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3탄: 죽산성지

2010. 3. 24. 오후 7:25:08

글자

 죽산 성지

주소:경기도 안성시 죽림리 703-6     전화번호: 031-676-6701

죽산마을은 조선시대에는 도호부로, 뒷산 비봉산 동북쪽에는 고려 때 몽고 군과 임란 때 왜적을 물리친 죽주산성(竹州山城)이 있습니다. 이 죽산마을에서, 천주교의 4대 박해의 하나인 병인박해(1866년) 때에는 수많은 교우들을 끌어다 심문과 고문을 하던 관아 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이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 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지도 한번 끌려가면 영영 볼 수 없는 곳, 그 참담한 비극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다. 지형이 조금 도드라져 이렇게 불렸다고도 하고 땅이 진흙이어서 신을 땅에 두드려 패지 않으면 신 바닥에 붙은 진흙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죽산의 순교 사화는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들뿐이다.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김 도미니코의 가족이 교우인 사실을 안 마을사람 십여 명이 작당을 하고 찾아와 열일곱 된 딸을 내놓지 않으면 포졸들을 불러 몰살시키겠다고 협박, 기어이 딸을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60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여기중은 한 가족 3대가 한자리에서 순교했다. 또 여정문은 그 아내와 어린 아들이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법으로는 아무리 중죄인일지라도 부자를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죽산에서는 부자와 부부를 함께 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미사시간
미사구분 요일 시간 기타사항
 주일미사  일  11:00  월요일 제외
 평일미사  화  11:00  
 수  11:00  
 목  11:00  
 금  11:00

댓글 3

  • 2010년 3월 25일 오전 12:32

    수고했어~~^^

  • 2010년 3월 25일 오후 7:21

    오케바리땡큐여~ ^^

  • 2010년 3월 26일 오후 1:32

    고마워.... 뽑고 읽어야지...

성지 공부방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