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마태12,46~50)

2018. 11. 21. 오전 5: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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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마태12,46~50)


즈카르야 예언자는 시온에게, 만군의 주님께서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시리라고 한다. (즈카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다. (마태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제1독서 (즈카2,14-17)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6)

 

 

즈카르야서 2장 14절 이하는 이미 작년에 주해했으므로,

올해는  즈카르야서 2장 16절만 살펴본다.

 

즈카르야서 2장 16절의 예언 역시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모든 나라가 당신을 섬기도록 역사하실 뿐 아니라

특히 그 가운데서도 원래 계약의 백성이었던 남부 유다와 그 수도인 예루살렘을

높이 세우실 것이다.

 

본문에서 '거룩한 땅'에 해당하는 '아드마트 학코데쉬'(admath haqodesh;

the holy land)는 세속으로부터 철저하게 구분되어, 오로지 주 하느님께만

속한 땅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하느님께서 종말의 때에 당신의 임재와 현존의 장소로

삼으실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유다는 하느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당신 몫'에 해당하는 '헬르코'(hellqo; his portion)의 원형

'헬레크'(helleq)는 어원상 하느님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다는 의미이다(여호14,4).

 

이 단어와 앞의 동사 '웨나할'(wenahal; and will inherit)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동사의 원형 '나할'(nahal)소유나 상속, 몫, 유업으로 물려받거나

기업으로 삼는 행위를 말한다(탈출34,9; 여호19,9; 잠언3,35).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소유로 받았던 것처럼

종말의 때에는 주님께서 유다를 당신의 소유와 몫으로 삼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소유로 삼으신다는 것은

그들 가운데 당신의 거처를 정하신다는 것,

즉 당신 소유물인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복되게 하신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본문은 성전과 성벽이 재건될 것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훗날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거룩한 도성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묵시21,2).

 

이러한 예언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 즈카르야 예언자가 예언하는 예루살렘은

일차적으로는 지상의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새 예루살렘의 임금으로 좌정하셔서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을 통치하실 것이다.

 

 

오늘은 성모 자헌 기념일이다.

 

아마도 구약의 장소인 새 예루살렘 혹은 시온이라는 지명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거하실 처소인 성모님과 자모이신 성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성모 자헌 기념일날 위의 독서를 묵상하는 것으로 알아 들어야 한다.

 

성모님의 부모는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이다.

성녀 안나는 원래 자식이 없었는데, 기도하여 얻은 자녀가 성모 마리아이시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라는 종교율법적인 사회에서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는

석녀(石女; 돌계집)라 해서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하느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존재로서 취급당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고 광야에서 기도하며

이 소외된 처지에서 해방시켜주길 간절히 빌었다.

 

성녀 안나도 이렇게 기도하여 얻은 아이가 성모 마리아인 것이다.

그런데 성녀 안나는 자식 하나를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만일에 점지해 주신다면,

다시 주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성모님께서 세살이 되던 해에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지키신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부모는 자녀들의 종교 교육과 신앙을 너무나 중요시하게 여겨

어린 시절에 성전 부속 시설에 맡겨 평생 나지르인으로 성전을 지키면서 살 수도 있었고,

때가 되어 혼인을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세살이 되던 해에 성모님을 성전에 바쳤는데,

성모님께서는 그날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시 자발적으로 되돌려 드리며

평생 동정 서약을 하신 것이다.

 

우리는 어린 성모님께서 어떻게 평생 동정 서약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천주 성부께서는 성모님께서 장차 거룩하신 구세주 예수님께

자신의 피와 살을 내어드려 천주 성자를 수태하실 여인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를 미리 앞당겨 입게 하셔서

어머니 안나에게서 수태되는 순간부터 원죄로부터 물들지 않게 해주셨다.

 

장차 거룩하신 구세주 천주 성자께서 거처하실 자리인 성모님도

거룩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성모님께서 원죄로부터 영육이 보호되셨다는 것은

어떠한 본죄도 지을 수 없고, 사욕편정에 시달리지 않으며,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으시다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무염시태의 특은은

초성(超性)은혜<하느님의 神性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 은혜;

성화(聖化)은총, 생명의 은총; 천주생명>뿐만 아니라

 

과성(過性)은혜<인간 본성에 과분한 은혜;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사욕편정에 시달릴 수도 없으며, 고통도 겪을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은혜>까지 회복시켜 준 것을 말한다.

 

인류의 첫 사람이 교만과 불순명과 자유의 남용으로 지은 원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를 다 잃어 버렸다가

무죄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다시 이 은혜를 되찾아 주셨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이 초성은혜만 되찾아 입게 되었고,

거룩하시고 무죄하신 천주 성자를 수태할 성모님께는 초성은혜만이 아니라

과성은혜까지 되찾아 주신 것이다.

 

무염시태 특은은 바로 <과성은혜의 회복>을 말한다.

 

성모님께서 <성부의 딸, 구세주의 모친, 성령의 정배(짝)>로서

천주성삼의 이러한 특은을 피조물 중에서 홀로 유일하게 입어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탄과 그 졸개로부터 한 인간을 해방시키셔서

원죄로 말미암아 본죄와 고통과 죽음에 시달리다가

멸망과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인간사, 세속사를~~~~~

 

겸손과 순명과 자유의 선용으로 말미암아

둘째 하와이신 원죄로부터 해방된 성모님을 통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육을 취하고 오시게 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의 역사로 만드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세상을 구원하시는 역사안에서

하느님 구원의 섭리 계획의 첫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무염시태의 특은으로 말미암아

성모님께서 원죄로부터 보호받으셨다는 것은

본성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죄 뒤에는 항상 사탄과 그 졸개들인 마귀들이 있으므로,

그 악의 세력들이 범접할 수 없는 여인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의 처음인 창세기 3장 15절에는 성모님과 뱀,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묵시록 12장에는 성모님과 용의 적대 관계가

계시되어 있는 것이다.

 

구세사안에서 이런 구도를 가지고 악의 세력과의 한판 승부를 벌리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 계획을 우리는 잘 알아 들어야 하며,

왜 악의 세력들이 원죄없이 잉태되신 어머니의 호칭을 두려워하며

겁내고 무서워하는 줄을 깊이 묵상해야 하는 것이다.

 

원죄로부터 보호받은 성모님은 그러기에 오로지 그 영혼이

하느님 사랑으로만 정향(定向; Orientation)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어린 나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은총이 충만하여(루카1,28)

자신의 전존재를 온전히 봉헌할 마음을 품으셨고

평생 동정 서약을 하시게 된 것이 바로 성모 자헌(自獻)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 성모 자헌 기념일 맞이하여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 계획에 감사드리고,

우리도 온전히 성모님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과 사랑에 온전히 되돌려드리는 봉헌의 영성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비뚤어진 영적 질서를 바로잡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면 좋겠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음(마태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50)

 

여기서 '실행하는 사람이'로 번역된 '포이에세 ~ 아우토스'(poiese ~autos;

dose ~ the same)'실행하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바로 그 당사자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다.

 

'포이에세'(poiese)의 원형 '포이에오'(poieo) 어떠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거나

존재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내 아버지의 뜻'

목적어로 취하고 있기에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여기서 '포이에오'(poieo)'~하는 자는 누구든지'를 뜻하는 '호스티스 안'

(hostis an; whoever)과 함께 가정법으로 쓰여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만 하면

누구든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그 조건이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 문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행한 것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하면서 묵묵히 듣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에는 눈에 보이는 행위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결단을 내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로마8,14~16)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교회의 전통을 받아들여 복음의 순수함을 잃었다고 비난하곤 합니다. 특히 성모님을 공경하는 전통은 오직 믿음과 은총, 성경만을 강조해 온 한국 개신교계가 우리를 가장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복음에 등장하는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란 표현에서 성모님의 평생 동정을 의심하거나, 아들을 만나러 온 어머니와 가족을 박대하시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고 반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토대로 성모님에 대한 우리의 공경심을 비하하기도 합니다.
가톨릭 신앙도 성경을 신앙의 최고 규범으로 삼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이 성령의 감도를 받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칩니다. 누구나 성령을 받아 성경의 말씀을 삶에서 체험할 수는 있지만, 성경의 유권적 해석에 관해서만큼은 교도권, 곧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의 가르침에 맡겨져 있다고 가톨릭 교회는 가르칩니다. 그것은 교회의 권력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도전승의 참된 의미를 지켜 가기 위함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형제들은 마리아의 다른 자식이 아닌 ‘친척들’이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미 사도들과 함께 사시며 오순절 성령 강림 때 교회가 세상에 선포되는 순간부터 언제나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성모님께서 공경받으셔야 하는 이유는 그분만큼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분이 역사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육을 취하신 말씀을 잉태하셨고, 그분의 믿음의 응답을 통하여 말씀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교리적 논쟁을 떠나, 예수님의 성심과 결합되어 십자가의 길을 평생 함께 걸어가신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위대하고 공경받으셔야 합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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