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성지
주소:경기도 안성시 죽림리 703-6 전화번호: 031-676-6701
죽산마을은 조선시대에는 도호부로, 뒷산 비봉산 동북쪽에는 고려 때 몽고 군과 임란 때 왜적을 물리친 죽주산성(竹州山城)이 있습니다. 이 죽산마을에서, 천주교의 4대 박해의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때에는 수많은 교우들을 끌어다 심문과 고문을 하던 관아 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이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 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지도 한번 끌려가면 영영 볼 수 없는 곳, 그 참담한 비극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다. 지형이 조금 도드라져 이렇게 불렸다고도 하고 땅이 진흙이어서 신을 땅에 두드려 패지 않으면 신 바닥에 붙은 진흙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죽산의 순교 사화는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들뿐이다.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김 도미니코의 가족이 교우인 사실을 안 마을사람 십여 명이 작당을 하고 찾아와 열일곱 된 딸을 내놓지 않으면 포졸들을 불러 몰살시키겠다고 협박, 기어이 딸을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60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여기중은 한 가족 3대가 한자리에서 순교했다. 또 여정문은 그 아내와 어린 아들이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법으로는 아무리 중죄인일지라도 부자를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죽산에서는 부자와 부부를 함께 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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