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으로 가슴을 치십니까?

2009. 11. 5. 오후 1:48:31

글자
어떤 마음으로 가슴을 치십니까?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가슴을 두드리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고백하는 반면
성당을 벗어나면 제 탓이 남의 탓으로 바뀌는
우리의 삶을 두고 어떤 변명을 해야 합니까?

가정에서 부부다툼이 일어날 때를 살펴보면
자신의 탓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죄다 남편의 탓. 아내의 탓. 자식의 탓.
그리고 시댁과 처가의 탓이 터져 나옵니다.
서로 살을 섞고 살면서도 다툼이 일어날 때면
서로에게 흠집을 내고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말까지 서슴없이 뱉어내는 말로 인해
부부생활도 필요에 의해 함께하는 생활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행복은 자신을 고집하는 데서는 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자신을 양보하는 데서 찾아들게 됩니다.
자기의 것은 내어주지 않으면서 상대의 것을
받기를 원한다면 이는 이기적이 되고 맙니다.

이기적 사랑은 상대의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있을 땐 모르겠지만 그 콩깍지가 떨어지는 순간
사랑도 멀어지고 행복도 달아나기 마련입니다.


가정이나 공동체의 성장은 한 사람의 리드로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손뼉은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이처럼 가정의 행복은 남편의 노력만으로
또는 아내의 노력만으로 행복을 열 수 없습니다.
한쪽이 이기적일 때, 한 쪽이 아무리 희생적 삶을
산다고 해도 기쁨이 있는 가정. 행복이 있는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가정이란 짐을 부부가 공동으로 힘을 합칠 때
기쁨과 웃음이 솟아나며 행복이 찾아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필수여건은 충분한 대화이고
화합된 분위기 안에서의 일치입니다.
부부는 모습도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서로가 다른 사고로 살아왔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일치를 만들어가다 보면 모습까지 닮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신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제 탓, 남의 탓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에게 준 신비적인 축복의 삶을 선물 받고도
신비적인 거룩한 삶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지?
또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탓보다 남의 탓을 하며
은총을 잃고 있지 않은지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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