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사랑이 있는 공동체
인간의 사랑은 초월적이지 못할 땐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초월적인 사랑을
배우고 닮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겉모습과는 달리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신을 숨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외면과 내면의 다른 모습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 말합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살아왔던 방식이
하루아침에 변화될 수는 없겠지만 변화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비신자 교리를 담당하면서 종종 씁쓸함을
금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모 서기를 꺼려하는 일반 신자들에 비해
유독 많은 대자녀들을 두려고 하는 분이 있어
처음엔 그분의 신앙심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모가 되고나서 보험을 강요한다는
이야기와 그로인해 영세자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적이지 못하고 신앙을
개인 영리를 취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면
잘못된 신앙생활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본당에서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을 등지는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일들로 인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무관심이 사랑이 되고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무관심이 형제 자매의 의를 지킬 수 없습니다.
잘못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보다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적해주고 고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수없이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타이르셨습니다.
우리는 곧잘 주님의 뜻이라면 하고 말하며
사소한 것까지 주님께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께 미루고 이끄시는 데로 따라가겠다는
수동적인 자세는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자세는 방관자가 될 뿐이며
결코 주님께서 바라시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자신을 벗어난 초월적인 것에서
함께 능동적인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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