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화요일]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마태 8,23-27)
주님께서는 롯의 가족들을 소돔에서 빠져 나오게 하시고,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시어 그 성읍들을 멸망시키신다. (창세19,15-29)
그 무렵 15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며 말하였다. “자, 소돔에 벌이 내릴 때 함께 휩쓸리지 않으려거든, 그대의 아내와 여기에 있는 두 딸을 데리고 어서 가시오.”
16 그런데도 롯이 망설이자 그 사람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주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17 그들은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18 그러나 롯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리,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19 이 종이 나리 눈에 들어, 나리께서는 이제껏 저에게 하신 것처럼 큰 은혜를 베푸시어 저의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재앙에 휩싸여 죽을까 두려워, 저 산으로는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20 보십시오, 저 성읍은 가까워 달아날 만하고 자그마한 곳입니다. 제발 그리로 달아나게 해 주십시오. 자그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 목숨을 살릴 수 있겠습니다.”
21 그러자 그가 롯에게 말하였다. “좋소. 내가 이번에도 그대의 얼굴을 보아 그대가 말하는 저 성읍을 멸망시키지 않겠소.
22 서둘러 그곳으로 달아나시오. 그대가 그곳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내가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리하여 그 성읍을 초아르라 하였다.
23 롯이 초아르에 다다르자 해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24 그때 주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25 그리하여 그 성읍들과 온 들판과 그 성읍의 모든 주민, 그리고 땅 위에 자란 것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27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가 주님 앞에 서 있던 곳으로 가서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들판의 온 땅을 내려다보니, 마치 가마에서 나는 연기처럼 그 땅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29 하느님께서 그 들판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롯이 살고 있던 성읍들을 멸망시키실 때, 롯을 그 멸망의 한가운데에서 내보내 주셨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약한 제자들을 나무라시며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아주 고요해진다. (마태 8,23-27)
그 무렵 23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24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25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26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27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19,15~29)
"그들은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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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주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24)
그리하여 그 성읍들과 온 들판과 그 성읍의 모든 주민,
그리고 땅 위에 자란 것들을 모두 멸망시키셨다. (25)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26)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로 번역된 '힘말레트 알 나프세카'(himmallet
al napsheka)에서 '힘말레드'(himmallet; escape, flee)는 '말라트'
(mallat)의 수동형으로 '달아나다', '도망하다', '구원받다'라는 뜻이 있다.
하느님께서 제시하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라는 명령이다.
롯에게 달아날 것을 명령하신 것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뒤따르는 '알(for) 나프세카(the life)' 즉 '너의 생명을 위하여'
(for your lives)라는 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말하자면, 롯은 형벌을 피하기 위해 도망하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생명을 위하여'
구원되어지는 적극적인 초청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원문은 생명을 위한 유일한 길이 달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달아난 후가 아니라
달아나는 그 순간이 바로 생명을 보존하는 시간이 된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17)
창세기 19장 17절에 나오는 네 번의 명령 중에서 두 번은 '달아나라'는 것이고,
두 번은 본문처럼 부정어 '알'(al)이 붙은 '~하지 마라'는 명령이다.
'알'(al)은 일회적인 금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굉장히 단호한 명령임을 알 수 있으며,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명령을 어길 경우에는 하느님의 심판 아래
소돔의 멸망과 함께 생명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이다.
두 번의 '하지 말라'는 명령 중 첫번째의 동사 '탑비트'(tabbit; look)는 '나바트'
(nabat; 보다)의 사역형으로서 '관심을 보이다', '주의를 집중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첫번째 명령을 직역하면, '너의 뒤에 관심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돔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생명의 길을 달려가라는 것이다.
두번째 명령은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인데, 여기서 '들판'으로
번역된 '킥카르'(kikkar)는 보통 '들판'을 나타내는 '사데'(sade)와는 달리
'요르단 골짜기의 비옥한 둥근 지역'을 가리킬때 쓰는 말이다.
직역하면 '요르단 둥근 지역에 멈추어 서 있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혹시 롯이 중간에 머물러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육체의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하신 경고의 말씀이다.
생명은 결코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 그리고 물질에 대한 안주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24)
특히 하느님께서 행동이나 사건의 원인이나 주도자를 나타낼 때,
'하늘에서'처럼 '메에트'(meeth; ~로 부터, ~에서)라는 단어를 쓴다.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단어의 배열 순서인데, '당신이 계신 곳 하늘에서'의 순서를
보아야 한다.
이것은 유황의 심판이 자연적인 재앙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리신 재앙이라는
사실을 먼저 표기한다.
이것은 과거의 심판 뿐 아니라 장차 있을 최후의 심판도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직접 주관하신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히브12,23; 묵시18,8).
'퍼부으셨다'로 번역된 '히므티르'(himtir)의 원형 '마타르'(matar)는 사역형
능동 완료형으로 쓰여 '비같이 내렸다'는 뜻이며, 비같이 내린 사실과 더불어
그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즉 유황과 불이 비같이 쏟아지고 퍼붓는 것은 우연한 자연 현상이 아니고,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보여 준다.
'멸망시키셨다' (25)
'멸망시키셨다'로 번역된 '와야하포크'(wayahapok)는 '뒤집히다', '망하게 하다'
(신명29,22), '마음을 바꾸다', '변화시키다'(시편105,25) 라는 뜻을 갖고 있는
'하파크'(hapak)가 계속적 '와우'(wau)와 결합하여 미완료형으로 사용되어서,
앞선 사건의 결과로 '본래 있던 상태가 완전히 뒤집혀서 새롭게 변해 버린 것'을
의미한다.
원래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지역은 역청 수렁이 많았는데(창세14,10),
하느님의 불심판으로 말미암아 지층의 침강, 함몰 등으로 지중해 수면보다
약 392m가 더 낮은 죽음의 바다로 변해 버렸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26)
'돌아보다'에 해당하는 '나바트'(nabat)는 '조용히 바라보다', '주시하다'(이사18,4),
'우러러보다', '생각하며 바라보다'(이사51,2), '관심을 보이다'라는 뜻이다.
또한 '메아하라이우'(meaharaiu)는 '그의 뒤에서부터',
즉 '롯의 뒤에서부터'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롯의 아내는 롯의 뒤를 마지못해 따라오다가 뒤에 두고 온
모든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목하여 바라보다가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9장 17절에 나오는 천사들의 단호한 금지 명령을
가볍게 여긴 결과이다.
한편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여 달아나던 롯과 그의 가족 중에 그 근처에 있었던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유독 롯의 아내만 '소금 기둥'으로 번역된 '네트십
멜라흐'(netsib mellah; a pillar of salt)가 되어 버렸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불순종한 자만 구별하여 징계하셨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는
자연 법칙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초자연적인 분이시라는 사실과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은 개인별로 엄격히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사해 연안에 천사의 명령을 어긴 롯의 아내가 변해서 된 것으로 알려지는
소금 기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복음(마태8,23-29)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27)
마르코 복음 4장 36절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탄 배를 뒤따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 사람들은'에 해당하는 '호이 안트로포이'(hoi anthropoi;
the men)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탄 배를
뒤따랐던 무리들을 가리킨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마태오 복음 8장 26절에서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는 장면은 풍랑이 몰아치는 호수 위의 다른
배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놀라워하며'에 해당하는 '에타우마산'(ethaumasan; marvelled)의
원형 '타우마조'(thaumazo)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계시적 행위에 대한
인간의 놀람을 나타낼 때 사용되지만, 존경이나 의아해하는 감정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그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기이하게 여긴 까닭은 예수님께서 바람과
호수와 같은 자연 현상까지도 지배하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시므로
이런 일을 쉽게 행하실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무리들은
놀랍게만 생각되었던 것이다.
당시, '호수' 또는 '바다'가 종종 악(惡; evil)의 상징이며, 악(惡)이
거주하는 장소로 묘사되었다(시편65,8; 107,29-30).
따라서 예수님께서 호수를 복종케하신 사건은 제자들의 약한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한 시도인 동시에,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시는 구마와
치유의 의미까지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탄의 세력이 쫓겨나고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전주곡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이 기사 다음에 나오는 기사(마태8,28-34)가 가다라인들의
지방의 마귀들린 자를 치유하는 내용이라는 사실과 연결되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가진 힘>
오늘 복음의 주제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우리 일상의 그림자처럼 우리를 쫓아다닙니다. 두려움은 ‘별거 아니네!’로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별거 아니게 만드는 강한 무엇이 우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믿음은 내가 두려움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볼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임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안에 계신 분이 하느님이기 때문에 나도 하느님과 같음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고양이인 것을 알면 쥐를 두려워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고양이인 것을 모를 때는 쥐도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심지어 코끼리가 쥐를 제일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배 위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배는 우리 자신을 상징하고 바다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세상은 배를 뒤집어엎을 것과 같은 파도로 몰아칩니다.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세상이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도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믿음’을 갖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배 안에 계신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 믿음만 있다면 당신이 나서서 풍랑을 가라앉히십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꾸짖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청한 것은 믿음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바다는 잔잔해지고 제자들은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라고 말하며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덕분으로 두려움을 넘어봐야 더 큰 두려움도 넘을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어떤 아이가 길거리에서 이상한 총과 같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데 쓰는 물건인지 잘 모릅니다. 그 아이와 일행이 무서운 조직에 잡혔습니다. 소년은 무심코 그 물건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 물건은 외계인이 잃어버린 총이었던 것입니다. 그 괴력은 나쁜 조직원들이 혼비백산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떤 영화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우리도 성체성혈을 통해 우리 안에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들에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믿기만 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잠들어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어 놓는 행위입니다. 여차하면 당기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만 있다면 내가 세상을 두려워함이 아닌 세상이 나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