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가톨릭 교리](1)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평화신문은 창간 23주년을 맞아 교육상식면을 새롭게 개편합니다.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경외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하느님과 그분의 신비를 쉽고 재미있는 예화를 곁들여 풀어줄 것입니다.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TV와 라디오를 통해서도 방송됩니다.
'튼튼기초 신앙쑥쑥 재미있는 가톨릭교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신앙의 기초지식을 전하는 기획물로,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민병덕 신부)이 발간한 예비신자교리서 「함께하는 여정」에 기초해 제공합니다.
두 신설 기획물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들은 물론 교회에 갓 발을 들여놓은 이들 모두에게 가톨릭 신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인간을 찾아 나서시고 인간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사람과 그 아내가 죄를 지은 다음 당신을 피해 숨었을 때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고 물으신 것은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지, 현 존재나 처지, 상태가 어떠한지를 물으신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여전히 당신과 상호 관계를 맺는 '너'라는 호칭을 쓰셨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도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하고 물으시면서 동생 아벨을 지키고 돌봐야 하는 형 카인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키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악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언제나 악하기만 하여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려 하셨을 때에도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인 노아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너는 전나무로 방주 한 척을 만들어라"(창세 6,14)하고 명령하신 다음, 그의 가족들과 생물의 암수 한 쌍씩을 방주에 데리고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인류의 타락에도 구원의 희망을 남기셨다.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이들을 부르시기에 앞서 먼저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부르셨다. 하느님께서는 성조 아브라함과 야곱을 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을 때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소리를 귀여겨 들으시며 당신의 중개자로 모세를 부르셨다. 더 나아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으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계약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서시며 그들을 부르신다. 하느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어 언제 어디서나 인간을 찾아 나서시고 인간을 부르신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부르시며 먼 훗날 우리 후손들도 부르실 것이다.
하느님 부르심은 인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에 의해 이뤄지는 은총의 선물이며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며 우리가 당신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한처음부터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듯이, 인간 역시 늘 하느님을 찾고 갈망한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절대자를 갈망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종교가 있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종교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학자들이 종교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종교현상이 그만큼 난해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고대세계에도 엄연히 종교 현상이 존재했지만 '종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종교(宗敎)라는 말은 라틴어 '렐리지오'(Religio)에서 비롯됐다. 로마 정치가 치체로는 렐리지오를 신들이 원하는 바를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것, 특히 전례문을 반복해 암송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따라 렐리지오라는 단어는 '레-레제레'(Re-legere), 곧 '다시 읽는다'라는 말에서 파생됐다고 본다.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렐리지오를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결합하려고 노력하는 것', '하느님께서 옛 백성 이스라엘 대신 새 백성 교회를 선택하신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19세기말 일본은 렐리지오를 '근본적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종교'(宗敎)라는 말로 번역했다. '종'(宗)은 본래 진리를 터득한 최고의 경지를 뜻하고, '교'(敎)는 이를 말로 표현해 가르치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종교현상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일본, 중국, 우리나라 같은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그리스도교 33%, 이슬람교 21%, 힌두교 14%, 불교 6%, 유교와 도교 6%, 유다교 0.22% 정도이다.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자생종교와 외래종교 등을 합해 510여 개 이상의 교단ㆍ교파가 존재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의 종교현상을 '종교박람회' '종교백화점' '종교시장'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2011. 06. 05발행 [1120호]
[재미있는 가톨릭교리](2)그리스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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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가톨릭교리](3) 전승과 전례
하느님 말씀, 행적 모든 가르침
전승(傳承)은 넓은 의미에서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 교회 가르침과 활동에 관한 모든 것, 곧 성전(聖傳)과 성경(聖經) 모두를 말한다.
하느님에 대한 전승은 바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 내지 자기 통교에서 출발한다. 유한한 인간이 하느님의 자기 계시나 자기 통교 없이 무한하신 그분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계시(啓示)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나게 하거나, 감추어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볼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 당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을 계시라고 가르친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처음으로 인간에게 당신 존재를 드러내셨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역사에 함께하시면서 더 구체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삶에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성장,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전하게 계시하셨으며,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도 계속 나타내 보이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분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자기 계시의 절정이자 완성이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말씀과 행적, 인격과 삶에서 최종적으로 완결됐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공적 계시가 완결됐다고 가르친다.
▶전승의 내용
1)성전(聖傳)
한처음부터 하느님은 인간과 인간 역사에 개입하셨다. 그분 말씀과 행적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셨을 때도 그분 말씀과 행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사도들 가르침과 행적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세기를 이어오면서 교회 가르침과 활동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 모든 것이 교회의 거룩한 전승, 곧 성전을 이룬다.
2)성경(聖經)
하느님 말씀과 행적을 글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행적을 전하시기 위해 인간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시어 구원에 필요한 일들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3)성전과 성경의 관계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상통한다.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됐고,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분을 선포하고 전하기 때문이다.
▶전승에 대한 올바른 이해
전승을 올바로 알아듣고 해석하려면 첫째, 하느님 은총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16).
둘째, 교도권 해석이 필요하다. "기록된 하느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계시헌장」 10항)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느님 말씀과 교회 가르침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
[ 전례란 무엇인가 ]
전례라는 말은 그리스어 '레이토우르기아'에서 비롯됐다. 이는 '백성의 일' 또는 '모든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뜻하는데, 기원전 4~3세기께부터 예배를 뜻하는 말로 사용됐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느님 아버지께 올리고, 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경배를 가리킨다.
전례는 교회에서 합법적으로 임명된 이들이 교황청 인준을 받은 예식에 따라 교회 이름으로 거행하는데, 전례에는 모든 성사ㆍ준성사ㆍ시간전례ㆍ성스러운 행렬ㆍ성체 강복식 등이 포함된다.
교회는 일 년을 주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를 기념한다. 이를 전례주년이라고 한다. 교회는 일 년 동안 예수님 탄생부터 시작해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기념한다. 전례주년은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대림ㆍ성탄ㆍ사순ㆍ부활ㆍ연중시기로 이뤄져있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4)
성경은 무엇인가?
성령으로 쓰인 하느님 말씀
우리는 성서(聖書)와 성경(聖經)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한다. 성서는 ''거룩한 글(책)'', 성경은 ''거룩한 경전''이라는 뜻인데, 두 명칭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성령의 감도로 쓰인 하느님 말씀''을 가리킨다.
그런데 공동번역을 사용할 때는 주로 성서라고 했으나, 2005년 새 번역 「성경」 발간 이후 경전(經典)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이라고 일컫는다.
▲ 7세기께 이집트에서 기록된 후리어 성경사본(Freer Gospels)의 표지 그림. 마태오와 루카 두 사도가 성경을 들고 있다.
▶1100여 년에 걸쳐 기록돼
성경의 원저자는 하느님이다. 하느님 계시로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를 성령의 감도를 받아 기록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것이고,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체험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성령의 감도를 받아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 단계를 거치다가 글로 쓰이기 시작했고, 글로 쓰인 기간 역시 장구하며, 기록과 편집에 참여한 저자와 편집자 역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기록했고,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공동체 전체가 기록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구약은 기원전 950년께부터 쓰이기 시작했고, 신약은 기원후 150년께 마무리됐기에 성경은 대략 110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기록됐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은 솔로몬 임금(기원전 961-922년)이 다스리던 기원전 950년께부터 단편적으로 작성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587-538년 바빌론 유배시기 무렵에 단편적으로 작성된 문헌들이 낱권 책들로 엮어졌다. 이어 기원전 200년께 어느 정도 성경 형태를 갖췄다. 이 무렵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됐다. 이것이 바로 「칠십인역」이다. 물론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후대에 집필된 제2경전 지혜서 같은 경우는 기원전 1세기, 더 나아가 기원전 30년께 기록됐다고도 추정한다.
신약은 기원후 51년 바오로 사도의 테살로니카 1서를 시작으로 기록됐다. 요한계 문헌이 비교적 후대인 기원후 100년 전후에 기록됐고, 베드로 2서는 기원후 100~130년께 기록됐다고 한다.
▶성경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기록됐나?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은 6세기에 마호메트가 하느님 계시를 받아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께서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신 것도 아니고, 어떤 한 사람이 하느님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대필한 것도 아니다. 성경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을 거쳐 형성됐다.
구약과 신약 모두 구전→문서화→편집→정경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형태를 갖췄다. 구약의 형성과정은 아래와 같다.
①구전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과정을 거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을 후손들에게 이야기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성조들이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이집트 종살이에서 어떻게 해방됐는지, 약속의 땅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등 그들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했던 사건을 이야기로 엮어 전했다.
②문서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시대를 달리하고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내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전승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원전 950년께부터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글로 작성해 고정하는 문서화 작업을 시작했다.
③편집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글로 작성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시대를 달리하고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수집ㆍ정리되는 가감첨삭 편집 과정을 거쳤다. 구전 및 문서 전승을 종합해 하느님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④정경화(正經化)
오랜 세월에 걸쳐 글로 기록되고 편집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바른 경전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정경화(正經化) 작업을 거쳤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책들이 성령의 감도를 받아 쓰인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한 다음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평화신문 2011. 06. 26발행 [1123호]
[재미있는 가톨릭교리] (16)하느님의 백성, 교회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느님 나라 도래를 선포하셨다. 예수님께서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지금 여기에서' 체험될 수 있고,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미래에 충만히 완성될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체험한 후 예수 그리스도와 동고동락하며 지낸 생생한 삶의 체험과, 예수님을 참으로 살아계신 우리 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를 창설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에 기반을 두고 세워진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전에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지만 전 생애를 통해 교회 설립을 준비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의 특성
교회는 '단일성'을 특징으로 한다. 교회의 단일성과 일치성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활동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에 근거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하느님 백성으로 부르시고 하느님 나라로 향하게 하신다.
교회는 '거룩함'을 특징으로 한다. 교회의 거룩함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근거하고, 하느님의 거룩함은 교회의 거룩함으로 드러난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나 주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나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려내어 내 것이 되게 하였다"(레위 20,26)하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보편성'을 특징으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교회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실현하는 구원의 도구로서 온 세상 모든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개별 민족이나 특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과 지역을 포용하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2)이 돼야 한다.
교회는 '사도성'을 특징으로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의 체험과 신앙에 기초해 설립됐고, 그들의 복음 선포로 확장됐으며, 그들 전구와 후손들 계승에 힘입어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도성은 교회 공동체 전체가 수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사명
△예언직 :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하느님 말씀을 믿고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며 아무런 주저 없이 하느님 진리를 온 세상 곳곳에 드러내는 것이다.
△왕직 :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섬김과 봉사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 온 세상 모든 이들을 다스리는 왕이셨지만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필립 2,7) 되셨고, 섬김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셨으며(마태 20,2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필리 2,8)하셨다.
△사제직 :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따라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대사제로서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하셨다.
▶교회 조직 체계
△구조
①사도좌 : 가톨릭교회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주체를 가리키는 말로, 성좌ㆍ교황청 등으로도 불린다. 베드로 사도 후계자인 교황에게 계승된 사도좌는 보편교회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가지며, 개별교회에 대한 수위권과 더불어 교회 내ㆍ외적으로 가톨릭교회를 대표한다.
②교구 : 교구라는 단위로 지역을 구분한다. 보편교회이자 세계교회인 가톨릭교회는 개별교회이자 지역교회인 교구로 나눠진다. 각 교구는 교구장 주교가 관할하고 교구장 주교는 교구를 적정한 수의 본당으로 다시 나눠 사제단과의 긴밀한 협력 안에서 자신의 관할권을 행사한다. 개별 교구는 자치권을 행사하지만 사도좌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③본당 : 교구장 주교 관할 아래 본당 신부들이 사목하는 교구의 한 부분이다. 본당은 신부와 신자들로 구성되고 인근 지역사람들과도 연계한다. 본당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공동체이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이며,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예배의 공동체이고, 이웃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의 공동체이다.
△구성원
①성직자 : 사도들의 사명을 이어받아 정결과 순명을 서원하는 성품성사를 받고 성사를 집행한다. 성직자 그룹에는 교황ㆍ추기경ㆍ대주교ㆍ주교ㆍ신부ㆍ부제가 속한다.
②수도자 : 정결과 청빈과 순명의 서원을 통해 완전한 사랑의 복음적 권고를 살면서 하느님께 봉헌된 생활을 한다. 수도자는 수도생활과 교회 학문을 배우고 종신서원을 함으로써 일생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는 축성된 삶을 살아간다.
③평신도 :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결합하며, 교회와 세상에서 사제직ㆍ왕직ㆍ예언직의 사명을 수행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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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 그레코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1587~1592). |
[재미있는 가톨릭교리] (31ㆍ끝) 영원한 삶
죽음 이후 영원한 삶 위해 오늘도 아름답게
▶죽음을 넘어선 희망
인간은 죽음을 통해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면서 자기 완성의 정점에 다다른다. 죽음에 직면하는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고통이나 두려움만큼 죽음을 극복하려는 희망도 갖는다. 교회는 인간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이신 하느님 안에서 죽음을 넘어 희망할 수 있는 최종적 근거를 갖게 된다고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영원불멸하는 신적 생명의 친교 안에서 전 존재로 당신을 따르도록 인간을 부르셨고 또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시어 거두신 것이다. 따라서 확고한 논증에 바탕을 둔 신앙은 깊이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래의 운명에 대한 그의 불안에 해답을 준다."(「사목헌장」 18항)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한 삶
죽음을 단순히 죄의 결과로 이해하기보다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을 위한 죽음'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겪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의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이제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맏물이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가능하며, 그분께서 모든 이들을 구원의 삶으로 초대하시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가능해진 인간 구원의 결정적이고 최종적 상황을 말한다. 이 영원한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죽음 이후의 실재
1)심판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죽음 이후에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해 심판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심판이란 하느님과 천사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 낱낱이 밝혀지고 하느님 판결을 받는 그런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을 뵈옵고 하느님과 인격적이고 실제적으로 만나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에서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심판이란 이생의 삶을 살면서 고대했던 하느님과 인간과의 인격적 만남인 것이다.
2)천국ㆍ연옥ㆍ지옥
교회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 하느님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을 받고, 그 심판 결과에 따라 천국ㆍ연옥ㆍ지옥 판결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천국은 죄벌이 없는 영혼이 누리고, 연옥은 소죄를 지었거나 보속할 죄벌이 남아 있는 영혼이 겪으며, 지옥은 대죄 중에 있는 영혼이 겪는다.
천국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이들이 누리는 하느님과 완전한 합일 상태를 가리킨다. 언제나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은총과 완전하고 충만한 사랑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천국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 은총이 필요하지만 이 은총에 응답하는 인간 자세 또한 필요하다.
연옥은 하느님 은총 속에 죽었으나 천국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지는 못한 영혼들이 천국을 누리기 위해 정화 과정을 거치는 것을 가리킨다. 연옥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깨끗하지 못한 인간이 죽음 후 거룩한 하느님을 뵙는 것, 그 자체가 부끄럽고 죄스러워 정화될 수밖에 없는 그분과의 만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지옥은 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로이 하느님과 영원히 결별하겠다고 선택한 이들이 겪는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 이들이 하느님을 뵈올 수 없고 사랑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랑의 결핍, 증오와 절망만을 겪는 것이다.
3)영혼 불멸과 육신 부활
영혼과 육신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이는 죽음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죽음으로 영혼과 육체가 서로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으며, 육체와는 관계없이 영혼만이 불멸해 하느님과 함께하지도 않는다. 성경은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는 그런 날, 영혼이 불멸하고 육체가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전한다.
▶현재에 내재된 천국과 지옥
영원한 삶은 죽음 이후에 이뤄질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가능해진 영원한 삶은 미래에 충만히 완성되고 성취되는 삶이면서 동시에 현재에서도 이미 구현되고 실현되는 삶인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것은 죽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도 알게 된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고 신앙인들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매일의 삶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으로 성화시켜가야 할 것이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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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판은 죽음을 맞이한 후 하느님 앞에서 잘못을 판결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만남을 통해 삶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진은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미켈란젤로 작, 1535~1541년). |









복음성경이란 무엇인가요?
복음성경란 마태 복음 '마르코 복음. 루가 복음. 요한복음을 말하는데 이복음이라는 뜻은 기쁜소식 즉 구원의 기쁜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두 페이지 읽으시라고 하셨으면 이 네 복음서중 두페이지만 읽으시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확실 하실 때는 다음 고해성사를 보실 때 저의 경우에는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복음 성경이라는 질문이 나왔으니까 몇가지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미사중에 제1 독서와 제2 독서와 복음을 읽게 되는데 제1 독서는 구약성경을 읽고 제2 독서는 복음서가 아닌 신약성경을 읽고 복음은 신부님이 읽으십니다.
단 예수님의 부활시기로부터 성령강림시기까지는 제1 독서와 제2 독서가 다 신약 성경으로
주로 사도행전을 읽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앞으로 오실 메시아(히브리어로 구세주라는 뜻입니다.)에 관해서 말씀 선포를 하셨고 신약에서는 사도들이
예수님이 구약에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 하시기 때문에 부활시기만은 제1독서를 사도행전을 주로 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신 것을 제1 독서로 미사 때 읽으시고 신약에서는 제자들인 사도들이 예수님이 구약에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분이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그 분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말씀이 복음이고 핵심인 복음을 신부님이 낭독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핵심이 복음인 것입니다.
미사는 신구약 성경을 핵심 로얄제리로 압축시켜 놓으신 것이므로 미사와 전례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사와 전례와 복음의 관계를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싶이 복음을 가해는 마태오 복음. 나해는 마르코 복음. 다해는 루가 복음을 읽게 됩니다. 요한 복음은 영의 복음이므로 가해 나해 다해 전례의 내용에 따라 공통으로 사용을 하며 특히 매년 크리스마스 낮 대미사 때 복음은 요한 복음 1:1~18의 복음을 매년 같이 읽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는 가해이므로 마태오 복음을 읽습니다.
복음과 전례를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33년을 지상에서 사셨으니까. 연중33주간 1년으로 전례가 되어 있습니다.
성탄주일 다음주일은 성가정축일 다음은 주님의 공헌대축일 그다음은 주님의 세례축일 이자 연중 제 1주간이며 그 다음은 연중 2주.3주.4.주며 연중 5주째의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이 되며 그다음 주일부터 사순시기로 되며 사순이 끝이나면 예수님의 부활주일이고 예수님의 부활후 40일 후에 예수님의 승천주일이며 예수님의 부활후 50일에 성령강림 대축일이고 그다음이 삼위일체 대축일이며 그다음이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이며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미사 때 성체 성혈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사가 아주 중요하며 매일 매일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시 연중10 주로 되며 이렇게 미사 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연중 33 주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 우리들의 안에 예수님의 몸이 형성이 된 사람들이 영안이 열려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되어서 그리스도 왕대축일을 예수님 우리들의 메시아 이시며 그리스도 이시며 우리들의 하느님이시고 구세주시고 우리들의 왕이시라고 고백하는 주일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다.
그 다음 주일이 구세주이시고 왕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주일이 대림1주일이고 2주일이고3주일 이고 4주일입니다.
이 때 성당에서는 대림 초 에 불을 켜 놓게 되는데 대림1주일에는 진한자색(죄의 회개를 상징함) 2주일은 약간 덜진한 자색 3주일에는 장미색(희망을 상징함) 4주일에는 흰색의 촛불을 켜 놓습니다.
아담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 창세기3:15에서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신 후 4000년이 지나서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초 하나가 1000년을 기다렸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33년을 지상생활을 하셨던 것을 1년으로 단축해서 우리들이 전례와 미사와 복음말씀을 통해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말하며 말씀의 전례에서 핵심인 복음과 성찬전례가 서로 관계가 있으며 전례와 복음과 미사로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은 복음과 전례와 미사 때 내용이 우리들의 안에 이루어져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