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금요일]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요한 6,1-15)

가말리엘은 최고 의회에서, 사도들의 계획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이라며 내버려 두자는 의견을 낸다. 사도들은 매질을 당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의회에서 물러나왔지만,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날마다 선포한다. (사도행전 5,34-42)
그 무렵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을 보고, 군중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든다. (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사도5,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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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6,1-15)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1)
군중들이 식사를 할 준비가 끝내자, 이제 음식을 제공하실 예수님께서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간단히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한 아이로부터 가지고 온 그 빵을 손에 드셨다.
'손에 들고'에 해당하는 '엘라벤'(elaben)은 '람바노'(lambano)의 부정(不定) 과거 시제로서 예수님께서 거리낌없이 즉시 취하신 행동을 나타낸다.
여기서 '빵을'에 해당하는 '투스 아르투스'(tous artous; the loaves)는 복수형으로서 안드레아가 가져온 보리 빵 다섯 개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손에 들고 나서 감사를 드리셨다.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로 번역된 '유카리스테사스'(eucharisteras; when he had given thanks)는 '유카리스테오'(euchariste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로서 기본적인 뜻은 '감사한 마음을 가진 것' 혹은 '감사를 돌린 것'이다. 이것은 식사 전에 행하던 통상적인 감사 기도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내용으로 감사 기도를 바쳤는지 알 수 없지만, 유다인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되는 내용의 것이었다고 보면 된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의 가장이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감사 기도를 바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군중 앞에서 행동하셨는데, 눈으로 보이게 차려진 음식은 다섯 개의 빵이었고, 식사를 기다리는 이들은 오천명의 몇 배가 되는 군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충분한 식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처럼, 통상적인 감사 기도를 바쳤다. 그 결과 그 날에 빵과 물고기가 부족하게 되기는 커녕, 도리어 남아서 열두 광주리나
되는 조각들을 거두기에 이르렀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은 원하는 대로 배불리 음식을 먹었으며, 그 맛 역시 원래의 오병이어보다 훨씬 더 나았으리라는 것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경험으로 봐서 (요한2,10) 추측해본다.
특히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원하는 대로 주셨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을 풍성하게 주시어 결코 주리지 않게 하실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요한6,35).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더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신 일은
예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일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자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배가 고팠다는 말이 없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셨다는 말도 없습니다.
또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간 것은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고(요한 6,2),
그 사람들은 '빵의 기적' 후에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고(요한 6,15)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요한복음의 '빵의 기적'을 읽고 묵상할 때에는
공관복음과는 다른 관점에서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를 준 일이 아니라,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진짜 빵을 주셨고,
그 기적 덕분에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배불리 먹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배부름'입니다.
인사를 할 때 흔히 "영육 간에 건강하기를..."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말은 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표현입니다.
'행복'으로 바꿔서 표현하면,
몸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되고,
'생명'으로 바꿔서 표현하면,
몸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것만 중요하다."가 아니라,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더 중요하다."입니다.)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몸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행복만 추구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자기들이 먹은 빵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안 보고 빵만 본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기적의 뜻을 깨달았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임금이 아니라 주님으로 믿고 섬겼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원래 왕이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사무엘에게 가서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 것은
하느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세속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1사무 8,7)."
이스라엘 민족이 임금을 원한 것 자체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음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도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로마제국과 그 하수인들, 빌라도나 헤로데 같은 자들은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백성을 위해서 일하는 임금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임금이 앞장서서 싸워서
로마제국과 하수인들을 몰아내 주기를 희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희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것만 희망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22)."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지만
세속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경우가 있고,
영적인 행복보다 육적인 행복을 더 추구하기도 하고,
진정한 영적 성전을 세우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눈에 보이는 껍데기 성전을 짓는 일만 더 신경 쓰기도 합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세의 일과 영적인 일만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고통과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독재 정권을 물리치기 위해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지만,
그러나 교회가 정당을 조직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면서
세속의 권력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신앙생활과 이웃 사랑 실천은 이 세상 속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세상 속에서의 일만(세속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 궁극적인 것,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발밑에 있는 땅만 보다가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을 잊으면 안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