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대축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루카,3-7)

2019. 6. 28. 오전 4:57:19

글자
[예수 성심 대축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루카,3-7)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몸소 당신 양 떼를 먹이시고 그들을 누워 쉬게 하시리라고 한다. (에제 34,11-16)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3 그들을 민족들에게서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받게 되리라고 한다. (로마 5,5ㄴ-11)
형제 여러분, 5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9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늘에서는 더 기뻐한다고 하신다. (루카,3-7)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3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예수 성심 대축일 제1독서 (에제34,11-16)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14)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5)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붇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16)


에제키엘서 34장 14절 하느님께서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는 일의 결과로, 유다 백성이 이전의 고통과 아픔을 잊고 풍요로움과 안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교차 대구 구조를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14절에서 '좋은' 풀밭'기름진' 풀밭 동격으로 사용되었다. '좋은'에 해당하는 '토브'(tob)는 몇 가지 예를 들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있던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나무 열매(창세2,9)를 나타내는 데에 사용되었고, 이집트에 있던 칠 년 풍년 기간에 거둔 풍성한 수확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다(창세41,9).


그리고 '기름진'에 해당하는 '샤멘'(shamen) 역시 14절처럼 식물을 수식하는 경우

풍성한 소출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 선민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길 것이라는 말씀에서 이같이 먹을 것의 풍성함에 대해 강조하는 것 에제키엘서 34장유다 백성을 양에 비유하고, 하느님께 대해서는 그들을 먹이시는 목자로 비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유다 백성이 하느님의 징계로 인한 바빌론과의 전쟁을 겪고 선민 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칼에 죽은 사람이 굶주려 죽는 사람보다 복되다고 할 정도로 그리고 먹을 것이 없어서 자녀를 잡아 먹는 참혹한 상황을 겪었던 뼈 속 깊이 박힌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예레4,8-10; 5,9.10)


한편, 14절에서 양이 유다 백성이 회복되어 거처할 장소이스라엘의 '높은 산'에 있는 목장으로 묘사되었다. '높은 산'이라는 표현은 적들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높은 산'은 13절에 설명한 것처럼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장소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유다 백성에게 주어진 '높은 산'이 '좋은 목장'이 되는 것은 지형적인 안정성 때문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전능하신 힘과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족속이 우상을 섬겼지만(에제20,28), 하느님께서 그들을 바빌론을 도구로 사용해서 심판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신 이후에는 하느님을 예배하는 자들로 변화되어 그곳에서 하느님을 섬겼다(에제20,40).

 

본절에 기록된 '높은 산' 역시 지형적으로 안전한 산일 뿐 아니라 15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상이 사라지고 하느님께서 목자로 계시는 영적으로 안전한 산이므로 유다 백성은 더 이상 이방 민족으로 인해 수치와 멸망을 당하지 않으며, 영원히 안전하게 거처하게 될 것이다.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16)


앞에서 에제키엘서 34장 13절과 14절에서는 착한 목자이신 하느님께서 자신의 양 떼인 선민 유다 백성을 바빌론에서 구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어 기르시고 돌보실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34장 16절에서는 유다 백성의 개별성을 강조하면서 하느님께서 잃어버린 양, 흩어진 양, 부러진 양, 아픈 양을 먹이시고 돌보실 것이지만,  기름진 양과 힘센 양은 없앨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상 본절의 내용은 악한 목자들이 자행한 탐욕과 방임을 지적한 에제키엘서 34장 4절의 내용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에제키엘서 34장 16절에서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돌보심의 대상이 될  유다 백성을 비유하는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양에 대한 묘사본문에 기록되지 않은 '약한 양'에 해당하는 '한나홀로트'(hannaholloth)를 제외하고는 에제키엘서 34장 4절에 묘사된 순서와 역순으로 기록되었을 뿐, 에제키엘서 34장 16절 상반절의 내용과 동일하다.


이처럼 이미 앞에서 언급된 아프고 부러진 양들에 대한 치유와 회복에 대한 약속을 본문에서 다시 반복하는 이유는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백성들로부터 착취한 부로 자신의 배를 불린 자들에 대한 심판과 대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거짓 목자인 유다 임금들의 권력에 의지하여 백성들을 착취하는 일에 앞장서서 사리사욕을 챙겼던 대지주나 거상들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는 방법을 기술한 '내가 없애 버리겠다'에 해당하는 '아쉬미드'(ashimid; I will destroy)원형 '샤마드'(shamad)는  거의 모든 용례에서 자연적 멸망이 아닌 하느님의 심판에 의한 멸망을 의미하는 단어사용되었다(신명4,26; 28,26; 예레48,40).


결론적으로 거짓 목자들을 파멸시키시고, 자신의 양을 직접 돌보실  착한 목자로서 소개되는 하느님을 묘사하는 에제키엘서 34장 11-16절 단락에서, 15절까지는 자신의 양을 돌보시는 착한 목자로서의 이미지만 강조하다가 16절에서 처음으로 백성들을 괴롭혔던 자들에 대한 심판자로 드러난다.


특히 16절 마지막에 나오는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는 표현은 심판자로서의 하느님을 더욱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에제키엘서를 읽는 바빌론에 머무는 유다 포로 공동체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괴롭히는 자들에게 심판을 단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고,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자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 예수님의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오늘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 곧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그분의 마음 없이, 그리고 그분의 마음은 그분의 몸 없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체는 예수성심의 구체적인 표현이며 예수성심은 성체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신뢰하며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일생이 예수성심 공경에 대한 핵심입니다. 


예수성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공관복음의 표현은 바로 ‘가엾이 여기는 마음’(스플랑크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을 고쳐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회개가 필요한 한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애절한 사랑의 마음이 그분의 마음입니다(15,4-7). 이렇듯 예수님의 마음은 선(善)과 악(惡), 성(聖)과 속(俗)이 만나는 사랑과 관용의 마음이요 조건 없이 나를 전부 내어주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그저 나 밖의 존재를 대상화하여 일시적으로 자비를 베풀고 가슴 아파하는 것에 비할 수 없는 심오한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바로 아파하고 소외된 이의 존재 깊숙이 들어가 완전히 동화되어 함께 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웃의 인격과 삶의 상황을 완전히 품어야겠지요. 


예수님의 마음은 인간뿐 아니라 온 우주의 핵심이고, 하느님 체험의 장소이며 우주만물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주님의 인격의 중심은 최고의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체험한다는 것은 그분의 전인격과 그분이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주신 사랑을 체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로 충만한 예수님의 마음이 될 때 고통과 공허, 무와 죽음을 오히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또 우리가 그분의 사랑의 마음을 지닐 때 무의미한 듯 보이는 삶이 의미로 바뀌고 절망이 희망이 바뀔 것입니다.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목적은 주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하여 우리도 참된 사랑으로 보답하고 주님께서 당하신 수난을 보상하고 그분과 일치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부를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성심 안에서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되셨음을 체험합니다. 이 사랑에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마음, 곧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 안에서 온 힘을 모아 믿음을 고백하고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도 창에 찔린 그분의 마음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게 됩니다. 창으로 찔린 사랑하는 그 마음을 통해 절망과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마음을 느끼며, 그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 자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성심 안에서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되셨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사랑이 아닌 그 무엇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사랑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성심께 드리는 흠숭지례 의식의 정점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사랑’ 뿐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주시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삶의 자리에서 모두가 손잡고 그분의 성심을 드러내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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