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차별과 소외

2011. 1. 19. 오전 11:14:03

글자
차별과 소외                                                                    조명연신부
 
어제 트위터(twitter)를 보던 중, 유명 연예인이 말했던 글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자랄 땐 좀 모자란 친구가 있으면 놀 때 ‘깍두기’라며 끼워 주고 함께 놀았다.
승리의 기쁨은 함께 나눴지만 패배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아이를 ‘왕따’라고 부른다.”
크게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저 어렸을 때 어떤 놀이를 할 때 깍두기는 꼭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깍두기가 못한다고 해서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깍두기는 승부에 있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놀이를 잘 못하는 친구라 할지라도 모두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승부 자체가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승리를 위해서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당연히 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이 사회에 ‘왕따’라는 존재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잘 하는 것과 잘 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 그 차이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 차이가 상당한 것 같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 차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하나같이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하나가 되어 어울려 사는 것.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보다 못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소외시킨다면 결국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차별되고 소외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항상 약자의 편에 서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십니다.
그는 세관에 있는 사람으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세금은 모두 로마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따라서 세금을 걷는 사람은 로마에 빌붙어 살아가는 매국노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걷는 화폐가 로마의 돈인데, 그 돈에는 로마 황제의 모습이 담겨 있어 그 돈을 만지는 사람은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동족들로부터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세리들과 그리고 당시에 죄인이라는 평가를 받던 병자들과 함께 먹고 마셨던 것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차별받지 말아야 하며,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나의 이웃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더 이상 차별과 소외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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