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월요일] 고향방문 (루카4,24ㄴ-30)

2020. 3. 16. 오전 6: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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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16일 월요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고향방문 (루카4,24-30)

 


1독서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2열왕5,1-15)

1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2 한번은 아람군이 약탈하러 나갔다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 곁에 있게 되었다.

3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

4 그래서 나아만은 자기 주군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아뢰었다.

5 그러자 아람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써 보낼 터이니, 가 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가 임금님에게 닿는 대로, 내가 나의 신하 나아만을 임금님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십시오.”

7 이스라엘 임금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느님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다니! 나와 싸울 기회를 그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8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9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10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11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12 다마스쿠스의 강 아바나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성을 내며 발길을 옮겼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화답송 시편 42(41),2.3; 43(42),3.4(4241,3)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루카4,24-30)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열왕5,1-15ㄷ)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 질 것입니다." (10)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4)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라는 엘리사의 명령은 율법의 명령이다.

"정결하게 되려는 이는 자기 옷을 빨고 털을 모두 민 다음에 물로 몸을 씻으면 정결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진영으로 들어가 자기 천막 밖에서 이레 동안 머무른다. 이레째 되는 날에 그는 다시 털을 모두 민다. 머리탈과 수염과 눈썹까지 털을 모두 민다. 그런 다음 옷을 빨고 물에 몸을 씻으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 (레위14,8.9)


그러나 율법에서 몸을 씻는 것은 나병이 완전히 고쳐지고 나은 다음에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거하는 상징적인 의식 행위였다. 그런데 열왕기 하권 510절에서는 깨끗하게 되기 위한 예비적 동작으로 몸을 씻는 행위를 명령한 것이다. 그러니까 의미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예수님께서 한 소경을 치유하실 때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요한9,7) 하시니, 이에 소경이 즉시 순종하여 가서 씻었드니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다시 말해서 엘리사가 나아만으로 하여금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게 한 것은 치유를 위한 행위이거나 치유 후 행하는 의식적 행위에 대한 명령이라기 보다는 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일곱 번이나 씻으라고 한 것은 완전한 순종에 대한 요청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인내까지도 포함된 명령인 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하다','만족시키다'란 뜻의 히브리어 '샤바'(shaba)에서 온 말이 일곱(shibah)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곱''완전(충만) '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예리코성을 점령할 때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렛날에는 사제 일곱 명이 뿔 나팔을 부는 가운데 에리코 성읍을 일곱 번 돌아라고 명령하신 말씀(여호6,3-5)36개월 동안의 가뭄 끝에 엘리야가 자기 시종에게 비올 증거를 찾는데 일곱 번을 다녀오라고 명령한 것(1열왕18,43)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일곱 번씩이나 같은 행위를 하게 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지 못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만 치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고찰해 볼 때, 엘리사의 명령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나아만의 교만을 부수기 위한 것이다.

외연상으로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군인 반면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예언자에 불과했기에 나아만이 교만한 자라면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만한 자에게는 하느님께서 결코 당신의 전능과 은총을 베풀지 않으신다.


"주님을 경외함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의 길을,사악한 입을 미워한다." (잠언8,13)

"주님께서는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역겨워하시니 그런 자는 결코 벌을 면치 못한다." (잠언16,5)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야고4,6; 잠언 3,34)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루카16,15)


둘째로, 나아만의 나병이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만 치유됨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주술 행위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러한 처방은 커녕(1열왕5,12),아주 평범하게 여겨오던 혼탁한 요르단 강에서 씻으라는 처방을 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14)

본절의 '내려가서'라는 말속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다.

첫째로, 나아만이 요르단 강으로 내려갔다는 뜻이다. 당시 엘리사가 있던 곳은 사마리아 땅의 고지대이므로 나아만은 상당한 거리를 여행하여 요르단 강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둘째로, 나아만이 예언자의 말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담갔다'에서 '담그다'라는 말은 몸에 물을 완전히 적시거나(2열왕8,15) 물속에 몸을 전부 집어넣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모세오경에는 이 단어가 '피에 찍다'(레위14,6),'기름에 담그다'(신명33,24), 사무엘 상권 1427절에는 '꿀을 찍어'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나아만은 예언자의 명령에(1열왕5,10) 보다 더 철저하게 몸을 씻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만이 병이 치유되고 그가 어린아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진 것은(1열왕5,14) 그의 철저한 순종적 행위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본절에 나타난 '일곱 번'은 나아만이 엘리사의 요구에 얼마나 철저히 순종했는가를 나타냄과 동시에 나아만의 나병이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 치유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일곱은 하느님의 완전함과 충만함을 뜻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복음(루카4,24ㄴ~30)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5~26)


예수님께서는 당신 고향 사람들이 당신을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는 것과 유사한 일이 구약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의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하늘이 닫혀'에 해당하는 '에클레이스테 호 우라노스'(ekleisthe ho ouranos; the heaven was shut)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으셨음을 나타내는 유대인의 관용적 표현이다.


열왕기 117장과 18장에 의하면, 엘리야 시대의 가뭄은 3년이었다 (1열왕17,1; 18,1.2.45).

하지만 그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때의 가뭄이 36개월이었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야고보 사도 역시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야고 5,17).


이같은 차이는 열왕기 저자가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 기간을 빼고,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계산한 반면에, 예수님과 야고보 사도는 늦은 비가 내리는 4월과 이른 비가 내리는 10월 사이의 건기 기간도 비가 내리지 않았던 기간에 포함시켜 보다 정확하게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비가 온 때가 4월이었고(1열왕17,1), 3년 후에 비가 내린 때가 10월 이었다면(1열왕18,1.2.45), 엘리야 시대의 가뭄이 계속된 기간은 정확히 36개월이 되는 셈이다.


한편, 이러한 36개월이라는 기간은 신구약 중간 시대의 시리아의 통치자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nchus Epiphanes) 박해 이래로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말하자면, 36개월이라는 기간은 큰 재앙과 시련의 기간으로 유대인들에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재앙과 시련의 기간은 엘리야 시대의 가뭄의 기간과 일치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아합 임금은 그 심각한 가뭄을 염두에 두고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는 자'라고 비난했으며(1열왕18,17), 엘리야는 그 심각한 가뭄이 아합 임금의 우상 숭배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정확히 지적하며, '임금님과 임금님 조상의 집안이 이스라엘을 불행에 빠뜨리게 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1열왕18,18).


한편,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있다는 사실을 엘리야가 그 혹심한 가뭄의 시기에 이방의 한 가나안 과부에게만 대접받았다는 사실을 들어 지적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엘리야 시대에도 그의 고향 사람들이 예언자를 대접할 줄 몰랐듯이, 예수님 시대에도 당신의 고향 사람들은 메시야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뭄 때에 엘리야 예언자는 크릿 시내에 머물다가 그곳 물마저 마르자 (1열왕17,3~7)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간다(1열왕17,9~10). 시돈은 팔레스티나 북부 이방 지역 중의 하나이므로, 엘리야는 이방 땅으로 보내진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섭리와 명령에 근거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에는 그 혹심한 가뭄의 시간에 엘리야를 대접할 만한 인물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은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예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과거 엘리야의 예를 들어 당신의 처지를 설명한 것이다.


한편, 구약에서는 '차레팟트'(tsarephath)로 불린 지명이 예수님에 의해서 '사렙타'로 불리웠는데, 이것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예수님의 모국어)의 발음상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사렙타'는 티로와 시돈 사이에 위치한 한 성읍으로서 '제련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Surafend'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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