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루카1,39-56)

2017. 5. 31. 오전 7:04:12

글자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루카1,39-56)


해마다 5월 31일에 지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며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루카 1,39-56 참조)을 기념하는 날이다. 5월 31일을 축일로 정한 것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기념하기 위해서다. 성모 마리아께서 천사의 메시지를 따라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은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이러한 이웃 사랑은 위대한 두 인물이 만나는 자리가 된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시온을 향해,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며 환성을 올리라고 한다. (스바 3,14-18)
14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16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17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나는 너에게서 불행을 치워 버려, 네가 모욕을 짊어지지 않게 하리라.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자 엘리사벳은,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다며 인사하고, 마리아는 주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른다. (루카 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제1독서(스바3,14~18)

주님께서 보호하셨다' 이름 뜻을 지닌 '스바니야'서의 작중 연대를  1장의 머리글을 보면, 요시야 임금 통치 시절(B.C.640-609년)로 제시한다. 한 세기 이상 고대 근동 전체를 호령하던 아시리아 대제국이 서서히 몰락해 가는 것을 보면서 유다 임금 요시야는 가나안의 바알 숭배와 아시리아의 천체 숭배를 근절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다(2열왕 23,4~14).


이런 상황에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주님의 권능이 온전히 드러나게 될 주님의 날 선포한다. 스바니야서는 니네베의 파괴를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임금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계시한다. 스바니야서의 대부분은 요시야 임금의 통치 시절과 부합하지만, 일부 대목은 유배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

예를들어 오늘 독서의 예루살렘의 재건을 노래하는 마지막 대목 스바니아서 3장 14~20절은 이 책의 다른 대목보다 적어도 한 세기 이상 늦게 곧 6세기 말에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스바니야서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부분(1,2~2,3)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신탁이다. 그들은 야훼 종교와 주변의 다른 다신교를 혼합함으써 결과적으로 야훼 하느님의 주권과 권능을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고 거기에 존경을 표하지도 않았다.

둘째부분(2,4~15)은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을 거슬러 선포한 신탁이다. 주님의 주권은 사방의 민족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모든 신들에게까지도 미친다.

마지막 세째부분(3장)은 다시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관심을 집중한다. 먼저 예루살렘 주민을 대표하는 지도자, 통치자, 예언자, 사제들의 잘못을 고발함으로써 그 곳을 단죄한다(3,1-4).

대신과 판관들은 백성들을 착취하고,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사제들은 종교 혼합주의로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짓밟는다.

이런 예루살렘의 불의와는 달리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올바른 판결을 내리시는 공정한 분이시다(3,5).

그분은 당신의 도읍인 예루살렘만은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가르침을 받들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들은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빗나갔다(3,7). 그래서 그분은 뭇 민족과 더불어 당신의 백성도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셨다(3,8~9).  

그러나 주님의 뜻을 받드는 적은 수의 겸손한 이들을 살아남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서 당신의 백성을 새롭게 일으키리라고 하신다. 이들이 바로 '남은 자들'이다.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스바3,12~13)

주님께서 친히 보살피시고 다스리시는 이 남은 자들을 통하여 주님의 도성 시온은 회복되고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은 온 세상 민족들의 칭송을 받으며,이름을 떨치게 될 것이다 (3,16~20참조).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스바3,14) 여기서 제시되는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 모두 동격이다.

'환성을 올려라' '크게 소리쳐라'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점층적 표현을 사용하여 그 기쁨을 매우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환성을 올려라' 해당하는 '란니'(ranni)의 기본형 '라난'(rannan)'소리내어 노래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기쁨에 겨워 크게 소리내어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크게 소리쳐라' 해당하는 '하리우'(hariu)의 기본형 '루아흐'(ruah)'부르짖다', '외치다', '즐거이 부르다'등으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부르짖듯 큰소리로 즐거이 노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란 표현에서 사용된 '즐거워하여라'에 해당하는 '웨알레지'(wealezi)의 원형 '알라즈'(allaz) '기뻐 날뛰다','몹시 기뻐하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전쟁의 승리와 같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인하여 잔치를 열거나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기뻐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sing', 'shout out', 'Be glad and rejoice' 라는 점층적 표현을 쓸 수 있겠다. 본절에 사용된 이러한 점층적 표현은 하느님께서 가져다주실 선민의 복락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선민의 이러한 기쁨에 대한 세 단문처럼, 하느님의 기쁨에 대한 세 단문이 스바니아서 3장 17절 하반부에 점층적 표현으로 교차 대구를  이루며 나온다.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 하시리라."(스바3,17)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주시고','너 때문에 환성을 올려 기뻐하시리라'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삼중적으로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전에 하느님의 분노와 진노의 대상이었던 선민들이 완전히 용서받고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원문은 '그가 베푸는 그 사랑 안에서 스스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며, 조용히 그 사랑을 향유하실 것이다.'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드러낸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애틋함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시면, 그 사랑에 스스로 빠져서 만족과 기쁨으로  잠잠히 안식하실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이보다 더욱 절실하게 나타내는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전능하신  용사의 강한 이미지(스바3,17절 전반부)가 그가 구원을 베푸신 그 자녀를 향한 어버이의 사랑으로 놀랍게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스바3,17절 후반부).

이러한 선민에 대한 하느님의 기쁨을 묘사하는 표현은 결국 하느님의 선민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장차 선민들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흠없이 거룩하게 성화될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로 하면 이런 의미일 것이다. "He will take great delight in you,  he will rest(quiet) you with his love, he will 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스바3,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란 표현은 주님의 사죄의 은총 나타낸다. 여기서 '거두시고'로 번역된 '헤씨르'(hesir)'제하다', '제거하다'란 뜻의 동사 '쑤르'(sur)의 사역형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에 있어서 행하신 하느님의 주도적 역사를  '쑤르'란 동사를 사용하여 다시 한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11절)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두렵게 하는 형벌을 제거하기까지 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가로막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제거하신다. 이러한 능력을 지니신 주님만이 진정하고도 완전한 구원을 이루실 수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더 나아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외부적 위협마저 철저히 제거하신다. 즉 이스라엘의 원수를 쫓아내시는 것이다.

여기서 '판결'(형벌)은 주님께서 판결하여 내리시기로 결정하신 심판을 의미하며, '원수'심판의 형벌을 수행하기 위해 주님께서 모으셨던 이방의 여러나라와 민족들(8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심판을 끝마치시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 남은 자들에게 위해를 가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신 것이다.

'힘 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스바3,16)

'두려워하지 마라'는 직설적인 표현에 이어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간접적인 표현이 사용된다. '손을 늘어뜨린다'고 하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의 상태를 묘사하는 히브리적 관용구이다(2사무4,1; 이사13,7; 예레6,24).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그들의 왕으로 계시기 때문에 결코 두려워할 것도 그리고 낙심하거나 좌절할 일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그들의 왕으로 그들 앞에서 싸우실 것이기 때문에 결코 어떤 대적, 어떤 전쟁에서도 그들은 패하지 않으며, 어떤 원수도 그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못하니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스바3,17)  

'승리의 용사' 해당하는 '낍보르'(gibor)는 전투의 문맥에서는 '용사', '전사'를 언급하고 있다(여호1,14; 6,2; 판관5,13; 2사무1,19 등). 그러나 이 단어가 하느님께 적용될 경우에는 단순히 '용사'를 언급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시는 '전능하신 용사'라는 개념을 내포하게 된다.

즉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전능하신 용사이심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이사10,21). 그는 이러한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모든 전투에서 구원하시며 승리로 이끄신다. 따라서 하느님의 백성은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궁극적으로 안전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축제의 날인양 그렇게 하시리라. 나는 너에게서 불행을 치워버려,  네가 모욕을 짊어지지 않게 하리라.' (스바3,18)

새 성경의 번역이 좀 잘못된 것 같다. 여기서 선민은 '축제(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로 묘사된다. 이것은 이방인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신분의 제약으로 '축제'(절기)때마다 그 '축제'(절기)를 지켜야하는 장소였던 예루살렘에 사실상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임을 전제한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그들은 '축제'(절기)로 인하여 항상 근심하는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었는데(이것이 '불행'이요, '모욕'으로 표현), 본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을 모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의 구원이 선포되고 성취되는 그 날에 그들은 그들의 거룩한 산 시온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마음껏 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쁨으로 축제(절기)를 지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의 회복의 역사로 인해 그들의 어깨 위에 드리워진 모욕(치욕)의 짐은 벗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에인카림에 있는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묵주의 기도로 보면 환희의 신비 2단을 묵상하는 날이다.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로 정한 것은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6월 24일) 사이에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을 수태한 성모님이 구약과 신약의 교량 역할을 하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선구자 역할을 할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엘리사벳에게서 수태되었기에, 구세사 안에서 보잘것 없는 시골뜨기요, 촌부인 그들에게 이루어 놓으신 위대한 주님의 업적을 나누고, 기리고, 감사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다.

단순히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엘리사벳을 도와주기 위해 봉사하고 애덕을 실천하러 간 것이 아니다.

교회가 루카복음 1장 39~56절의 말씀과 더불어 스바니야서 3장 14~18절을 묵상하는 것은,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자모이신 성교회를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로 보기 떄문이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과 지옥과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세속사(인간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시는 단초'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로서 성모 마리아 엘리사벳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수태한 성모 마리아를 엘리사벳이 '주님의 어머니' ('천주의 모친'; 루카1,43)로 알아보고, 그 태중의 예수님을 알아 뵌 것은 성령으로 가득차서(루카1,41)가능한 것이다.

성모님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의 태안에서 세례자 요한이 성모님의 인사말에 즐거워 뛰놀았다라는 것성모님으로 말미암아  아니 성모님의 태중에 계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원죄의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무죄하신 주님께서 인류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실 것이기에

이제 악의 세력들은 완전히 패배할 것임을 스바니야서 3장 15절에서 미리 예언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과 엘리사벳처럼 기뻐할 수 밖에 없고, 감사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어머니의 전구를

 -반영억 라파엘 신부-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모님 사랑합니다. 성모의 성월을 보내며 본당마다 성모님의 밤 행사를 합니다. 믿음의 어머니와 함께하는 밤에 성모님을 통하여 모든 바람을 이루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촛불을 봉헌하면서 자신을 녹아내려 빛을 낼 수 있기를 소망하고 아름다운 꽃을 봉헌하면서 꽃처럼 예쁜 삶을 다짐합니다. 성모님을 위해 바치는 멋진 노래와 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 낭송이 가슴에 젖어 매일같이 성모님을 기억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술로 변화시킨 첫 기적이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어머니의 청을 들어 주신 것이었듯이 오늘 우리의 모든 바람이 어머니를 통해 아들 예수님께 전구되기를 희망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메시지를 따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그것은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둘은 기쁨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이를 배지 못하는 돌계집(石女)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엘리자벳이 성령을 받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여기서 우리는 참된 행복의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은 ‘주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루가복음 11장 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하고 외치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성모님께서 모든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행복하신 것은 예수라는 훌륭한 분을 낳아서 젖을 먹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하고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주님을 믿고 믿는 그대로 행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이요, 희망을 오늘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행복해 지기를 바랍니다. 

옛날 한국에는 고려장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고 그래서 부모가 나이가 많이 들면 깊은 산속에 모셔다 놓고 그냥 돌아오는 것입니다. 한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지게에 짊어지고 깊은 산 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게 위에서 나뭇가지를 계속해서 부러뜨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무엇을 하시느냐고 물으니 ‘네가 늦게 내려가다가 길을 잃을까봐 그런단다.’ 하셨답니다. 

당신을 버리는 아들이지만 아들에 대한 어미의 사랑은 더욱 애절하기만 합니다. 바로 이런 어미의 사랑이 우리 어머니 성모님의 사랑입니다. 성모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바람을 아들 예수님께 전구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오늘 우리에게도 이루도록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예수님께로 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모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분께서 바라신 것을 바라고 그분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행하고 그분께서 지향하시는 바를 지향하십시오. 그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거기에 견주어 마음을 성찰하고 그분을 닮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나 마음에서 몰아내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있기 위해서는 먼저 성모님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예수님께로!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성모님께로!(복자 마르첼로 심파냐). 그리하여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성모님께서 잉태 예고를 받으시고 가장 먼저 달려가신 곳은 사촌언니 엘리사벳의 집입니다. 늙은 나이에도 자신보다 6개월 먼저 아이를 갖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은, 서로에게 이루어 주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벅찬 감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엘리사벳의 찬양과 성모님의 노래는, 그리스도인이 찾아야 할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의 찬양을 받으신 이유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배 속의 세례자 요한도 구세주의 오심을 태중에서부터 기뻐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비천한 종으로 겸손하게 낮추시고, 당신을 통해 하느님의 권능이 세상에 펼쳐질 것에 대한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찹니다. 성모님께서는 구원자 예수님께서 이루실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성모님의 노래 속에는 우리의 희망과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와 불공평,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이, 정의와 평화, 진리와 생명으로 채워지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비천한 종 성모님과 엘리사벳을 통해 이루신 것처럼, 우리의 작고 보잘것없는 손과 발을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쓰고자 하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작은 나의 봉헌이나 희생이라도 하느님께서 기꺼이 쓰실 수 있도록 내어 드린다면, 스바니야 예언자의 외침처럼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선포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울려 퍼질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부활 제7주간 금요일]나를 따라라 ( 요한 21,15-19)17.06.02조회 49[부활 제7주간 목요일]모두 하나가 되게 (요한 17,20-26)17.06.01조회 49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루카1,39-56)17.05.31조회 140[부활 제7주간 화요일 ]영원한 생명 (요한17,1-11ㄴ)17.05.30조회 183[부활 제7주간 월요일]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요한 16,29-33)17.05.29조회 292[부활 제6주간 토요일] 청하여라 (요한 16,23ㄴ-28)17.05.27조회 492[부활 제6주간 금요일]기쁨 (요한 16,20-23ㄱ)17.05.26조회 321[부활 제6주간 목요일 ]조금 있으면 (요한 16,16-20)17.05.25조회 356[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요한 16,12-15)17.05.24조회 59[부활 제6주간 화요일] 보호자 (요한 16,5-11)17.05.23조회 82[부활 제6주간 월요일 ] 진리의 영(요한15,26-16,4)17.05.22조회 60[부활 제5주간 토요일]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요한 15,18-21)17.05.20조회 61[부활 제5주간 금요일]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5,12-17)17.05.19조회 48[부활 제5주간 수요일] 참포도나무 (요한 15,1-8)17.05.17조회 357[부활 제5주간 화요일]내 평화 (요한 14,27-31ㄱ)17.05.16조회 255[부활 제5주간 월요일] 나를 사랑하면 (요한14,21-26)17.05.15조회 51[부활 제4주간 토요일]나를 본 사람 (요한 14,7-14)17.05.13조회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