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30일 월요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간음 죄> (요한8,1-11)
![]()
제1독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다니13,1-9. 33-62)
그 무렵 1 바빌론에 요야킴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2 그는 수산나라고 하는 힐키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3 수산나의 부모는 의로운 이들로서 그 딸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교육시켰다. 4 한편 요야킴은 아주 부유한 사람으로서 넓은 정원이 그의 집에 맞붙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큰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늘 그를 찾아오곤 하였다. 5 그런데 그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그들을 두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빌론에서, 백성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재판관인 원로들에게서 죄악이 나왔다.” 6 그들이 줄곧 요야킴의 집에 있었으므로, 소송거리가 있는 이들은 모두 그리로 그들을 찾아갔다. 7 한낮에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수산나는 남편의 정원에 들어가 거닐곤 하였다. 8 그렇게 그곳에 들어가 거니는 수산나를 매일 눈여겨본 그 두 원로는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게 되었다. 9 그들은 양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린 채, 의로운 판결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33 그러자 수산나 곁에 있던 이들과 그를 보는 이들이 모두 울었다. 34 그 두 원로는 일어나 백성 한가운데에서 수산나의 머리에 자기들의 손을 얹었다. 35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 그 두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단둘이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이 여자가 여종 둘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가더니, 정원 문들을 닫아걸고서는 여종들을 내보냈소. 37 그때에 숨어 있던 젊은이 하나가 이 여자에게 가더니 함께 누웠소. 38 정원 구석에 있던 우리는 그 죄악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들에게 달려갔소. 39 그리고 둘이서 정을 통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자가 우리보다 힘이 세어 붙잡을 수는 없었소. 그래서 그자는 문을 열고 달아나 버렸소. 40 그 대신 이 여자를 붙들고 그 젊은이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41 이 여자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았소. 이것이 우리의 증언이오.” 그들이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회중은 그들을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4ㄱㄴㄷ)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8,1-11)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다니13,1~9.15~17.19~30.33~62)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4~45)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다니엘이 그 두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60-62)
다니엘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1~6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빌론과 메디아 왕궁에서 겪는 공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둘째 부분(7~12장)은 다니엘이 혼자 환시를 보는 사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부분(13~14장)은 13장의 '수산나 이야기'와 14장의 '벨 신상과 큰 뱀 이야기'다. 이것은 그리스어 성경에만 나오는 내용이며,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취급하여 나오지 않는다.
이 세 이야기는 다니엘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다는 공통분모 때문에 그리스어 성경 다니엘서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다니엘서 13장은 정숙한 한 유다 여인 수산나가 욕정에 눈이 어두운 두 원로의 모함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했다가 다니엘 예언자의 지혜로 구출된 이야기다.
수산나는 무죄하면서 고통받는 사람이다.
신앙심이 깊고 아름다운 여인인 수산나가 음욕을 품고 탐하려 한 재판관인 두 원로의 거짓 증언에 의하여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는 명망을 짓밟혔고 간통죄로 사형을 받을 뻔하였다. 그가 잘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원로들의 음욕에 동조하는 대신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23) 하느님의 정의를 확고히 신뢰한다.
원로들이 법정에서 수산나를 거짓 고발하자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 본다(35).
두 원로는 자신의 욕심이 실패하자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수산나를 사형에 처하게 한다.
수산나는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에도 하느님께 기도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무죄를 확인한다(42~43). 그러자 주님께서는 다니엘 예언자를 통해서 진실을 밝히시고 수산나를 구해 내신다.
이 이야기에서 완전한 전환점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수산나의 외침에 응답하는 데서 비롯된다.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44)
그리고 다니엘은 수산나의 결백을 입증하고 그를 죽음에서 구하여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도구로 드러난다.
수산나의 이야기는 고통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다니엘이 받은 지혜의 은사를 이용하신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여기서 저자는 이교도들의 땅 바빌론에서도 모세의 율법은 지켜야 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율법에 충실한 의인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6)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갑자기 등장한 예수님의 존재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를 질책하고 단죄하였으며, 안식일 규정까지 어긴 자로 여겨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갖지 못한 이적을 행하는 권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과 사회적 입지를 흔들어 놓는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성전 경비병들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요한7,45).
따라서 이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로 이루어진 유능한 이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파멸케 하려는 계략을 꾸몄다.
이것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올가미에 걸리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8,6ㄱ).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기에 이러한 계략은 결국 하느님을 시험하는 불경을 저지른 꼴이 된 것이다.
영적 무지와 종교적 편견으로 가득찬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행하겠다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요한복음 8장 6절의 '쓰기 시작하였다'에 해당하는 '카테그라펜'(kategraphen; started to write)은 '카타그라포'(katagrapho)의 미완료 시제로서 동작의 개시를 나타낸다.
말하자면 '쓰거나 그리기 시작하였다'는 뜻이 된다. 이 동사는 '쓰다'는 뜻뿐만 아니라 '그리다'(draw figures)는 뜻도 있다.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예수님께 와서 흥분하며 조급하게 판단을 요구하는 무리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을 고소하려는 사악한 음모와 한 여인이 죽을 수도 있는 험악하고도 긴박한 상황 속에서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하시며 땅에 조용히 글을 쓰시는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흥분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요한복음 8장 7절에 나오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는 말씀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성서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 쓰신 이 행위가 구약의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이야기에서 요한복음 8장 6절과 8절에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글을 쓰신 것은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을 연상시키는 상징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너희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6-8)
한마디로 '그 여자를 죽이려고 돌을 든 너희들도 똑같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버린 탓입니다.' (예레17,13)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9)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깨달음과 이해가 먼저 오는, 삶의 경륜과 지혜가 있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나이가 많다는 것은 오래 살았으니 죄도 많이 지었다는 것이다.
간음한 여인
(요한 7.53-8.11)
53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1 예수께서는 올리브산으로 가셨다. 2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 그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4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5 우리의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6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7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 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10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죄짓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경에 읽다 보면 서로 모순이 되는 듯한 모순이 되는 듯해 보이는, 그 중에서도 율법에 근거한 철저한 하느님에 공의와 하해같이 넓으신 하느님에 사랑에 대한 그런 구절들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요원해 보여요. 예를 들어서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과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마태복음 9장 13절 이 구절들을 보면 마치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듯 보이죠? 완전히 모순되는 구절들이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하느님에 공의와 사랑이 어떻게 화해가 되어 해결이 되는 지를 보여주는 그림인 거에요. 요한복음 전체 흐름을 간단하게 복습을 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의 흐름에 맥락속에서 이해를 해야 그 이해가 쉽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세상에 대해서 배웠어요. 그런데 그 빛은 세상에 거부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하나 해나가시죠. 세상이 거부하던 말던 당신에 일을 해 나가세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인들과 연합이 되죠. 예수님이 죄인화 되시는 거에요 그리고 창조이전에 택해진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셔서 그들을 불러내세요. 그 이틑날 이튿날 삼일째 되는날 이렇게 창세기의 구조와 똑같은 구조로 제자들을 불러가시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장은 창세기 1장과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어요 우리는 거기서 창세기에 첫창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새창조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였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였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렇게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은 이제 사흘째 되는 날 일곱째날이죠 가나에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가세요 가나에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이제 첫번째 기적을 배푸시죠. 포도주가 떨어진 집에 포도주를 채워주심으로 잔치를 잔치답게 완성시키시는 거에요 그 사건은 창세기에 일곱째 날에 대한 설명이였는데요. 일곱째 날이 안식이였으니까 참된 안식에 완성, 하느님 나라에 완성은 예수님 보혈에 공로로 그 포도주가 예수님에 보혈을 상징하는 거니까 예수님에 보혈에 공로로 완성될 것임을 보여주는게 가나에 혼인잔치에 기적이였잖아요. 그래서 항아리가 여섯개 밖에 없었던 거고 예수님이 일곱째 항아리가 되어서 그 잔치를 완성시키는 거죠.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예수님에 성전정화 사건이에요 그 이야기는 옛 성전인 율법 을 무너뜨리시고 참성전이신 당신에 공로로만 구원이 이루어질 것임을 공포하는 사건이였죠 .성전청소는 그 옛 성전인 율법이 부정되고 참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이 완성되는 이야기는 오늘 본문에서도 반복이 되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2장이 끝나고
이제 3장에서 니고데모의 이야기가 이어져요. 니고데모는 유다의 관원이고 선생이였고 부자였어요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을때 어마어마한 유향과 몰약을 갖고와서 예수님을 장사지내잖아요. 그 건 굉장히 부자였어요 그만한 양이면 왕을 장사지낼때 쓰던 양이였으니까 굉장한 액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원에 적합한 모든것을 소유하고 갖춘 인물이에요. 그런데 주님은 그에게 네가 모든 걸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너는 천국 못간다 하느님 나라 못들어간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 사건은 인간측에서 내어놓는 됨됨이나 업적이나 노력이나 그 어떤 것도 인간 구원에 참행복에 도달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였죠'
그리고는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 이야기가 등장하죠 정 반대의 사람이 나오는 거에요 사마리아 여인은 니고데모와는 정 반대로 그 속에서 어떤 자격이나 열심도 찾아볼 수 없었던 사람이였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여인에게 하늘에 생수를 부어주시죠 우물가에서. 그래서 일부러 우물가에서 만나시는 거죠 세상에 우물과 생수이신 예수님을 대조하면서 참생명은 하늘에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말미암는 것이다 진짜 해갈은 고걸 설명해 주시느라 우물가에서 그를 만났다 그랬죠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여인이 구원을 받음으로 해서 구원은 오직 하느님에 선택과 은혜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이지 인간측에서의 어떤 자격과 조건도 필요없음이 한번 더 확인이 되는 거에요
3장 4장에서 하느님이 은혜를 배푸시면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처참하게 썩어 버린 여인조차도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게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니고데모도 거듭나지 못하면 못가고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그 여인도 예수님이 허락하시면 천국갈 수 있다 구원은 그런 거다 오직 하느님에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이다가 3장 4장에서 그려지고 있는 거죠 그렇게 3장과 4장을 연결하여 한문장으로 표현하면 뭐겠어요 구원은 율법으로 말미암는게 아니라 오직 은혜로만 말미암는 것이다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리고는 4장 후반부에서 믿음은 기적을 봄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은혜로 보지 않고 믿는 것임을 왕에 신하를 고치는 사건으로 한번 보여주죠. 그건 왕의 신하에게 '가라 났다' 라고 하잖아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거기서 한번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5장으로 넘어가서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사건을 통해서 구원은 그렇게 자기에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것임을 보여주죠 다른 이들을 어땠어요 힘이 조금 남아있으니까 물이 動하면 얼른 뛰어 내려갈라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38년된 병자는 그럴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누군가에 도움을 구하느라 예수님을 바라본거죠 그 사람 혼자 구원은 그런거라는 것이죠
그리고는 6장에서는 五餠二魚의 기적을 통해서 죄인들의 구원이 하늘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죽음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거에요 예수님이 빵이 되어 죽으시는 거에요 그런데 그분이 빵이 되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는 빵은 세상의 빵이 아니다 라는 것도 아울러 보여주죠 .그래서 6장에 배경이 과월절이였죠 어린양이 죽어 버린 과월절.
그리고는 7장에서는 인제 초막절를 배경으로 해서 인간은 율법을 통해서 다른 말로 옛 성전을 통해서 구원에 이룰 수 없음에도 계속해서 자기에 가능성을 버리지 못하고 은혜를 붙들지 못함을 보여주죠 열심히 절기를 지키고 다 올라가잖아요 동생들까지 다 올라가죠 열심히 절기를 지키고 정성스럽게 성전 제단에 물을 퍼다 부으면서 자기들에 힘을 사용하는 거에요 하느님에 영광이 다시 돌아와서 다윗 왕국에 영화를 회복시켜달라는 그런 염원으로 열심을 부리고 있는 그런 유다인들에게' 내가 물이다' 여덟변째 날에 그러죠 내가 물이다 라는 말씀을 던지시며 진정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참된 행복과 영화가 주어질 수 있음을 설명해 주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다 뭐에요 율법 아니고 은혜다 너희에 힘 아니고 하느님 은혜로만 구원은, 참 행복은 완성되는 거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요한복음 7장까지에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면 오직 은총이에요 그게 성경 전체의 주제인 거에요 인간에 참행복 구원은 율법에 의해서 옛 성전에 방식으로 이 세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은혜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며 그 행복은 이 세상에 빵이 아닌 하늘에 빵임이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설명되고 있는게 요한복음인 거에요. 그 성경전체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구요.
자 그 맥락에서 오늘 본문을 이해하셔야 되요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한 내용이 함축되어서 한편에 드라마로 이렇게 요약되어 설명되고 있는게 오늘 본문이에요 율법과 은혜 이 둘이 어떻게 화해를 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가 죄인들을 반드시 벌하셔야 하는 하느님에 공의와 당신이 선택하신 자들을 향한 하느님에 크고 넓은 사랑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서 구원을 완성해 내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오늘 본문에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인 거에요
본문 7장 53절과 8장 1절을 보세요 자 세상 사람들과 예수님에 가는 곳에 대한 기록이 나오죠 53절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님 이외에 모든 인간들은 다 어디로 돌아갔어요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올리브산으로 갔어요 왜? 그랬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는데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나오죠 그것을 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통하여 보여주는 거에요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에 부유를 비우시고 스스로 가난하게 되시는 그게 십자가잖아요. (고린도후서 8장 9절) 십자가 구원은 바로 그 십자가 사랑에 의해 이루어질 것임을 미리 지금 힌트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에 왕자이신 예수님이 갈곳이 없어, 그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이분은 올리브산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3절을 보시면 그 주님이 다시 성전으로 들어가시는데요. 성전에서 내가 물이다라고 왜치신 주님의 모습을 봤죠 오늘 본문에는 주님이 어떻게 옛 성전인 율법을 부정하시고 참성전에 모습을 드러내시는지가 잘 설명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내용이 7장에 옛 성전과 비교하여 또다시 이제 성전으로 배경이 주어지는 거에요 이 성전이 어떻게 참성전인 예수에게서 부정이 되는가를 보시는 거에요.
주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때 바리사이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간음 중에 ,간음중에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나중에 붙들린 것도 아니고 간음중에 붙들려서 잡힌 여인. 남자는 도망갔어요 도망가고 여자만 붙들어 갖고 왔어요. 그 모습을 잘 그려보세요 지금 율법에 대명사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간음한 자는 쳐 죽여야 된다라는 율법을 근거로 율법을 대표하는 그들이 율법을 들고 어떤 일을 고소하러 오는 거에요. 그리고 한쪽에는 이제 완전히 죄인임이 자명하게 드러난 한 죄인 여인, 간음한 여인이 대조되어 등장하는 거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재판관으로 요렇게 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음중에 잡힌 여인은 자타가 공인한 죄인으로서 주님앞에 선 거고 나머지는 인제 고소하는 자들로 선거에요. 우린 이 대조를 잘 이해 해야돼요. 여러분 하느님을 대적하는 마귀에 대표적인 특징이 뭐에요 고소죠? 묵시록 12장 10절 보세요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 ’
자 그들이 지금 마귀에 세력에 대표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쪽은 죄인임이 자명하게 들어났지만 이제 하느님에 의해 구원받을 의인으로, 義人의 대표가 등장하는 거에요 두 부류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쪽은 율법 한쪽은 은혜 그렇게 대조가 되는 거에요 하느님을 떠나 자기 스스로에 힘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죄인들은 남에 잘못이나 헛점을 들추어 내서 고소를 하여 상대적인 우월감을 확보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요 그게 죄인들에 특징이에요 그것을 자기 방어 혹은 통제성향이라고 부르죠
그게 죄인들에 대표적인 특징인 거에요. 자기가 꼭데기에 올라가야 되고 자기가 스스로를 보호해야 되고 자기가 세상에 왕이 되야 되기 때문에 늘 남을 고소하게 되어 있어요 그들을 끌어 내려야 내가 올라가거든요 그래서 마귀에 대표적인 특징이 고소인 거에요 그들은 절대 자신의 무력함과 불가능함을 인정하지 않아요 예수 믿는 자들은 거기서 부터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고소하는 자들, 죄인들의 특징은 절대 자신에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율법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거에요 나는 지킬 수 있어 내가 지켜서 가고 말거야로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도움 없이도 스스로에 힘으로 행복에 이룰수 있다라는 것을 보이고 싶어하는 죄인들에 속성은 율법에 진의를 곡해하게 마련이죠. 그들은 죄를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에 필연성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주신 그 율법을 구원에 이르는 사다리로 생각한다 말이에요. 그들은 그렇게 율법을 구원에 이르는 사다리로 생각하여 열심히 율법을 지켜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존심도 지키고 하느님에 복도 받고 싶어 하는 거에요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줘요 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철저한 자기 否認을 요구하세요 나라는 존재는 하느님 앞에서 티끌에 불과하며 하느님에 恩惠를 떠나서는 불가능한 죄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하고 하느님에 그 크심 앞에 항복하여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거에요 그래야 하느님이 이끄시는 참생명에 길을 순종하여 쫓아올 수 있으니깐요. 우리 하느님은 우리를 이끌고 진짜 참 행복 고지로 올라갈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항복하지 않고 우리 꽤를 내고 우리의 지혜를 내고 우리의 힘을 이용하여 자꾸 다른 데를 바라보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못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완전히 부인하고 하느님이 끌고 가주세요 그때 우리는 참행복에 도달하는 거에요.
그래서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자기 부인인거에요 ‘나는 낫띵이야’ 그거 인정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한 사람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는 거에요 결국 다 도망가고 그 사람만 구원에 이르게 되죠. 아이러니에요 내가 죄인이다 나는 인제 죽어야돼. 나는 어디도 갈 수 없어, 갈데가 없어 인제 죽어야 되니까.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남아있는 사람만 구원받고 힘이 남아서 도망간자들 물이 動하는거 보고 냅다 뛰고 말거야 라고 했던 38년된 병자에 주변에 있던 자들 다 통해 있는 거에요
그 자들은 전부 도망가서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자들이 되어 버린 것이죠 함께 간음하다가 도망친 사람 또 간음하던 여인을 잡아온 사람들 그들은 자기들은 이제 예수님 앞에서 자기들에 죄가 확 들어나 버렸는데 그 재판관인 예수님 앞에서 도망간 자기들이 야 우리는 행운을 잡았어 자기들이 복받은 자들로 생각했을 거에요 그렇죠? 그러나 정작 그건 복이 아니였어요 도망간 자들은 다 죽는 거에요 예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한 한 사람만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소하는 자들에 말을 들으시고는 몸을 굽혀서 땅에다가 뭔가를 쓰시죠 뭘 쓰셨을까요 이 나쁜놈들아 니들 꼬라지나 먼저 봐라 이거 쓰셨을까요?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손으로 무엇을 직접 쓰신 사건이 세번 나오죠 ①첫번째는 십계명 돌판에다 쓰신 사건 ②두번째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벨사살 왕때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고 벽에다 하느님의 손이 나와서 써버리죠 그리고 ③ 세번째가 인제 오늘 사건인데요
첫번째 사건은 인간들에게 요구되는 율법에 관한 거에요 하느님께서 산위에서 그 율법을 쓰시는 동안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그들이 에굽에서 봤던 풍요의 신인 아피스의 암소와 화돌에 황소 숭배를 기억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버리죠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는간음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느님 말고 다른 우상을 섬기는게 간음이잖아요 그 간음 죄를 아래에서 하느님 백성들이 범하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는 그 송아지를 가리켜 야훼다 이가 우리를 구원해 낸 야훼야 라고 그렇게 하느님을 모독했어요 자 그 거룩한 하느님 율법이, 하느님이 준비하시고 하느님이 쓰신 하느님에 율법이 그 간음에 현장으로 내려온 거에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돌판을 던져서 깨버리죠. 그죠? 율법이 내려와 죄를 심판하는 거에요 깨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와 공존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걸로 끝나나요 그럼 다 죽어야 되는 거에요 우리는 다시 올라가죠
그런데 두번째 벨사살 왕의 잔치에 나타난 하느님의 손은 뭐죠? 다니엘서 5장을 보시면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성전에 그 금그릇 은그릇으로 술을 받아 마시고 금은동철과 나무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한 그런 벨사살을 심판하셔서 그 날밤 다리오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만드시는 거에요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 는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 보시고 마감하셨다' 는 뜻입니다. 27 '드켈' 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 는 뜻입니다. 28 '브라신' 은 '왕의 나라를 메대와 페르샤에게 갈라 주신다' 는 뜻입니다.' (다니엘5,26-28)
하느님에 저울에 부족한 자로 판명이 됐다라는건 뭐에요 하느님에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무엇을 쓰셨다라는 것은 율법에 근거한 심판을 의미하는 거에요 에레미야서로 가서 확인해보죠 에레미야 17장 12-13절 보세요
12 '한 처음에 높이 자리잡으신 빛나는 옥좌 있는 곳 그 곳이 우리의 성소입니다. 13 이스라엘의 희망은 야훼께 있습니다. 주님을 저버리고 어느 누가 부끄러운 꼴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맑은 물이 솟는 샘 야훼를 저버리고 어느 누가 땅에 쓴 글씨처럼 지워지지 않겠습니까?
보세요 위에서 언급한 세 사건은 바로 이 예레미야의 말씀을 알기 쉬운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는 거에요 여기 보시면 땅과 생수이신 하느님 그리고 야훼를 떠나는 자 죄인 등에 오늘 본문에 등장인물과 소품들이 그대로 나오고 있죠? 땅 생수이신 하느님을 떠나는 자 죄인들.
오늘 본문은 하느님 율법에 저울에 달아서 부족한 죄인들, 다른 말로 땅에 기록되어 죽어야 할 자들이 어떻게 살아나게 되는 가에 대한 복된 소식인 거에요 죄인들은 하느님 율법의 저울에 달아서 부족함 없이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다 죽어야 돼요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 (로마서 3장 10절)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이 그 여인을 고소하던 자들에게 뭐라 그래요. 돌로 쳐라. 죽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근거하여 돌로쳐라 죽여라 라는 거에요 왜 그건 하느님이 말씀하신 율법이거든요 레위기 20장 10절에 나오잖아요 간음하다 잡힌 자는 돌로쳐서 죽여라 했으니까 예수님이 돌로 치긴 치는데 죄없는 자가 쳐라에요 그렇지만 돌로 쳐라입니다 죽여라에요 그리고는 다시 몸을 숙이시고 땅에다가 또 뭘 쓰셨어요 그랬더니 어른에서 젊은이까지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모두다 주님을 떠나가 버렸어요 그때 주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않을 것이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하느님 사랑이 부어진 거에요.
돌로 쳐라에서 하느님에 공의가 나타나고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안으니 너는 가서 다시 죄를 범하지 마라라고 사랑이 나왔어요 그럼 그 중간에 어떤 사건이 있어야 될거 아니에요 그걸 우리가 구약과 연결하여 한번 읽어 내 보자는 거에요 우리가 오늘 본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키가 되는 단어가 8절에 다시라는 단어에요 8장 8절보세요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자 하느님께서 직접 무언가를 쓰셨다가 다시 쓰셨던 사건이 구약에 있었죠? 십계명 사건이죠 쓰셨다가 깨버리고 다시 쓰신 사건 이 두 에피소드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안드세요? 출애굽기에 십계명 돌판 이야기를 머리속에 떠올려 보세요 하느님께서 직접 쓰신 돌판 율법이 인간의 죄를 직면하자 심판이 일어났어요 깨져버렸단 말입니다 그 일로 3천명이 죽었어요 심판이에요
그리고 두번째 다시 쓰신 십계명 돌판이 내려와서 어디로 들어가요 법궤 안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 두번째 돌판은 모세가 준비하고 하느님이 쓰신 돌판이죠 출애굽기 34장 1절에보면 나오죠. 다른 말로 이 세상에 것과 하늘에 것이 합쳐저 만들어 진거에요 하느님이시면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거죠 그 율법이 법궤속으로 들어가 법궤 뚜껑으로 가려지는 거에요 그리고 그 법궤 뚜껑 위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에 피가 부어져서 죄인들로 부터 율법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죄인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와 오늘 본문에 이야기가 똑같은 이야기인 거에요 그래서 그 법궤 위를 은혜가 베풀어 지는 자리 라고. 그런데 그 십계명 돌판에 그 두 이야기 사이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삽입이 되어 있죠 출애굽기 32장 30 - 34절 보세요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일렀다. '너희가 이토록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 나 이제 야훼께 올라 가 보아야겠다.' 31 모세가 야훼께 되돌아 가서 아뢰었다. '비옵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32 하지만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만일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당신께서 손수 쓰신 기록에서 제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날 죽이라는 거에요 이거는요) 33 야훼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는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나의 기록에서 지워 버린다. 34 너는 이제 곧 내가 말한 곳으로 백성을 데리고 가거라. 내 천사가 앞장서 갈 것이다. 내가 그들을 찾아 가 그들의 잘못을 따질 날이 반드시 오리라.'
모세의 중보사건이 그 두 돌판사이에 끼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모세의 중보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두번째 십계명 돌판이 오고 그들이 용서받게 된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도 바로 예수님의 그런 중보에 이야기가 가운데 삽입이 되어 그 죽어야 할 여인이 공의로 죽어야 할 여인이 사랑으로 살아나는 거에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에 죄를 상징하는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서 이스라엘에게 마시게 하죠 7장에서 내게로 와서 마셔라 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이야기와 연결이 되는 거에요. 오늘 본문에도 똑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생수이신 예수님이 내가 물이다 그랬으니까 내가 생수다 그랬으니까 물이신 예수님이 죄를 상징하는 티끌에 섞여 버리는 모습이 나와요 예수님은 말씀이고 예수님은 생수에요 생수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땅에 기록되니까 땅과 말씀이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생수와 죄가 티끌이 섞여 버리는 거에요 물과 금송아지 가루가 섞이는 것과 지금 똑같은 모양으로 예수님이 지금 섞이고 있는 거에요 그 모습이 글로 쓰는 거였고 그건 바로 심판이였단 말입니다. 그리고 티글이 섞여 버린 물이 죄인들에게 딱 제시가 되자 죄인들에 죄가 드러나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 그러잖아요. 딱 제시가 되자 그 죄인들에 죄가 드러나고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가버리는 거에요 아이고 하느님 잘못했습니다가 아니라 그 앞에서 죄가 들어나자 도망가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티끌은 금송아지 가루처럼 죄와 죄인들을 상징하는 거에요
그 땅 그 티끌이 죄를 상징한다라는 것은 미가서에 잘 설명이 되어 있어요
미가서 7장 17절 흙이나 핥는 뱀의 꼴을 만드시고 땅바닥을 기어 가는 벌레 신세가 되게 해 주십시오. 겁에 질려 저희의 요새에서 나와 부들부들 떨며 우리 하느님 야훼께로 오게 하십시오. 야훼 두려운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이처럼 흙은 뱀이 먹는거 즉 뱀이 장악할 수 있는 상태로 되어 있는 대상 다른 말로 죄와 죄인들을 말하는 거에요. 예수님과 죄인들이 섞여서 예수가 죄인이 되고 죄인들이 예수가 되는 그 은혜를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죄인들은 절대 인정을 못하는 거에요 내가 내 힘이 남아있는데 왜 내가 은혜를 받아야되라고 도망가버리는 거고 그 앞에서 나는 죄인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나에게 은혜 배풀어 주지 않으면 나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라는 사람만 그 복음을 받아들인다라는 뜻입니다 자 그렇게 티끌을 섞은 물 앞에서 죄가 드러나게 되는 사건은 민수기에 잘 나와있어요
민수기 5장 11-13절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1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빗나가 남편을 배신하고 13 다른 남자와 동침하였는데, 그 여자가 제 몸을 더럽힌 사실이 남편 눈에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채, 증인도 없고 현장에서 붙들리지도 않았을 경우,
이거 간음 이야기죠. 간음은 뭐에요? 죄인들이 하느님 말고 다른 것을 쫓아 다른 것을 힘삼고 그 세상에 힘으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믿고 행동하는거 그걸 간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기 여인은 누구에요 죄인들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왜 맨날 여자만 갖고 그래 그러지 말란 말이에요 그거 상징이란 말이에요 아셨죠?
민수기 5장 14- 19절 14 남편이 자기 아내가 몸을 더럽혔으므로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질투하게 되거나, 아내가 몸을 더럽히지 않았는데도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질투하게 되면, 15 그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제에게 데리고 가서 아내를 위하여 보릿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드려야 한다. 그것은 질투 때문에 바치는 곡식예물이요, 죄를 생각하여 고백하게 하는 곡식예물이므로 그 위에 기름을 따르거나 향을 얹어서는 안 된다. 16 사제는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야훼 앞에 세워라. 17 그리고, 거룩한 물을 오지그릇에 떠 놓고 성막 바닥에 있는 먼지를 긁어서 그 물에 탄 다음, 18 그 여인을 야훼앞에 세운 채 머리를 풀게 하여라. 그리고 나서 질투 때문에 바치는 곡식예물, 곧 죄를 고백하게 하는 곡식예물을 여인의 두 손바닥에 들려 주어라. 그리고 사제는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물을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맹세를 시켜라. '외간남자와 한 자리에 든 일이 있느냐? 네가 유부녀로서 남편을 배신하고 몸을 더럽힌 일이 있느냐? 만일 그런 일이 없다면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이 물이 너를 해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어요 거룩한 물에 티끌을 담아요 그릇은 뭐에요 흙 하느님인데 흙인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거룩한 물을 담고 있는 분은 누구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죄인들을 담아 버리는 것입니다
민수기 5장 20- 28절 20 너는 유부녀로서 남편을 배신하고 몸을 더럽힌 일이 있느냐? 외간남자와 한 자리에 든 적이 있느냐?' 21 그리고 사제는 그 여인에게,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맹세를 하게 하고 나서 이렇게 일러라. '그렇다면 주께서 너의 겨레 가운데서 맹세하신 대로 너를 저주받는 본보기로 삼아 네 허벅지가 말라 비틀어지고 배가 부어 오르게 하실 것이다. 22 저주를 내리는 이 물이 네 뱃속에 들어 가면 배가 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여인이 '좋습니다.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23 사제는 그 저주를 글로 써서 그 저주를 내리는 물에 씻어라. 그리고 24 그 저주를 내려 고통을 주는 물을 여인에게 주어 마시게 하면 저주를 내리는 물이 그의 뱃속에 들어 가서 고통을 겪게 할 것이다. 25 사제는 그 여인의 손에서 질투 때문에 바치는 곡식예물을 받아, 주 앞에 흔들어 바치고 제단으로 가져가거라. 26 사제는 그 곡식예물을 바친다는 표시로 한 웅큼 집어 내어 제단에서 사르고 나서 그 물을 여인에게 주어 마시게 하여라. 27 그 물을 여인에게 마시게 하였을 때, 그 여인이 정말 몸을 더럽혀서 남편을 배신한 일이 있었다면, 그 저주를 내리는 물이 들어 가면서 여인은 배가 부어 오르고 허벅지가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제 겨레 가운데서 저주를 받은 여인의 본보기가 되리라. 28 그러나, 만일 그 여인이 몸을 더럽힌 일이 없어 깨끗하다면,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자식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여인이 간음을 했는지 안했는지 판별을 할때 율법이 정한 규레인 거에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이 간음한 여인의 판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죠. 여기서 여인은 신부인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리고 간음은 하느님 이외에 다른것을 자신의 힘으로 삼으려 하는 인간의 죄를 상징하는 거구요. 남편에게 범죄함을 의심받는 여인은 그러니까 죄인은 거룩한 물에 티끌을 넣어 마시게 해보면 판별이 난다는 거에요 여기서 그릇에 담긴 거룩한 물은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어요 하느님이시면서 인간의 몸인 질그릇로 오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23절에 보면은 그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 저주에 말이라고 나왔지만 그게 하느님에 말씀이란 말이죠 하느님의 말씀이 물에 섟이잖아요 그 물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란 말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안에 죄가 들어가서 죄인들이 그 생수의 물을 마시는 모양으로 죄 있음과 죄 없음이 판별이 된다라는 뜻인 거에요 그러니까 창조이전에 선택된 사람들은 그 물을 마시고 죄없는 자로 선포가 되는 것이고, 자신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그 은혜의 복음을 받아드리는 거고, 그들은 물을 마신다 말이에요 갈증이 나니까 또 하느님에 선택에서 제외되어 유기된 자들은 예수라는 그 물에 의해 죄인으로 확인이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복음을 안받아 드리는 거죠 은혜를 안받아 드리는 거에요. 자기에 힘으로 율법을 지키겠다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율법적으로 가는 사람이 죄인이고, 하느님 저는 아무것도 못해요 항복 하고 그 물을 받아 드리는 사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 사람이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간음한 여인의 죄가 예수의 죄가 되어 예수가 죽고 그 여인이 살아나는 거에요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티끌들이 죄인들이 연합하여 생수와 티끌이 연합하여 예수가 죄인이 되고 죄인이 예수가 되는 그 은혜에 복음을 그 여인이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걸 믿으면 여러분도 간음한 여인처럼 살아나는 거에요 그것만 믿으면 그 이야기하는 거에요 구원은 그렇게 인간의 율법지킴과는 전혀 관계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은혜로만 말미암는 거에요 예수를 마시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다른 길이 없어요
이렇게 하느님에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이 되고 예수가 죽어 버리는 거죠. 공의가 예수 안에서 실행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퍼부어진거란 말이죠 어떻게 하느님의 공의와 사랑이 화해를 하게 됐는지 아시겠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공의와 사랑이 요렇게 회해가 되는 것입니다 조화를 이루게 된 거에요.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을 믿음이라고 해요 은혜의 믿음. 그러니까 믿음은 나로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자각하고 다른말로 나로서는 절대 참 행복에 이를 수 없어 이 세상 것들로 내 힘으로는 절대 참행복에 이를 수 없어 라는 것을 자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은혜의 물을 마시는 자기 부인과 절대 순종에 행위를 수반하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죄인들은 끝까지 자기에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죠 자기에 죄가 드러났을때에 주님앞에 엎드려서 주님에 은혜를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나버리는 것으로 자신에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것이 죄인들인 거에요. 여전히 율법을 붙들고 있는 거에요 여전히 힘이 남아 있는 거에요 여전히 자신들에 가능성을 놓고 싶지 않은 거죠 스스로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믿는 거에요
왜 주님이 초막절 끝날에 내가 물이니까 나를 마셔라 라고 말씀하시는 바로 고 뒤에 장면에요 이야기가 붙어 있는지 이제 아시겠죠 그죠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공의보다 더 큰 하느님에 사랑 그 이야기가 아니에요 십자가 복음 은혜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상징하는 옛 성전에서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율법을 부정하고 밟아 버리고 은혜로 죄를 이겨 버리는 모습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이야기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배경이 성전인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구원을 얻은 여인에게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러죠
자 이 복음을 아는 자들이 어떻게 살겠냐구요 여전히 그 죄를 지을까요?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서있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 이제 곧 죽어요 나 이제 돌아맞아 이제 짱돌맞아 죽어야 되는데 예수님이 대신 맞아 죽으시고 그 예수님이 죽어가시면서 나에게 이야기하셨어요 얘야 내가 너를 대신해서 이렇게 죽어 준다 그러니까 이제 내 말을 들어 가서 죄 짓지 말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복음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똑같은 상태에 머물겠냐구요 그러니까 복음을 아는 만큼 변화되어져 가는 거에요 복음을 이해하는 만큼 그 깊이 만큼 변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교를 놔두고 그냥 그 예수님에게 짱돌맞아 죽어가시는 예수님 앞에 가서 예수님 병 낫게 해달라니까 왜 그렇게 누워있어 아니 내 소원은 안 이뤄주고 왜 그렇게 맞아 죽어 가고 있어 좀 일어나봐 이게 바리사이인이라니깐요 늘 그런 약한 모습으로 온거야 자기 때문에 자기에 그 연약함이 되어 죽으러 오셨기 때문에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오신 것이지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약한 모습으로 온거 아니거든요
자기 때문에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어가신 예수님 앞에서 너 왜 그렇게 죽어가 정치적인 군사적인 메시아로 와서 그 화려한 다윗 왕국을 건설해 줘야 되잖아 재건해 줘야 되잖아 회복시켜 줘야 되잖아 왜 그렇게 죽어 진짜 그렇게 죽을거야 그래 죽어 그러고 자기도 찍는 거죠 그게 바리사이인들이라구요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런 바리사이인같은 독사의 자식들이 예배당 안에 앉아 있다니깐요 그 죽어가는 예수님에게 왜 나를 못 도와주는거야 외치고 있다니깐요
우리는 나를 대신하여 돌에 맞아 죽어가시는 그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죄 앉짓는 자로 변해가는 거에요 그게 그리스도교입니다 여러분 그게 신앙생활인 거에요 마지막으로 예수님에 그 부탁에 말씀을 베드로가 이렇게 풀어서 설명해 놨어요.
(베드로전서 2장 11절-21절) 11 사랑하는 형제들,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체적인 욕정을 멀리하십시오. 12 그리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행실을 단정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던 그들도 여러분의 아름다운 행위를 보고 하느님께서 찾아 오시는 그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13 여러분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복종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황제는 주권자이니 그에게 복종하고 14 총독은 황제의 임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악인을 처벌하고 선인을 표창하는 사람이니 그에게도 복종해야 합니다. 15 선한 일을 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16 여러분은 자유인답게 사십시오. 그러나 악을 행하는 구실로 자유를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섬기는 종입니다. 17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황제를 존경하십시오. 18 하인으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주인에게 진정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십시오.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뿐만 아니라 고약한 주인에게도 그렇게 하십시오. 19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느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며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20 죄를 짓고 매를 맞으면서 참으면 영예스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면서 참으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21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 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본을 남겨 놓은 예수의 삶이 뭐였어요 십자가. 그 삶을 당신들도 사십시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열심히 그 사랑을 사십시다.
2020년 3월 30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용서는 십자가로 깨닫는 것>
(요한8,1-11)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 올리브 산은 하느님의 현존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의 뜻을 받으시고~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 앉으심 -낮아지심. 곧 신의 죽음, 그 모습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가르치십니다.
(요한6,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 어떻게요? 당신의 낮아지심, 그 죽음의 십자가의 대속으로요~
(1요한2,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 율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로마2,13참조) 여자, 죄인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 예수님께서 두 번을 손가락으로 쓰시는 그 모습이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탈출31,18)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다 하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
= 십계명입니다. 하느님께서 산에서 계명을 쓰실 때 땅에서는 우상을 만들어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 계명이 무시되는 하느님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진노로 모세의 의해 돌판이 깨어지는(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탈출34,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처음 것과 같은 돌 판 두 개를 깎아라.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그 처음 돌 판에 새겨져 있던 말을 내가 새 돌 판에 다시 써 주겠다.
= 죄인들에 의해 돌판이 깨어지고 새 돌판이 주어졌습니다. 구약의 법의 계명이 깨어지고 신약의 용서의 새 계명(계약)을 주십니다. 창조이전에 예비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입니다.(에페1,4참조)
(히브9.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여인의 죄가 이미 용서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세의 중재로 이루어진 새 돌판, 곧 새 계명, 새 계약으로입니다.(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 쓰신 이유입니다.
9ㄱ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 자신의 죄를 감추고 있어 용서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9ㄴ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 죄가 드러난 여자만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 예수님의 새 계약의 용서로 서 있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죽으심)으로 여자가 서 있습니다. 살았다는 것입니다.
참조~
(로마3.20-21)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제사와 기념일, 법 지킴, 등 그 인간의 의로움은 구원의 힘이 없습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죄의 용서는 우리의 어떤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대속을 진리로 깨닫는 것이라 말하면 많은 사람이 사람의 규정과 교리, 계명 등으로 돌을 던질 것입니다.(마르7,7 티토1,14참조) 그때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를 저버려 다시 죄의 상태로 돌아가는 그 죄짓지 마라 하십니다.
흔들리지 않고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하신 말씀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안에 지켜 그 말씀으로 사는 것, 실행입니다.
구원을 위한용서는 우리의 힘, 노력, 그 어떤 열심히도 될 수 없습니다.
(야고2,10)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흠도 티도 없는 완전한, 깨끗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흠도 티도없는 이가 대신 죽어 그 피로
씻기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1베드1,2)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선택하신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룩해져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고, 또 그분의 피가 뿌려져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히브10,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