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화요일] “당신이 누구요?” (요한8,21-30)

2020. 3. 31. 오전 6: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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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31일 화요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당신이 누구요?” (요한8,21-30)

   

1독서 <물린 자는 누구든지 구리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민수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화답송 시편 102(101),2-3.16-18.19-21(2)

주님, 제 기도를 들으소서. 제 부르짖음이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주님, 제 기도를 들으소서. 제 부르짖음이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곤경의 날에, 당신 얼굴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당신 귀를 제게 기울이소서. 제가 부르짖을 때 어서 대답하소서.

민족들이 주님 이름을, 세상 모든 임금이 당신 영광을 경외하리이다. 주님은 시온을 세우시고, 영광 속에 나타나시어, 헐벗은 이들의 기도를 굽어 들어주시고, 그들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리라.

오는 세대를 위하여 글로 남기리니, 새로 창조될 백성이 주님을 찬양하리라. 주님이 드높은 성소에서 내려다보시고,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리니, 포로의 신음을 들으시고, 죽음에 붙여진 이들을 풀어 주시리라.

 

복음<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민수21,4-9)

모세오경의 넷째 책의 히브리 이름은 '베미드바르'(광야에서)이다. '광야에서의 여정'이라는 책 내용과 어울린다.

우리말 이름 민수기(民數記)는 칠십인역 그리스어 성경의 이름 '아리트모이'<(인구)수들>에서 왔다. 그리스 이름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두 번 있었던 인구 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리스 이름 따라 이 책의 주역들에 초점을 맞추어 두 부분으로 나눈다.

첫째 부분(1-25)은 반역의 구세대를 묘사하고, 둘째 부분(26-36)은 희망의 신세대를 묘사한다.

반면에 히브리어 이름 따라 삶의 자리에 초점을 맞추어 민수기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1,1-10,10)은 시나이에서 광야 여정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다. 시나이 산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그분을 합당하게 모시고(성소에 대한 규정) 섬겨야 하는지(제물에 대한 규정)를 다룬다.

둘째 부분(10,11-21,35)은 시나이에서 모압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세째 부분(22-36)은 모압에서 가나안 진입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다.

요르단 강 동쪽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이미 정복한 땅과 앞으로 정복할 땅의 분할 원칙이 소개된다.


오늘 독서는 민수기 214-9절로서 둘째 부분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을 떠나 광야를 가로질러 마침내 요르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는 광야의 여정을 다루는데, 여기서는 구세대의 반역이 중요한 주제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권위와 모세의 지도력에 도전한다.


11장에서 백성은 음식에 대해 불평한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하는 불평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빵과 곁들여 먹던 갖가지 양념과 생선과 채소가 그리워서 하는 불평이다. 광야에서 그런 것을 먹겠다는 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억지다.

12장에서는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 그의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모세의 지도력에 도전을 한다.

13-1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서 과연 자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안전하게 이끄실 수 있는가 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심한다.


하느님은 백성의 이런 불평과 반발에 대해서 엄한 벌을 내리신다. 이집트에서 막 탈출했을 때 하던 불평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받아 주시고 해결책을 제시하셨지만, 여기서는 그동안 백성이 하느님의 능력과 보살핌을 충분히 보아왔음에도, 여전히 불신과 반역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들을 엄하게 다스리신다.


하느님은 불 뱀들을 통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였다.(21,6) 그리고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 되었지만, 모세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한 이들의 소원을 들어 모세가 중재자의 기도를 바치니(21,7)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

"너는 불 뱀을 구리(청동)으로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21,8)


불 뱀은 죄와 그 벌로서의 죽음을 상징한다. 기둥 위에 매달린 구리뱀도 그들의 죄와 죽음을 의미하나, 그들의 죄를 다 뒤집어쓰고 대신 죽음으로써, 그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온다.

바로 신약의 예수님의 구원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십자가 구속사업을 미리 예표한다.


인류의 첫 사람이 교만과 불순명으로, 지선악과 나무에서 금한 실과를 따 먹어, 이 원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들어 왔는데, 이제 나무로 말미암아 지은 죄를 나무로 속죄하는 구원의 길을 성부께서 열어 주셨다.

예수님이 우연히 목수의 아들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만지고 못과 망치를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인류 구원이라는 십자가 나무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우연히 방을 청소하다가 메모를 한 성경 말씀을 발견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 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마르9,43-47)

이 성경 쪽지에서, "네 손"이란 글자에는 "예수님의 못박힌 두 손", "네 발"에는 "예수님의 못박힌 두 발", "네 눈"에는 "예수님 자관에서 흘러나온 피가 눈을 적심"이란 메모를 발견했다.


오늘 같은 날, 우리 영혼의 교과서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누군가의 예수님 십자가 그림에는, "How much do you love me?"(당신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This much"(이만큼)이라고 쓰여 있단다. 십자가 안에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크기와 깊이가 다 들어있음을 관상해야 한다.


로마에도 예루살렘 성 십자가 성당이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 조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모우면, 한 방 가득하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가짜도 많다는 것이다. 십자가 나무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제물로 거기에 달리셔서, 성부 하느님께 봉헌되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누가, 예수님께서 못박혔던 진짜 십자가 나무 조각이니, 여기에 친구하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더라도, 혹세무민하는 말에 넘어가는 저급한 신앙생활을 하지말고, 예수님 십자가의 구속의 정신, 사랑의 영성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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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화요일 복음(요한8,21~30)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리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28-29)


'너희가 들어 올린'에 해당하는 '호탄 휩소세테'(horan hypsosete; when you have lifted up)가 실제로는 현재형으로 번역되고 있다(when you lift up).


희랍어에서 부정 과거가 직설법에서만 과거의 의미를 지닌다는 법칙이 있으므로, '휩소세테'(hypsosete)는 과거나 미래 완료로 볼 것이 아니라 '실제로 든다'는 동작의 개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으며,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뒤에야 ~깨달을 뿐만 아니라 ~깨달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토테 그노세스테'(tote gnosesthe; then you will know)는 직역하면 '그리고나서 너희가 알 것이다'가 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비로소 그분이 말씀하신 내용들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깨달을'로 번역된 '그노세스테'(gnosesthe)'기노스코' (ginosko)의 미래 중간태이다. 희랍어에서 중간태의 특징은 동작의 주인공을 강조하며, 동작과 주격을 보다 밀접하게 관계지어 준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때가 이르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실하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므로, 예수님을 거부하면 그 사람들조차 이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강조의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고 심판하시는 주님으로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한편 요한복음 829절은 앞의 828절와 함께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심으로써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하시는 친밀한 일치의 이유가 당신 자신이 하느님께서 언제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임을 밝힌다.


 '마음에 드는 일을'에 해당하는 '타 아레스타'(ta aresta; what please him; those things that please)는 복수형으로서 '기뻐하는 일들', '뜻에 맞는 일들'이라는 뜻이며, 예수님께서 힘써 추구하시는 것들이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에 맞는 일로서 그분의 기쁨이 되는 일들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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