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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어 | Christus | |||
| 영어 | Christ | |||
| 그리스어 | Christos | |||
나자렛(Nazareth)의 예수에 대한 칭호. '기름을 발라 축성된 임금, 대제관'이란 뜻을 지닌다. 이 말은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하였다. 70인 역에서 '메시아'의 어원인 히브리어 마시아(masiah)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Christos, 기름바른)로 번역되었는데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크리스투스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야훼의 기름 바른 자'라 불려졌다. 그리스도 강생 직전 세기에 유태인들이 다윗의 왕좌를 재건하실 분으로 기대했던 구세주는 '기름 바른 자' 메시아 혹은 크리스토스(Christos)라 불려졌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약속된 구세주라고 여겼을 때 그 분을 일컬어 그리스도라 하였다(마르 8:29, 사도 5:42). 그러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자 크리스토스를 구세주의 이름들 중의 하나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신약성서에는 정관사 없이 그리스도(로마 5:6, 6:4), 그리스도 예수(사도 24:24), 혹은 예수 그리스도(마르 1:1)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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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敎 | |||
| 라틴어 | Christianitas | |||
| 영어 | Christianity | |||
| 독일어 | Christentum | |||
그리스도교란 그리스도의 선교(宣敎)와 그의 생애를 통하여 비롯된 종교를 말한다. 즉 예수 를 기점으로 출발하여, 그의 인격과 교훈을 근본 규범으로 하는 여러 가지 즉 그의 가르침, 윤리, 믿음, 전례, 행위 등 신앙형태의 총체를 말하는데, 그리스도교는 자체를 구약성서의 계시와 그 계약과의 완성이면서 또한 폐기라고 이해하고 있는 점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의 원류(原流)를 구약성서에 두고 있다. 구약성서는 그리스도교의 신관(神觀) 형성에 있어서의 공헌이 지대하다. 또한 후기 유태교의 여러 가지 사상 가운데서, 종말론(終末論)을 비롯하여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은 그리스도교 역사관 형성에 큰 역학을 하였다. 유태교에서 비롯된 유일신 하느님을 믿고, 그 독생자 그리스도를 구세주(救世主)로 믿으며, 그리스도의 속죄와 신앙과 사랑의 모범에 추종하여 영혼의 구원을 따르는 이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티나에서 일어나 이교(異敎)와의 싸움 또는 박해를 겪으면서, ‘헬레니즘’ 세계의 문화 · 사상 · 풍습 등을 섭취하여 성장을 거듭, 4세기 초에 로마 제국의 국교(國敎)가 되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는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지에도 전파되었고, 8세기에 동방 정교회(東方正敎會, Eastern Church) 즉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와 서방의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로 갈렸다. 그리스도교가 세계사상에 있어서 큰 힘이 된 것은 가톨릭 교회라는 형식을 취한 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가톨릭은 그리스도교를 거창한 제도조직으로 만들어 보편적 학문과 보편적 법률에 의하여 세계사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로마제국과 결탁하여 통일성 있는 세계질서와 세계관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둘로 갈려진 교회의 내부,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내부에서는 차차 고개를 쳐든 이단자들의 교회 비판에 직면하여 이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이단적인 교회 비판의 하나로서 나타난 것이 루터나 칼빈을 통하여 ‘종교개혁’으로 번졌다. 하지만 이는 교회 전체에 대하여 아무런 통일적인 혁신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며, 다만 서유럽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재촉하는 실마리를 만드는 결과로 되었다. 즉 16세기의 종교개혁에 의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는 다시 ‘천주교’(天主敎)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로 분리되었다. 프로테스탄트는 또한 루터파와 개혁파(改革派)로 분열되었고, 프로테스탄트의 울타리 안에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러 조그마한 교회 또는 분파로 계속 나누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방 정교회의 경우는 분열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 밖에 또 하나의 형태로서 영국 성공회(英國聖公會, Anglican Communion)가 있는데, 이는 로마 교회의 신앙 형태가 영국에 전파되기 전부터 있어 왔다. 그 뒤 로마 교황의 지배하에 있지 않겠다는 헨리 8세의 선언으로,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하였다. 영국의 국교가 된 영국 성공회(영국교회)는 이른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두 가지 요소를 내포한 복잡한 총합체가 되었으며, 유럽대륙의 종교개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영국 성공회에서는 가톨릭 교회적인 것을 철저하게 배제하려 했던 퓨리턴(Puritan, 淸敎徒)으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 퓨리턴이 자신들의 이상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현재의 미국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파의 기원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화기(開化期)[1876년 開港으로부터 1910년 韓日合邦까지]에 가톨릭과 개신교(改新敎)를 구분하지 않고 ‘야소교’(耶蘇敎)라 하였고, 또한 천주교와 야소교로 구분하기도 했으며, 뒤에 와서는 가톨릭과 예수교, 특히 신교를 ‘기독교’, ‘개신교’라고 호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뜻으로 사용하는 ‘기독교’란 용어는 어느덧 ‘기독교=개신교’의 의미로만 통용하게 되었다. 현재 그리스도교는 위에 언급한 대로 크게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 미국에 있어서의 성공회는 미국 프로테스탄트 에피스코펄 교회(美國新敎主義敎會)로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편의상 프로테스탄트에 포함시켜, 대체로 3개의 주요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참고로 신자수를 비교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근 8억명, 동방 정교회는 약 2억명, 그리고 프로테스탄트는 약 1억명으로 산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Pierre Batiffol, L'Eglise naissante et le Catholicisme, 1909 / Jos. Huby, Christus, Manuel d'histoire des religions, Paris 1912 / Eugen Rosenstock-Huessy, The Christian Future : or The Modern Mind Outrun, 1946 / M.S. Bates, Glaubensfreiheit, 1947 / Arnold J. Toynbee, Christianity Among the Religions of the World, 1957 / Hans Mol, Christianity in Chains : A Sociologist's Interpretation of the Church's Dilemma in a Secular World, 1969 / 申淳鐵, 開化基言論의 基督敎 認識, 敎會史硏究, 제3집, p.162, 韓國敎會史硏究所, 1981. 그리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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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敎人 | |||
| 라틴어 | christianus | |||
세례를 받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신앙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신자들을 총칭하는 말. 여기에는 가톨릭교회 신자, 개신교의 각 교파의 신자, 동방교회의 신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교리, 특히 사도신경을 믿고 따른다. 가톨릭에 소속된 그리스도교인은 이 외에도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교회의 미사에 참여하고, 성사를 받으며, 가톨릭의 성직제도에 따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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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論 | |||
| 라틴어 | Christologia | |||
| 영어 | Christology | |||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특히 위격적 결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그리스도론은 교부시대 이래 연구되어 왔으나 이에 필적할만한 그리스도론이 서방세계에 등장한 것은 주로 종교개혁 이후이다 루터교의 그리스도론은 다양성을 용인하는 가운데 아폴리나리아니즘에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로 강조하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지닌 위격의 단일성 및 그리스도가 좀체로 신성(神性)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인성(人性)을 취했다는 주장이다. 칼빈주의자나 종교개혁자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가 지니는 신성과 인성의 상위점을 강조함으로써 네스토리아니즘에 접근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전통에서 한걸음 나아가 개신교 그리스도론 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시 정의하여 예수는 단지 '나자렛 출신의 인간'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가톨릭의 그리스도론은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니체아, 콘스타니노플, 에페소, 칼체돈 등의 공의회에서 확인된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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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聖體聖血大祝日 | |||
| 라틴어 | Sollemnitas SSmi Corporis Christi | |||
| 영어 | Solemnity of Corpus Christi | |||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성체성사(聖體聖事)의 제정과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후 첫 번째 목요일이나 일요일에 지켜지는데, 한국에서는 첫번째 일요일에 지켜진다. 성체성사는 예수에 의해서 성(聖)목요일, 최후의 만찬에서 제정되었지만 이날은 성주간에 있고 다른 예식이 있으므로 수난의 생각을 동반하지 않고 기쁨으로 성체를 축하할 수 있도록 성체성사를 기념할 다른 날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축일은 리에즈(Liege)의 성녀 율리아나(Juliana, 1192-1258)의 영향을 받아,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suinas)의 요청에 의해 1264년 교황 우르바노(Urbanus) 4세의 교서로 교회에서 정식으로 지켜졌다. 특히 이 날의 성무일도(聖務日禱)는 대부분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만들어 졌으며 교황 마르티노(Martinus) 5세(재위 : 1417-1431)와 교황 에우제니오(Eugenius) 4세(재위 : 1431-1447)에 의해 인가되었다. 이 날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체행렬(聖體行列)과 성체강복(聖體降福)의 전례가 거행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7월 1일)이 각각 독립되어 기념되었으나 1970년 미사경본에서 성체성혈 대축일의 명칭으로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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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再臨 | |||
| 라틴어 | Parusia Christi | |||
| 영어 | Parousia of Christ | |||
구원 역사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임하심. parousia는 그리스 어원에서 나온 말로 ‘존재’ 또는 ‘도착’을 뜻한다. 그리스도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고 현세의 역사에 종말을 고하기 위해 영광에 싸여 세상에 돌아오실 거라는 가르침이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말씀을 통해 최후의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과 그 때가 오면 현재의 질서가 영원의 질서로 바뀌어진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계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재림의 정확한 시기와 방법에 대한 논의를 금하고 있으나, 많은 신학자들이 재림의 보다 자세한 사항들에 대해 말해 왔으며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통치하는 천년왕국(Millennium)이 있게 되리라고 믿는 이들도 많았다. 이들은 또한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사탄의 구속(binding of satan)이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가 통치할 때 성인들이 부활해서 그와 함께 있게 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전천년설(premillennial view)은 초기 교회에서도 믿어지고 있었는데, 파피아스, 이레네오, 순교자 유스티노, 테르툴리아노 등의 저술에도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황제 치하에서 그리스도 교회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때 천년왕국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아우구스티노는 무천년설(amillennial view)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는 1,000년 기간이 역사적으로 실제적인 기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수라고 가르치고 있다. 중세 전반에 걸쳐 아우구스티노의 견해가 주로 받아들여졌고 그밖에 피오르의 요아힘의 가르침도 권위가 있었다. 16세기말과 17세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전천년왕국설이 알스테드(J.H. Alstead)와 요셉 메데(Joseph Mede) 같은 이들에 의해 다시 거론되었으나 17세기가 끝나면서 후천년설이 발달하게 되고 계몽주의가 보급됨에 따라 전천년설은 쇠퇴하게 된다. 다니엘 휘트비(Daniel Whitby)를 비롯한 무천년설 지지자들은 인간 세상의 교회에 의해 하느님의 왕국이 건설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교회 가운데 군림하게 되고 이러한 황금시대가 지난 뒤에 죽은 이들이 부활하고 세상이 심판을 받을 것이며 영원한 질서가 수립될 것이라는 것이다. 19세기 중에 전천년설이 다시 등장하여 현재까지 거론되어 오고 있으나 어느 설도 정통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J.A. Seiss, The Last Times, or Thoughts on Momentous Themes, 1878 / G.R. Beasley-Murray. Jesus and the Future, New York 1954 / B. Rigaux, Saint Paul, Les Epitres aux Thessaloniciens, Etbibl 1956 / A Commentary on Mark Thirteen, London 1957 / J.A.T. Robinson, Jesus and His Coming, Nashville 1958 / H. Conzelmann, Theology of St. Luke, New York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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