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족보

2015. 9. 12. 오후 4:22:45

글자


 

왜 족보가 14대씩 구분되었는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마태1,1-17)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마태1,1-17)


마태복음이 기록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인 족보를 14대씩 3기로 나누어 기록했다는 것이다.

루가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56세대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두 족보 사이에는 13세대, 시간상으로는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할 경우 약 400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왜 마태는 42세대만 기록했을까?

그리고 14대씩 끊은 것은 무슨 의미일까?


a. 유대인들이 족보를 기록하는 목적은 첫째로 개인이나 가문 혹은 어떤 집단의 혈통 또는 기원을 밝히려는 것이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구속사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즉 하느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속 활동이 어떻게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가를 족보의 기록으로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런 목적 때문에 성경의 족보는 어떤 인물을 생략하기도 하고 때로는 추가하기도 했다.


b. 루가의 족보가 56세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반하여 마태는 42대만 기록하여 무려 14세대나 차이가 난다.

이는 물론 마태의 족보와 루가의 족보의 계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마태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대 전환기를 이루는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족보를 14대씩 끊어서 3기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한 하느님의 구속사를 14대씩 맞추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인물들은 족보에서 생략했으며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족보에 들어갈 수 없는 여자들까지 포함시켰다.


c. 족보의 첫 번째 부분은 이스라엘 역사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의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는 선택과 혼란과 약속의 시기였다.

두 번째 부분은 다윗 왕 때부터 바벨론 유배까지로 이스라엘의 전성기와 약속의 성취를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바벨론 유배 생활에서 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로 역시 14대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회복과 구속 사업의 완성을 말해 주고 있다.

각 부분의 처음 인물과 맨 마지막 인물은 한 부분을 시작하고 끝맺는 데 중요한 인물로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구속사의 완성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d. 마태가 하필이면 족보를 14대로 나눈 이유는

(1) 단순히 독자의 기억을 돕고 족보를 인상적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설,

(2) 다윗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알파벳 숫자의 합이 14이기 때문이라는 설,

(3) 아마도 14라는 숫자가 완전수인 7배의 배수이기 때문에 구속사업의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숫자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

마태복음의 족보의 또 다른 문제는, 족보의 세 번째 부분인 바벨론 유배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는 14대가 아니라 13대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도 여고냐를 포로 전과 포로 후로 각각 한 번씩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해결된다.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14대씩 묶어 3기로 나눈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구속사의 절정으로 나타내고 싶은 의도적인 분류라고 불 수 있다.

14대에 맞추기 위해 몇 사람은 생략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루가복음에는 56대인데 비하여 마태복음은 42대만 기록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14대씩 나눈 것은 14가 7배수로서 완전하고도 고귀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족보의 마지막 부분은 여호야킨를 포로 전과 포로 후로 중복 계산해야 14대로 떨어지게 된다.

            

예수님의 족보 (루카3,23-38)

23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다. 요셉은 엘리의 아들,  24 엘리는 마탓의 아들, 마탓은 레위의 아들, 레위는 멜키의 아들, 멜키는 얀나이의 아들, 얀나이는 요셉의 아들, 25 요셉은 마티트야의 아들, 마티트야는 아모츠의 아들, 아모츠는 나훔의 아들, 나훔은 헤슬리의 아들, 헤슬리는 나깨의 아들, 26 나깨는 마핫의 아들, 마핫은 마티트야의 아들, 마티트야는 시므이의 아들, 시므이는 요섹의 아들, 요섹은 요다의 아들, 

27 요다는 요하난의 아들, 요하난은 레사의 아들, 레사는 즈루빠벨의 아들, 즈루빠벨은 스알티엘의 아들, 스알티엘은 네리의 아들, 28 네리는 멜키의 아들, 멜키는 아띠의 아들, 아띠는 코삼의 아들, 코삼은 엘마담의 아들, 엘마담은 에르의 아들, 29 에르는 여호수아의 아들, 여호수아는 엘리에제르의 아들, 엘리에제르는 요림의 아들, 요림은 마탓의 아들, 마탓은 레위의 아들, 30 레위는 시메온의 아들, 시메온은 유다의 아들, 유다는 요셉의 아들, 요셉은 요남의 아들, 요남은 엘리야킴의 아들, 

31 엘리야킴은 멜레아의 아들, 멜레아는 멘나의 아들, 멘나는 마타타의 아들, 마타타는 나탄의 아들, 나탄은 다윗의 아들, 32 다윗은 이사이의 아들, 이사이는 오벳의 아들, 오벳은 보아즈의 아들, 보아즈는 살라의 아들, 살라는 나흐손의 아들, 33 나흐손은 암미나답의 아들, 암미나답은 아드민의 아들, 아드민은 아르니의 아들, 아르니는 헤츠론의 아들, 헤츠론은 페레츠의 아들, 페레츠는 유다의 아들, 34 유다는 야곱의 아들, 야곱은 이사악의 아들, 이사악은 아브라함의 아들, 아브라함은 테라의 아들, 테라는 나호르의 아들,

 35 나호르는 스룩의 아들, 스룩은 르우의 아들, 르우는 펠렉의 아들, 펠렉은 에베르의 아들, 에베르는 셀라의 아들, 36 셀라는 케난의 아들, 케난은 아르팍삿의 아들, 아르팍삿은 셈의 아들, 셈은 노아의 아들, 노아는 라멕의 아들, 37 라멕은 므투셀라의 아들, 므투셀라는 에녹의 아들, 에녹은 예렛의 아들, 예렛은 마할랄엘의 아들, 마할랄엘은 케난의 아들, 38 케난은 에노스의 아들, 에노스는 셋의 아들, 셋은 아담의 아들, 아담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옮겨왔습니다. 이정임 2015-10-21

http://biblicum.or.kr/bbs/board.php?bo_table=QnA&wr_id=86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8%88%EC%88%98%EB%8B%98+%EC%A1%B1%EB%B3%B4&sop=and

송혜경 11-06-23 15:38

예수님족보를 루카와 마태오 복음이 달리 소개하는 이유를 밝히기 전에 한 가지 사전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먼저 루카가복음의
족보는 완전한 계보지만 마태복음의 족보는 부분적 계보다. 14대씩으로 나뉘어져 있는 마태복음의 족보는 완전한 계보라고 할 수 없다.
이 두
족보는 둘 다 다윗을 거쳐, 아브라함까지 이어진다. 마태오의 족보는 유다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을 통해 내려온 왕의 계보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처음부터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족보를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위한 구원자라는 사실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아담으로부터 창조세계 안으로 죄와 죽음이 들어왔고, 그래서 온 인류를 위해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복음사가의 관점의 차이가
족보의 차이를 가져왔다. 유다인의 관점이 강한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시작을 아브라함에게서 찾았다면 온 인류의 입장을 대변하는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시작을 아담과 더 나아가 하느님에게서 찾았다. 족보가 단순한 가계도가 아니라 이처럼 신학을 담은 문제였다면 어느 족보가 옳고 그르냐하는 것은 복음사가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족보를 통해서 사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신학적 내용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한편, 요셉의 아버지에 관한, 마태 1장과 루카 3장 사이의 차이는 교부시대부터 관심을 끌던 문제였다. 다마스쿠스의 요한에서 시작하여 최근의 여러 학자들도 다양한 의견을 내어 놓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요셉이 엘리의 친아들이 아니라 법적인 아들, 곧 사위나 양자였으리라는 견해다. 특히 엘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였고 요셉은 혼인을 통해 엘리의 법적인 아들이 되었으리라고 하는 견해가 많다. 이스라엘에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가업을 물려 줄 아들이 없을 때(민 27:1–11, 36:1–12), 사위가 법적으로 아들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했을 때, 모세의 율법에 따라 엘리의 아들이 되었으며 마리아 집안의
족보에 합법적으로 포함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말 성경에는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어 성경에는 ‘아들’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저 “요셉은 엘리의 (것)”로 되어 있을 따름이다. 그리스어 성경에서 ‘아들’이 사용된 곳은 23절,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다”라는 구절뿐이다. 어쨌든 루카가 요셉이 엘리의 아들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이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의 아버지가 루카와 마태오에서 달리 소개되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이 설명은 족보의 나머지 부분도 차이나는 이유까지 설명한다. 루카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였으며(요셉의 이름은 법적 아들로서 기재됨), 마태오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였기에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학자들은
족보의 사실성 유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족보를 통해 복음사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복음들 간의 차이를 오류로 볼 것이 아니라 신학적 견해 차이로 본다면,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차이들이 성경 봉독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성경/교회자료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