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목요일]하늘나라의 제자(마태 13,47-53)

2019. 8. 1. 오전 4: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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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간 목요일]하늘나라의 제자(마태 13,47-53)


모세가 성막을 세우고 증언판을 가져다 궤 안에 놓자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찬다. (탈출40,16-21.34-38)
그 무렵 16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7 마침내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성막이 세워졌다.
18 모세는 성막을 세우는데, 먼저 밑받침을 놓은 다음  널빤지를 맞추고 가로다지를 끼운 뒤, 기둥을 세웠다.
19 또 성막 위로 천막을 치고 천막 덮개를 그 위에 씌웠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20 그런 다음 증언판을 가져다 궤 안에 놓았다. 그 궤에 채를 끼우고 궤 위에 속죄판을 덮었다.
21 또 궤를 성막 안에 들여놓고 칸막이 휘장을 쳐서 증언 궤를 가렸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34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5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천막 위에 자리 잡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36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모든 여정 중에, 구름이 성막에서 올라갈 때마다 길을 떠났다.
37 그러나 구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 구름이 올라가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다.
38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에 비유하시며, 세상 종말에는 악한 자들을 가려낼 것이라고 하신다.(마태 13,47-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제1독서(탈출40,16~21.34~38)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4)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천막 위에 자리잡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35)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38)

 

 

탈출기 40장 34절'만남의 천막'에 해당하는 '에트 오헬 모에드'(eth ohel moed;

the tent of meeting)에서 '만남의 천막' '천막'(tent; 장막)을 뜻하는 '오헬'(ohel)

'만남'을 뜻하는 '모에드'(moed; meeting; congregation) 합성어이다.

 

'성막'이라고 표현된 '미쉬칸'(mishikan; tabernacle)'만남의 천막'(ohel moed;

오헬 모에드)이라고 언급된 이유는 이곳이 바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는

장소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하느님께서는 '성막'이 완성되자 간택한 백성들을 만나시기 위해 친히 찾아오셨고,

모세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남의 천막'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로 번역된 '우케보드 예흐와'(ukebod yehwah; and the glory

of the LORD)에서 '카보드'(kabod)'영광', '존귀', '위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무겁다'(욥기6,3; 애가3,7)는 뜻을 가진 '카바드'(kabad)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용례로 쓰이는데, 첫째는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존경이나 영광,

영예(탈출15,11; 시편66,2; 이사40,5)를 가리키며, 둘째는 하느님의 가시적 현현

가리킨다(탈출16,10; 24,16; 2역대7,1).

 

탈출기 40장 34절의 표현은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명령에 따라 지어진 성막에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친히 임재(현존)하셔서 그들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세는 만남의 천막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야콜 ~ 레~'(yakol ~le ~)'~할 수 있다'라는 뜻인데, 여기에 강한 부정이나

금지의 의미를 지니고서 주로 율법이나 계명과 관련해 사용되는 부정어인 '로'(lo)가

결합되면, '절대 ~할 수 없다'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모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영광이 임한 성막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으므로 결코 들어갈 수 없었고, 또한 하느님께서 그를

들어 오지 못하게 강력하게 막으셨다는 사실을 추측케 한다.

 

이처럼 모세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갔던 위대한 영도자요, 율법과 계명을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던 최고의 예언자였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결코 주님의 영광이 머문 장소에는 자의적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천하의 어떤 인간도 죄인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은총으로 부르시고

의롭게 해 주시지 않으면, 존귀와 영광으로 가득 찬 하느님의 옥좌로

나아갈 수 없음을 계시해 준다(로마8,30).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원문은 '웨에쉬 티흐예 라일라 뽀'(weesh thihye lailla bo; and fire was

in the cloud by night)이다.

 

여기서 '뽀'(bo)'~안에'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뻬'(be)에 3인칭 대명사

어미가 붙은 형태로, 직역하면 '그것 안에'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낮의 구름 기둥이 밤에는 빛과 열을 내뿜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어

불 기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아침과 저녁으로 급변하는 중근동의

기후 환경에 맞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살펴 주셨다.

 

팔레스티나나 중근동 지역은 무려 50도의 일교차를 보이기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시원하게 하였고, 밤에는 그 구름 기둥에서 나는 불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13,47-53)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47~50.52ㄴ)

 

마태오 복음 13장에서 전개되는 하늘 나라의 비유 가운데 마지막 일곱번째  비유인

'그물의 비유'이다.

 

'그물의 비유'의 핵심은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에 있지 않고, 물가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여 나쁜 것은 버리는 데에 있다.

 

마태오 복음 13장 24~30절'가라지의 비유'처럼,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종말론적인 심판은 의인과 악인을 구별해 내어 악인은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여기서 '그물'로 번역된 '사게네'(sagene; a net)저인망을 가리킨다.

 

떼 지어다니는 고기를 대량으로 잡기 위해 두 배 끝에 그물을 고정시켜 놓거나

이러한 저인망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움직이는 배로 그물을 끌어 그곳을 지나가는

고기들을 잡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물이 지나가는 곳의 거의 모든 종류의 고기들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고기'로 번역된 '판토스 게누스'(pantos genus; all kinds)에서

'판토스'(pantos)'모든'(all)을 의미하는 형용사 '파스'(pas)의 소유격이며,

'게누스'(genus)의 원형 '게노스'(genos)'종족', '민족', '자손', '혈통',

'같은 종(種)'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고기를 비롯하여 바다 속에 서식하고 있는

각종 생물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판토스 게누스'(pantos genus)는 각종 고기 뿐만 아니라 바다 속에서

그물로 잡을 수 있는 각종 모든 생물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것은 예인망에 잡다한 모든 바다 생물들이 걸려드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인종과 성별, 악인과 의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에서 '좋은 것'으로

번역된 '타 칼라'(ta kala; the good) '적합한 것들', '쓸모있는 것들'이라는 의미이며,

'나쁜 것'으로 번역된 '타 사프라'(ta sapra; the bad)는  '썩은 것들', '무가치한 것들'

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갓 잡아올린 고기 및 바다 생물들이 썩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기에

'무가치한 것들'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타 사프라'(ta sapra)는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의미가 아닌, 사람의 사용 용도에

미치지 못하는 '무가치하고 쓸모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종말론적인 심판의 맥락에서 '악한 자'로 적용되고 있다(마태13,49).

 

이런 의미에서 49절'심판받을 악한 자'는 도덕적인 차원보다는, 하느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전혀 쓸모없는, '사용 가치적 차원'에서의

'악한 자'라고 볼 수 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도 최후에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져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되는 자는 바로 '쓸모없는 종'이었다(마태25,30).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이것은 어부가 쓸모있는 고기만 그릇에 담고, 쓸모없는 고기는 내버리는 것처럼,

세상 종말의 때에 있을 심판의 양상도 똑같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여기서 '종말'로 번역된 '쉰텔레이아'(synteleia; end) '완료', '완성', '끝',

'종결'을 의미하는 명사이므로, 여기서의 심판의 때는 세상이 그 사명을 완성하고

종결되는 그 종말의 때를 말한다.

 

따라서 이 본문은 종말론적 심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장면이다.

 

종말론적 심판의 때에는 무엇보다도 '가려내는 작업'이 있게 된다.

 

여기서 '가려내다'는 의미로 번역된 '아포리우신'(aphoriusin; sever; separate)의

원형 '아포리조'(aphorizo)'경계를 지어 어떤 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하다',

'분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뒤엉켜 존재하고 있던 악한 자들은 이제 의인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의인과는 영원히 다른 운명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악한 자'로 번역된 '투스 포네루스'(tus ponerus; the wicked)는 물가에서 버려진

'나쁜 것' '타 사프라'(ta sapra; the bad)일맥상통한 것으로서, 적극적인 악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가치있고 쓸모있는 '의'(義)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 자들을 말한다.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여기서 '던져 버릴 것이다'로 번역된 '발루신'(balusin; throw)의 원형 '발로'(ballo)

48절의 '던져 버렸다'로 번역된 '에발론'(ebalon; threw)의 원형과 동일한 동사이다.

 

어부가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고기들을 인정사정없이 던져 버리는 것처럼, 최후 종말의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소용되는 '의'(義)가 결핍되어 있는 악한 자들을 향해 조금도

동정을 보이지 않고, 영원히 타오르는 불구덩이(the firey furnace)속에 던져버릴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의 마음은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지만,

일단 세상이 끝나고 마지막 심판 때에 이르게 되면, 악한 자들을 향해 결코

열리지 않는 것이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옛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여기서 '자기 곳간'으로 번역된 '테사우루 아우투'(thesauru autu)'그의 보물',

'그의 창고'(his storeroom; his treasure)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축적한 지식의 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구절은, 집주인이 그의 창고에서 필요에 따라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꺼내

사용하며 가족 구성원들에게 마음껏 나누어 주는 것처럼, 하늘나라(천국)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들은 옛 진리, 즉 구약의 가르침과 새 진리, 즉 율법의 근본 의미와 정신을

바르게 해석해 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018년 8월 2일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빈 콩깍지

  -반영억신부-

저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성모동산이 있는 아름다운 성당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아주 작게 느껴져도 그 멋스러움은 여전합니다. 지금은 운동장이 되어있지만 텃밭에는 콩도 심겨져 있었고 들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퉁이에는 가로등이 밤새 켜 있었습니다. 가로등 가까이에 있는 콩과 들깨는 다른 것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잎도 넓었습니다. 그러나 가을 추수 때에 보면 열매가 없었습니다. 겉은 화려했지만 정작 속은 빈 껍데기였습니다. 낮에는 햇빛을 견디고 밤에는 어둠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입니다. 결국 곳간에 채워진 것들은 겉보기에는 초라했던 콩이고 들깨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16,2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양으로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여정 안에서 겪을 것을 겪으면서 견디고 받아들인 삶의 모양을 헤아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 감춰져 있는 악이 나타나지 않고 그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하더라도, 혹은 외적으로는 아무런 흠이 없고 유능한 사람으로 드러날지라도 그 사람의 참된 모습은 마지막 날 추수 때에 밝히 드러나므로 지금누리는 것들이 헛된 기쁨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처한 시련과 어려움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기를 희망합니다.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을 끌어올려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렸다.(마태13,48)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여정이 이미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사실 이세상의 삶은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습니다. 실패가 없다는 것은 지금 정신을 차려 알곡의 삶을 살면 된다는 의미요, 성공이 없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종말에 천사들이 의인들 가운데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지금 새 삶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추수라는 심판의 두려움에 주눅 들지 말고 새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이 과거를 발판 삼아 오늘을 새롭게 하고 그리하여 복된 내일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어디든지 있는 것, 언제든지 있는 것, 얼마든지 있는 것은 희망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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