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지-북수동성당 자료

2010. 3. 22. 오후 4: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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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성지 -북수동성당


수원교구 성당으로 1890년 왕림성당(1888년 설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의 공소로 출발하였으며, 1923년 11월23일 본당으로 독립, 당시성당 수원성당

초대신부: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르메르(한국이름 이유사, 세례명 루도비코)신부였다.


2000년 9월 20일 수원교구는 북수원성당과 그 일대를 순교성지로 선포했다. 천주교 박해기간 때 수원에서의 박해는 특히 혹독했는데, 수원성지(수원화성)의 중심에 위치한 북수동 성당 일대는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되었던 토포청(중영)과 심문을 하던 이아(화청관)이 있던 자리였다. 이로 인해 북수동성당은 악의 무리를 물리칠 수 있도록 주보성인을 ‘성 미카엘 대천사’로 정했다 한다.



2000년 수원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님께서 수원화성의 중심인 북수동성당(구 수원성당)을 수원화성에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78위 순교자들과 수많은 무명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로 선포


정조대왕의 명을 받아 다산 정약용(요한)선생께서 설계, 시공하신 수원화성은 둘레가 5,743km 직경은 대략 1.8km의 성곽응로 둘러 쌓여있는 아름다운 성이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다산선생의 천주신앙을 뿌리로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성벽은 외측만 쌓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운 축성술로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하느님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룬 희대의 수작---수원성지 나경환(시몬)신부님


현재까지 수원화성의 박해지는 중영, 이아, 화성행궁, 동남각루, 남암문, 팔달문(남문)밖 장터, 장안문(북문)밖 장터 8군데로 확인되고 있고 그 외에도 사형터(화령전과 화서문사이), 종로사거리(화성행군 앞), 동장대(군사훈련장)에서도 공개처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군데의 증거지는 다산 선생의 신학사상이 반영된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다(아름다울 화, 무지개 홍)은 구약의 하느님과 인간의 약속을, 화홍문을 바치고 있는 호예수문 7개는 신약의 계약의 표지인 7성사의 의미을 지니고 있다.


방화수류정은 지붕을 십자가형으로 만들고 팔각정의 기본틀을 변형시켜 서쪽의 벽을 만들어서 서벽안에 86개의 십자가 문양을 새겨 넣은 정자인데, 이는 당시 천주학을 서학이라고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저녁 석양이 질무렵에는 세상 어둠을 쫒는 광명의 상징으로 서벽에 새겨진 십자가들이 빛이 나도록 설계되어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댓글 3

  • 2010년 3월 22일 오후 4:53

    제가 나눔 후 자료 보관이 잘 안되어ㅜㅜ... 바로 올리겠습니다.^^

  • 2010년 3월 22일 오후 7:15

    아주 좋으~ ^^

  • 2010년 3월 23일 오전 12:57

    미리 보니 좋으네~^^수고했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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