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월요일 ] 진리의 영(요한15,26-16,4)

필리피에서 바오로가 말씀을 전하자 하느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시어,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가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 (사도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 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필리피의 성녀 리디아 경당
성녀 리디아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사도16,11~15)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14~15)
사도행전 16장 11절부터 마지막 절인 40절까지는 바오로 일행의 유럽 선교의 시발지인 필리피에서의 활동을 기록한다. 필리피에서의 선교 활동을 이렇게 길게 기록하는 것은 이곳이 유럽 선교의 시발지일 뿐 아니라 이곳에서의 선교 성공으로 인해 유럽 선교의 기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필리피 교회는 바오로의 선교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이것은 바오로가 다른 교회에서는 거부하였던 재정 지원을 필리피 교회에서는 받은 것으로 보아서(1코린9,3~14), 그들에 대한 바오로의 신뢰를 알 수 있다(필리1,3~5; 4,18).
필리피에서의 활동과 관련된 기사는 바오로 일행의 필리피 도착,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의 회심(사도16,11~15), 점 귀신들린 하녀에 대한 구마 행위로 인한 바오로와 실라의 투옥 및 필리피 감옥 기적 사건(사도16,16~34), 필리피 관리들의 공식 사과와 바오로와 실라의 명예로운 석방(사도16,35~40)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사도행전 16장 14절에서는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가 새롭게 등장한다. '티아티라'는 고대 리디아(Lydia) 지역에 속한 한 성읍으로서 '티아의 성읍'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헬무스 계곡과 카이쿠스 계곡을 연결하는 소아시아의 국경의 요새 이기도 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염색, 의복등의 제조업의 중심지였고, 특히 자색 염료로 유명했다. 바오로 일행은 그들이 찾아간 필리피의 기도처에서 옛날 로마 시민의 겉옷이나 왕족의 겉옷으로 사용되던 자색 옷감 장수를 하던 리디아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원래 티아티라 성읍 출신이었으나, 더 큰 도시인 필리피에 와서 거주하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녀는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섬기는'으로 번역된 '세보메네'(sebomene)는 현재분사인데, 이 단어의 원형 '세보마이'(sebomai)는 단순히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공경하는 인륜적 차원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이나 신적 존재를 예배하며 숭배하는 종교적 차원의 의미를 나타낸다. 리디아는 하느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3잘 43절에는 유다교로 개종된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지만, 본문의 리디아는 유다교에 깊은 관심이 있고 율법을 따라 하느님을 섬기기는 하지만, 완전히 개종하지 않은 자로서 코르넬리우스와 티리우스 유스투스와 유사한 신앙(사도10,1.2; 18,17)을 가지고 있던 여인으로 보인다.
그녀는 티아티라 성읍에 살던 때에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티아티라 성읍에는 유다인 정착지가 있었고, 그 유다인들을 통해 리디아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이 본문은 신앙을 가지게 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예이다. 사람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려면, 첫째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로마10,17), 둘째로 들은 그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들은 말씀을 깨닫고 수용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말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루카24,45).
여기서 '열어 주셨다'로 번역된 '디에노익센'(dienoiksen; opened)은 단순히 '열다'는 의미보다 더 강한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원형 '디아노이고'(dianoigo)는 '철저히'라는 의미가 있는 '디아'(dia)와 '열다', '열어 젖히다'라는 의미가 있는 '아노이고'(anoigo)의 합성어로서 '철저히 열어 젖히다','(닫혀 있는 것을)확짝 열어 젖히다'라는 의미이다.
사도행전 17장 3절에는 '설명하고'로 번역되었으며, 루카 복음 24장 32절에서는 '성경을 풀이해 주다'로, 그리고 루카 복음 24장 31절에는 '눈이 열려'로 번역되었다.
한편, 사도행전 16장 15절에는 리디아가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호 모이코스 아우테스'(ho oikos autes; the members of her household)로 번역된 '온 집안'은 단순히 건물(house)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home)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정은 그녀의 혈육만을 한정하는게 아니고, 사업가로서 많은 직원들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던 리디아에게 속한 모든 자손들을 다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리디아가 세례받은 세례터
부활 제6주간 월요일 복음(요한15,26~16,4ㄱ)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26)
여기서 '성령'을 지칭하는 '보호자'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comforter)는 '옆에', '곁에'라는 뜻의 '파라'(para; by, at, beside)와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의 '클레토스'(kletos; invited, called)의 합성어로서, 원래는 '돕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라는 수동적인 의미를 가졌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가리켜서 쓰이며, '남을 위해서 나타난 자', '돕는 자', '상담자', '위로자', '중재자' 등을 뜻한다. 그리고 '진리의 영'에 해당하는 '토 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to pneuma tes aletheias; the Spirit of truth)는 성령의 본질 및 대표적인 일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그분은 진실하신 하느님이신 주님(시편31,6)에게서 나오셨으며(요한15,26), 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므로(요한16,13), 진리는 성령을 특징짓는 가장 적절한 용어이다. 또한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속이는 영'(1요한4,6)과 대립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진리의 영'의 특징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요한15,26),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시며(요한14,28), 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로 번역된 '알레테이아스'(aletheias)는 '알레테이아'(aletheia)의 단수 소유격이며,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에메트'(emeth)의 역어로 흔히 나온다.
성령께서는 사건들을 밝히 드러내시며, 어떤 사건을 참된 모습으로 제시하는 분이다. 그러기에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제자들에게 감추어진 부분을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이해의 빛이라는 말이다(요한14,16.17,26).
요한 복음에 나오는 '보호자', '진리의 영'에 대한 구절들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요청을 받아들여, '보호자'이시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실 것과 성령의 하시는 일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요한 복음 15장 26절에는 이러한 구절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이다.
1인칭 단수 동사 '보낼'에 해당하는 '펨프소'(pempso; I will send) 앞에 1인칭 단수 대명사 '내가'에 해당하는 '에고'(ego; I)가 단독으로 쓰인 사실이 이것을 더욱 강조한다.
물론 요한 복음 15장 26절에서도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라는 표현으로서 성부 하느님께서 보내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동시에 성자께서도 성령을 보내시는 주체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사실이 특별히 언급되는 것은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와 동일한 신성(神性)을 지니셨으며,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나오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교리의 성경적 근거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으로부터 발출한다는 이 교리를 동방 교회에서는 거부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성령을 오직 성부 하느님에게서만 발한다고 주장하며, '아버지에게서'에 해당하는 '파라 투 파트로스'(para tou patros; from the Father)을 성령 발출의 근원으로 보고, '보낼'에 해당하는 '펨프소'(pempso; I will send)는 이것에 종속된 것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 차이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분열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절의 표현에서 성령을 보내시는 주체가 성부 하느님만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으로서 성자 하느님 역시 성령을 발출함을 볼 수 있다.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마르튀레세이 페리 에무'(martyresei peri emou; he will testify about me)는 '나에 관하여' 혹은 '나를 위해서 계속해서 증인이 될 것이다'는 뜻이다.
전치사 '페리'(peri)는 '관하여'(of)라는 뜻 뿐 아니라 '위하여'(for) 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서 성령께서 증거하는 이중적인 내용을 나타낸다. 즉 성령께서는 예수님에 관하여 증거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증거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증언하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마르튀레세이'(martyresei)는 '마르튀레오'(martyreo)의 미래 시제로 '계속해서 증언하실 것이다', '계속해서 증인이 되실 것이다'라는 뜻으로서, 성령께서 오실 때에 계속 진행될 일이 예수님께 관한 증거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모든 믿는 이들의 활동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에 맞추어져야 함을 일깨우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성령의 현존과 역사를 가시적인 특수한 은사와만 관련지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진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사용되어지지 않는 은사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사도1,8 참조).
< 진리의 영이 오시면 >유광수 야고보 신부
오늘 복음을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준비가 철저하신가를 느끼게 된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 때 아무 계획이 없이 아무렇게나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리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하시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예방책도 충분히 세워놓고 가르쳐 주시고 말씀해 주신다. 그런 예수님의 계획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 성령은 당신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제자들이 증언할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요한 복음을 보면 항상 모든 것의 시작은 아버지이시다. 즉 아버지로부터 시작이 되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실천하시고 또 예수님이 실천하신 것을 그 다음 제자들이 계속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 하신다. 그러니까 한결같이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체계적이고 질서가 있고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으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우리도 그분의 제자라면 그분이 일관되게 추진하시는 그 일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 하나되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 안에 살고 아버지가 내 안에 사시는 방법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방법을 아는가?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했고 각자 자기 나름대로 해왔기 때문에 일치보다는 분열을 하느님의 일을 하기보다는 자기의 일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버지를 증언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 눈이 뜨여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방법대로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성령을 따라 사는 생활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계신 주님,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나보다 더 나를 아끼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따라가는 삶이 곧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 가장 안전한 길이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준비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렵게 사는 이유는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16,3)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의 방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을 때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다.
안심하고 주님을 믿고 따라 갈 수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진리의 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또 진리의 영은 어떻게 나에게 오셔서 어떤 방법으로 예수님을 증언하시는가?
영은 영인데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은 보이지 않는다. 만질 수도 없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8)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진리는 말씀이시다. 진리의 영은 진리이신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오시고 진리이신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언하신다.
진리의 영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진리이신 말씀으로 가라. 진리이신 말씀을 알아듣도록 노력하라. 진리를 알아듣도록 기도하라. 그러면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되리라. 그리고 예수님을 어떻게 증언하는지 알게 될 것이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 또한 예수님을 어떻게 증언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증언하게 될 것이다.
복음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복음 한마디 한마디에는 성령께서 담겨져 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성령, 만질 수 없는 성령, 들을 수 없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는 문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신다. 따라서 복음은 성체와 함께 또 하나의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방법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증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리의 영께서 우리에게 오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의 영이 오시는 복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음의 한마디 한 마디는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진리의 영이시다. 나에게 오시는 진리의 영이시다. 복음 한 말씀 한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증언해야 할 예수님의 모습이시다. 따라서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알아듣고 생활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고 진리의 영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진리의 영이 어떤 방법으로 오신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어디에서 진리의 영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진리의 영이 어떻게 예수님을 증언하신다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는가?
우리가 복음을 읽고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도 예수님도 알지 못하면서 하느님께 봉사를 하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낼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고도 그것이 오히려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16,2)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진리의 영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