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9일 목요일
[성주간 목요일] 기름을 부어 주시니 (루카4,16-21)
제1독서<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기쁨의 기름을 주게 하셨다.> (이사 61,1-3ㄹ.6ㄱㄴ.8ㄷ-9)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맥 풀린 넋 대신 축제의 옷을 주게 하셨다.
6 너희는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일컬어지리라.
8 나는 그들에게 성실히 보상해 주고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어 주리라.
9 그들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그들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화답송 시편 89(88),21-22.25와 27(◎ 2ㄱ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 나는 나의 종 다윗을 찾아내어,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노라. 내 손이 그를 붙잡아 주고, 내 팔도 그를 굳세게 하리라. ◎
○ 내 진실 내 자애가 그와 함께 있으니,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이 들리리라.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제2독서<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다.> (묵시1,5-8)
5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복음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루카4,16-21)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성주간 목요일 제2독서 (요한묵시1,5 - 8)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6)
6절 역시 5절에 이어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찬양과 영광송으로써 본절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 우리를 한 나라로 이루어 사제로 삼으셨다' 는 것이다. 이것은 5절에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한 구속 사업의 두가지 결과를 언급한 것이다.
이것 역시 탈출기 19장 5절과 6절 곧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 줄 말이다" 라는 문구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인다.
베드로 사도 역시 이것을 인용하여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베드2,9)고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은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던 사탄의 세력을 굴복시킴으로써 집합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구성된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담이 범죄한 후 단절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대속적 죽음으로 회복시킴으로 인하여 개별적으로는 성도 개개인을 직접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하느님의 사제(히에레이스; hiereis)로 만들었다.
전자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적 지위를 부각시킨다면, 후자는 거룩하신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직접적 접근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내용은 묵시록의 결론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반복 선포된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묵시21,3)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을 받아 걸어 다니고, 땅의 임금들이 자기들의 보화를 그 도성으로 가져갈 것입니다"(묵시21,24).
한편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위하는 일이었다. 이런 사실은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 이란 표현에 잘 드러나고 있다.
즉 이것은 성부 하느님께서 세우신 인류 구원 사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업이 오로지 성부 하느님을 위한 일이었음은 본문 뿐 아니라 요한 복음에서도 누차 강조되고 있다(요한6,38-40; 8,42 ;10,37.38 ;17,4).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이 그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나라가 되고 또한 개별적으로는 영적 사제가 되게 하는 귀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사건 앞에서 요한 사도가 이것을 가능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비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독사'(doxa)는 본래 '영예'나 '명성'을 뜻하며, 하느님과 관련해서 사용될 때에는 '신성으로 거룩하심','존귀나 위엄','권능' 등을 뜻한다. 그러나 원초적으로는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은 영광스럽게 하는 대상을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사제로 삼으셨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러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신다(요한17,5).
하느님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신 분이요, 하느님의 유일한 진리를 인간에게 전달하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셨으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께 세세토록 영원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편,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크라토스'(kratos)는 일반적으로 '신적 권세' 나 '통치권'을 의미한다. 여기서 언급된 '크라토스'는 '적에 대한 승리' 또는 '법이나 규칙에 의한 통치'를 뜻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 표현으로부터 오늘날 '민주정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나 '전제정치'를 뜻하는 '오토크라시'(autocracy)등의 '크라시'란 단어가 파생되었다.
이러한 권세와 능력은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마지막 통치를 연상시키는데, 요한 사도는 묵시록의 머리말인 1장 5절, 6절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승리적 통치를 언급한다. 이것은 총체적인 악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통치 역시 묵시록의 뚜렷한 주제가 될 것임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묵시록의 앞으로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7)
'보십시오'(이두;idu)라는 감탄사를 필두로 시작되는 본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재림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리라는 기대는 이미 공관복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온다 (마르코13,26; 14,62; 마태24,30; 26,64; 루카21,27).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진술을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종말론적인 후렴구' 로 간주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절은 다니엘의 환시와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 7장 13절에는 "사람의 아들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이나 히브리 사상에서 '구름'(톤 네펠론; ton nephelon)은 주로 '하느님의 임재와 현현' 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탈출13,21;16,10; 마태17,5 ; 사도1,9).
따라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는 언급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신적 임재와 현현을 나타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진술이다.
특히 여기서 '오십니다'로 번역된 '에르케타이'(erchetai)는 본래 '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에르코마이'(erchomai)의 직설법 현재형이지만, 여기서는 미래적 현재형으로 사용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묵시3,11; 22,7 ; 12,20).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재림의 성격이 그의 강생과는 대조적으로 공개적일 것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눈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재림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될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그분의 재림을 볼 것이다.
여기서 '찌른'으로 번역된 '엑세켄테산'(eksekentesan)은 '분리'나 '이탈'의 의미를 나타내는 '에크'(ek)와 그 자체로 이미 '찌르다', '꿰뚫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켄테오'(kenteo)의 합성어인 '엑켄테오'(ekkenteo)의 부정 과거형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신약 성경에서 본문과 즈카르야서 12장 10절을 인용한 요한 복음 19장 37절에서만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요한19,37).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찌른 로마 병사는 한 명이었지만, 그분을 찌른 자들이 복수형으로 나온 것은, 그 배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의 정치 권력의 야합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당시나 모든 세대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증거를 '적대적으로 대한 모든 이들'을 아울러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는 그의 재림이 그 자체로 축복이지만, 그것을 적대적으로 대한 모든 이들에게 있어 그의 재림은 그 자체로 심판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즈카르야서 12장 10절에서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 라고 되어 있는데, 본문은 이러한 사상을 계승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슴을 칠 것이다' 로 번역된 '콥손타이'(kopsontai)는 문자적으로 '자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콥토'(kopto)의 미래 중간태로 '자기 자신을 자른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묵시록에서 바빌론으로 상징된 로마의 패망과 관련되어 언급된 바 있다(묵시18,9).
그런데 즈카르야서 12장 12-14절을 감안하면, 묵시록 19장 9절이하는 '바빌론 왕들의 비통함'을 표현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땅'(게스; ges)이라는 표현이 첨가되어, 그 애통함과 비통함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즉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향이 '땅에 있는 모든 종족', 곧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으로 통칭되는 전 인류(묵시5,9 ;7,9 ;10,11 ;13,7 ;14,6 ;17,15) 에게 미칠 것이라는 계시가 아닐 수 없다.
이 놀라운 일은 진실로 반듯이 될 일이므로,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나이 아멘; nai amen) 이란 표현을 덧붙이는 요한 사도의 기록은 너무나 타당하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로 번역된 '나이'(nai)는 '아멘'과 동일한 의미로서, '나이'가 희랍식의 긍정을 의미한다면, '아멘'(amen)은 히브리식의 긍정을 뜻한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8)
하느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소개한다. '알파와 오메가'는 희랍어 알파벳의 처음과 끝글자를 뜻하므로, 의미상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시작과 끝' 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희랍 철학의 전통을 감안할 때,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은 '지극히 높으신 신의 영원성'을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본절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자기 칭호인 '알파와 오메가'는 묵시록 전체의 구조와 관련해서 매우 독특한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하느님께서 만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또한 만물을 종말론적인 성취로 이끄실 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신적 자기 선포가 묵시록에서 단지 두 차례만 등장하고 있다.
첫번째는 요한 사도가 환시를 보기 전인 묵시록 1장 8절에서 등장하고, 두번째는 하느님의 피조 세계 전체에 대한 종말론적인 성취가 '다 이루어졌다' 라고 선포한 바로 그 시점에서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라고 언급된다(묵시21,6).
말하자면, 요한 사도는 자신의 저술에 교차 대구법적인 구조를 사용하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느님의 면모를 매우 정교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께서는 창조의 시작으로 '알파'이시며, 새 창조(구원)의 완성으로 '오메가'이신 것이다.
성주간 목요일 복음 (루가 4,16-21)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1)
아마도 성경 봉독 후 예수님께서 하신 교훈의 말씀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깊었으며, 내용도 풍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카 복음 4장 21절과 18절, 19절의 내용만으로도 예수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의 요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므로, 루카 복음사가는 루카 복음 4장 21절로 압축 요약해서 전달하였다.
21절에서 '이루어졌다'로 번역된 '페플레로타이'(peplerotai; is fulfilled)는 구약 예언의 완성과 성취를 드러내는 전문용어인 '플레로오'(pleroo)의 수동태 완료로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의 예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회당의 청중들에게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이사야서 61장 1~2절에 나오는, 주님의 영을 받은 의로운 종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며, 당신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증명하는 중요한 예언으로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앞으로 계속 성취될 예언이기도 한 것이다.
즉 가난한 이들이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고, 죄와 죽음의 권세에 잡혔던 이들이 자유롭게 되며, 영적으로 눈먼 이들이 진리를 보게 되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희망 가운데 기쁨을 회복하며, 주님께서 베푸실 구원의 은혜로운 해가 도래하는 등의 일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되어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와 생명, 자유와 평화, 그리고 치유와 하느님의 의로운 통치를 동반하고 육화(강생)하신 천주 성자 제2위 하느님이시다.
이처럼 예수님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되어 가는 이같은 일들은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으며, 예수님 재림때까지 끊임없이 진행될 것이다.

2020년 4월 9일 성주간 목요일
<신앙생활은 먼저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뜻을 깨닫고 움직이는 것>
(루카4,16-21)
신앙생활은 먼저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뜻을 깨닫고 움직이는 것, 그래야 하느님께 가는 길을 잃지않고 똑바로 갈 수 있습니다. 먼저 움직이면 엉뚱한 길에서 헛된 신앙을 살게 됩니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물질과 명예와 기적들의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해방의 희년을 선포하심으로 구원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사람들이 악마(뱀)의 유혹에 넘어가 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뜻인 말씀을 육의 욕망, 그 자신들의 뜻을 위한 법으로 받아 모든 이가 구원의 하느님 말씀(약속)을 받지 못한 가난한 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 것에 묶여 성경 말씀에 들어있는 구원의 진리를 보지 못하는 눈먼 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위해 살지 못하는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 모든 죄의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께서 해방의 기쁜소식,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승리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복음인 것입니다.
이제 그 구원의 기쁜소식, 그 복음으로 하늘의 부자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하늘의 진리를 보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성경의 말씀은 ‘듣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요한6,39)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 어떻게?
(마태20,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의 몸값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대속의 죽음으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찿아야 할 하늘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 약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요한19,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 그래서~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생명)의 진리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드리면 세상의 법에서 해방입니다.
(요한16,8) 보호자(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선과 악의 세상의 심판은 구원에 있어서 그릇된 생각입니다. 구원은 세상이 정한 의로움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의로움으로 가는 것입니다.
(로마3,23-26)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26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 성령이여~! 믿음을 주소서.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하느님의 길, 그 뜻은 찾지 않고 내 뜻을 위한 신앙의 길을 가고 있기에 성경은 오늘도 돌아오라고(회개) 하십니다. 성령이여~의탁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