'만들다', '지어내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오직 하느님과만 관련되어 쓰였다.

 

그리하여 그 이전과는, 자르듯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시고, 또 있게 하시는 하느님만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나타낸다(신명4,32; 시편89,12; 이사43,1; 예레31,22).

한마디로 '빠라'(bara)는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을, 이전의 그 어떤 것과도 상관없이 새롭게 있게 하는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이같은 절대적 창조 행위는 오직 만물을 초월(超越)하여 자존(自存)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우리 인간도 우리의 능력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오직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여, 즉 과거와의 연속 안에서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빠라'(bara)는 실제로 '만들다', '지어내다'의 뜻으로 구약에서 총 44회 쓰였는데, 이때에는 오직 '하느님'을 가리키는 단어와만 짝을 이루어 등장하며,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창조 행위만을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11절의 '창조하셨다', '빠라'(bara)는 무에서 유로 광대한 우주 공간은 물론, 그 안의 천하 만물을 구성할 재료가 될 모든 기본 물질들을 동시에 섬광처럼 존재하게 하신 하느님의 절대적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파스카 성야 제3독서 (탈출14,15-15,1ㄱ)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15-16)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 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21-22)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4)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15)

 

'앞으로 나아가라고'에 해당하는 '웨잇싸우'(weissau)의 기본형 '나싸'(nassa)는 장막의 말뚝을 뽑아 내어 여행을 출발하거나 진행 중임을 뜻하는 단어이다. 즉 장막을 걷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다.

 

하느님께서 출발 명령을 하시는 이러한 모습은 전쟁에서의 지휘관의 명령을 연상하게 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군대로서 하느님의 명령과 함께 이제 하느님의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악의 세력과의 전쟁을 수행하시는 총사령관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그 전쟁에 참여하기 위하여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16)

 

'가르고서는'에 해당하는 '우베카에후'(ubeqaehu)는 직역하면 '그리고 너는 그것을 쪼개라'는 뜻이다.

'베카에후'의 기본형인 '빠카'(baqa)'(하나로 된 것을)쪼개다', '(닫힌 것을)열다', '(알을)깨다'등의 의미가 있다.

 

본문은 홍해 바다를 둘로 완전하 갈라지게 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여기서 동사가 단순 능동형으로 사용되어 모세가 단지 지팡이를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가르는 행위까지 그에게 속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강한 바람을 사용하여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다(탈출14,21).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홍해를 '쪼개는'일이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 임무는 하느님의 대리자인 모세에게 속한 것임을 이러한 표현을 시사하고 있다.

 

'빠얍바샤'(bayabbasha)'마른 땅'으로 번역되었다. '마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야베쉬'(yabesh)에서 유래한 명사 '얍바샤' (yabbasha)'~안에(안으로)'란 뜻의 전치사 ''(be)와 정관사 '' (ha)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런데 '야베쉬''얍바샤'의 어근은 기본적으로 '수분을 지닌 물체가 수분이 없어서 마르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말 속에는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시려는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있다.

 

바다나 강에 물이 빠지고 나면, 원래 물에 깊이 잠겼던 부분은 갯벌이나 진흙 수렁과 같이 사람이 걷기에도 힘든 땅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금 그것이 마른 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어린 아이들과 가축들과 짐을 실은 수레들이 안전하고 쉽게 건널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役事)하실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져 있는 말씀이다. 더군다나 '마른 땅'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얍바샤'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창세기 19,10절에 창조 때에 물과 분리된 '마른 땅'을 기리키는데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물 가운데서 땅을 분리하여 그곳엔 온갖 생명이 자라게 하셨다. 또한 노아의 홍수 후에 물이 걷히고 땅이 마른(창세8,14) 다음에 그 땅위에서 생명체들이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사건 속에서도 바다가 갈라지고 그곳에 드러나는 마른 땅은 하느님께서 생명을 보호하시기 위한 또 다른 당신의 자비로우신 의지가 개입된 특별한 역사(役事)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바다 가운데 새 길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을 위한 재창조의 역사(役事)가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이 드러나는 현상 가운데서도 맥맥히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탈출기 1424절에 '새벽에'(habboqer)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 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 (21)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 난 길로 가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질퍽이는 진흙투성이일 수 밖에 없는 바다 밑의 땅을 완전히 마른 땅으로 만드신 것이다. 바다를 가른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하느님의 세심한 배려로 당신의 초자연적 능력이 개입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22)

 

본문은 탈출기 1416절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신약의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위를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히브11,29).

 

이 말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무런 두려움이나 주저함없이 주님 말씀에 의존하여 즉각적으로 홍해를 건넜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벽이 되어'에 해당하는 '라헴 호마'(lahem homah)'그 벽이 그들만을 위한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즉 그 벽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벽으로만 작용하고, 이집트 사람들을 위해서는 벽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24)

 

여기서 '혼란에 빠뜨리셨다'에 해당하는 '와야함'(wayaham; and troubled; and threw it into confusion)'혼란에 빠뜨리다', '교란시키다'(2역대15,6), '어지럽게 하다'(1사무7,10)라는 뜻을 가진 동사 '하맘'(hamam)의 미완료형에 계속적 '와우'(wau; and)가 결합된 형태로 '그리고 그가 어지럽게 했다'라는 뜻이다.

이 동사는 구약에서 13회나 사용되었는데, 그중에 10회가 하느님을 주어로 삼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적대자를 당황케 하여 치시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여호10,10; 판관4,15).

 

그러므로 이 단어는 이스라엘이 적대자와 싸우는 전쟁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측면을 드러내 주고 있다. 즉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군대로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이지만, 이스라엘을 도와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진정한 승리자가 하느님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대에도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담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배후에서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싸워 주시기 때문이다.

 



[파스카 성야] 복음. (마태 28,1-10)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하신 천사의 말에 관하여 묵상하려 한다.

 

▷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은 사랑의 결핍이라고 한다.그것은 믿음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 부활의 기쁨이 온 세상 구석구석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해 오는 거룩한 밤이다.

파스카 성야는 오랜 관습에 따라 주님을 기억하는 밤이며, 등불을 밝혀 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스러운 종처럼 깨어 준비하는 밤이다.

이 거룩한 밤에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넣어 주시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죽음의 무덤 위에 앉아 있던 천사의 말을 주님께서 주신 새 마음과 새 영으로 귀담아듣고 믿어야 할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이렇듯 죄와 죽음은 더 이상 부활하신 예수님 위에 군림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셨고,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분께서는 단순히 이 지상의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영광 속에 들어 높여지신 것이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신 이 거룩한 밤에 우리는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것이다.

부활의 기쁨은 우리 믿음의 승리요,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승리다.

이 기쁜 소식은 아직도 이 세상에서 고달픈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엄청난 힘과 용기가 되는 것이다.온갖 희로애락을 겪는 인생길에서 주님 부활은 우리의 부활도 됨으로,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것이다.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계약의 궤


2020411일 토요일

<염치없는 감사>

(요한19,40-20,12)

주님! 대신 죽어 주셔서~ 염치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40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42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 무덤 속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요한20,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 계약 궤의 모습입니다.

 

(탈출25,17-22) 17 너는 순금으로 속죄판을 만들어라. 그 길이는 두 암마 반, 너비는 한 암마 반으로 하여라.

= 순금은 왕을 뜻하며 속죄 판은 대속으로 얻는 속죄를 뜻합니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표징입니다.( 예수님 무덤 속을 떠 올려 보세요)

 

18 그리고 금으로 커룹 둘을 만드는데, 속죄판 양쪽 끝을 마치로 두드려 만들어라.

= 금으로 된 거룹,- 왕권을 가진 천사입니다.

 

19 커룹 하나는 이쪽 끝에, 다른 하나는 저쪽 끝에 자리 잡게 만들어라. 그 커룹들은 속죄판 양쪽 끝에 만들어야 한다.

= 예수님의 시신 머리맡과 발치에 있던 천사들입니다.

 

20 커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하여라. 커룹들의 얼굴은 속죄판 쪽을 향해야 한다.

= 왕의 심판권을 가진 천사입니다. 대속으로 얻는 속죄, 그 속죄 판이신 예수님을 보게 합니다.

 

21 너는 그 속죄판을 궤 위에 얹고, 궤 안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언판을 넣어라.

= 증언판, 곧 십계명으로 심판을 해야 할 커룹, 천사들이 대속의 속죄 판 때문에 심판을 못하게 되는 모형입니다.

 

22 내가 그곳에서 너를 만나고, 속죄판 위, 곧 증언 궤 위에 있는 두 커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일러 주겠다.”

=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들을 살리시려 심판과 계명, 그 사이에 속죄판을 세워 심판을 못하는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심판을 속죄 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을 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나라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아무리 착하게 의롭게 살았어도 십자가의 주님을 진리로 믿고 따르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리고 그 주님의 진리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길의 모든 것이 구원의 가치 없음을, 진리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그 자기부인, 버림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곧 나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와 한 몸이 되셨듯이, 우리 도한 나의 버림, 그 죽음으로 그분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셨듯이 우리는 우리(, )의 죽음으로 그 하늘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족보에 오른 에녹을 보면~

(창세5,22-24) 22 므투셀라를 낳은 다음, 에녹은 삼백 년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24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 에녹은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갔다. 해서 이를 부러워합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사시면서 에녹의 뜻을 다 들어주시고 충족시켜 주셨을 거라는 예측으로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우리의 바램, 생각일 뿐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나를 부인하는, 버리는 삶입니다.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것이 육의 죽음입니다.

에녹은 그렇게 365년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죽음의 관문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에녹과 다른 ~ 족보에 오르지 못한 카인의 후예, 에녹의 후예입니다.

(창세4.21-22) 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그는 비파와 피리를 다루는 모든 이의 조상이 되었다. 22 칠라도 투발 카인을 낳았는데, 그는 구리와 쇠로 된 온갖 도구를 만드는 이였다. 그리고 투발 카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다.

= 에녹의 5대 후손들입니다. 문화와 경제를 만들어 냅니다.

흙의 먼지를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빚어 만드신 후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해야할 존재들이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살기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신들의 뜻을 위한 것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선호하는 문화와 경제입니다.

오늘날, 기능이 점점 좋아지는 온갖 기구들, 비행기 자동차 냉장고 핸드폰 컴퓨터 등등~~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죽음의 문화라고 합니다. 막가질 것을 알면서도, 중독되어 끊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갖춘 것을 좋아하는 것- 선이라 하고, 갖추지 못한 것을 나쁜 것- 악이라 합니다.

그리고는 인간의 재물을 나누면 사랑이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한 의로운 일이라, 참이라 하기에 주님께서 위선이라 하신 겁니다.

하느님의 진리의 계명을 사람의 규정 교리 그 계명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마르7,7참조) 모든 인간은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악하기 마련입니다.(8,21 마태18,7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당신께서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죄의 용서 구원 그 한 몫을 주시기 위해~~~

감사합니다.~~주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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