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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선정한 대상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은 사랑을
받으려는 충동만 느낄 뿐 사랑을 받기 위한
자신의 준비에서는 소홀합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선 사랑을 주려는 대상의 뜻과
부합하려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이는 사회적이나 신앙적이나 동일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에 뜻이 맞아야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남편의 사랑, 아내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상대의 뜻을 따라주어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원리를 알고 방법을 찾아 이를 실천한다면
쉽게 이룰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이를 알면서도
곧잘 망각하고 받기만 하려고 합니다.
연애시절 상대와의 마음을 일치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상대의 환심을 끌며
자신이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처음 지녔던 마음이 변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이는 서로가 소유하고
소유되었다는 인식을 생각해 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많은 것을 고정화시키지만
사랑이란 것은 가만히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은 것입니다.
즉, 세월의 흐름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발전되어 가는 것처럼 사랑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흐르며 변화되고 발전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선함을 추구하게 되며 악과는
상존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바른 생활을
먼저 추구해야 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자가 하느님 말씀을 듣지 못하면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을 하려는 사람은 사람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랑이 하고자 하는 것을
가슴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몸의 신학이며, 사랑은 믿음과 신뢰가
우선되지 않으면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놀 때의 기쁨에 젖은 것을
사랑이라고 판단한다면 큰 오류에 빠집니다.
사랑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상대에게 다가갈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간에 도취되어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사랑에 대한 남용이고 종국에는 남용된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서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평화를 주는 것이고 자신 역시
평화를 누리는 것이고, 평화는 사랑이란 영광 안에
온전히 들어갈 때 생겨나며 이 평화를 사랑에서
기쁨과 함께 생겨나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며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이는 껍데기 신앙생활일 뿐
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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