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처 / 예수, 사형선고를 받으시다.
죄없이 사신 분이, 오직 동족에 대한 사랑과 인류에 대해 연민을 간직하고 사셨던 분이 불의 한 정치권력인 빌라도에게서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침묵)
사랑이신 예수님, 우리는 당신이 굴욕을 참으며 빌라도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가 처한 현실 상황을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사와 관계없이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피부 빛깔이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단죄 받고 있는 현실을 봅니다. 주여,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핍박받고 있는 사람들이, 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우리의 형제임을 고백합니다. 이 세상의 불의 하게 단죄 받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남아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당신의 수난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생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제2처 / 예수, 십자가를 지시다.
예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잠시 짊어졌다가 곧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바로 죽음의 길로 이끄는 고통의 십자가,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여, 우리는 당신께서 나를 따르려면 모두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침묵)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우리 주님, 당신께서 지고 가시는 그 십자가는 당신의 죄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고통받는 이웃들을 통해 보여지는 시대의 징표에도 변화되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이 굳은 사람들에게 내려질 형벌을 대신 지시 것입니다. 당신이 지신 십자가의 살인적인 무게에는 우리의 죄도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외면했던 만큼의, 우리가 올바른 실천을 게을리했던 만큼의 무게가 당신의 십자가에 실려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자기 몫의 십자가, 가족의 십자가, 겨례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제3처 /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했던 청년이, 양심을 갖고 불의한 세상과 싸웠던 청년이,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던 사랑 많은 청년이 쓰러졌습니다.
(침묵)
만약, 우리가 게으름과 비겁함을 벗어 던지고 주님의 사업에 함께 하지 않는다면 예수께서는 또다시 넘어지실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못 배우고 기술도 없고 뒷배경도 없어서 가난을 다시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이 죄만은 악순환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이 시대 예언자들의 피 토하는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주께서는 다시 넘어지실 것입니다. 무력하게 넘어진 당신의 고통과 고독을 우리 마음에 길이 새기나이다.
* 제4처 / 예수, 어머니와 만나시다.
죽음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께서 어머니를 만나셨습니다.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기억합시다.
(침묵)
혼인하지 않았던 몸으로 마굿간에서 아들을 낳아야 했던 여인, 온갖 멸시와 천대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아들에 대한 사랑만으로 참고 견디었던 여인이 이제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겪고 있는 처참한 고통을 묵상합시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가슴이 칼로 찔리우는 고통을 당하셨듯이 지금도 곳곳에서 이 땅의 어머니들이 울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자식을 감옥에 보내고 고통을 겪고 있는 어머니들, 가난 때문에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해서 한을 안고 사는 어머니들의 고통을 생각합니다. 어머니들의 눈에서 눈물이 거두어질 때 우리는 부활에 이룰 수 있습니다.
* 제5처 시몬,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지다.
당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시몬이라는 사람을 붙들어 십자가를 지우고 당시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침묵)
주여, 우리에게 당신의 십자가는 무슨 의미입니까?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의 목걸이로, 정의를 외면하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일부 교회의 높은 종 탑에 세워져서, 복을 가져다주거나 액을 없애는 부적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자기방어 수단으로 당신의 십자가가 쓰이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는 당신이 지신 십자가가 혼자서 들기엔 너무 무거운 십자가임을 묵상합니다. 이제 우리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아감으로써 당신이 지신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는 우리 자신이 되도록 우리들을 변화시키소서.
* 제6처 / 베로니카, 예수께 수건을 드리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약한 여인이 온 세상이 조롱하는 당신의 피 흘린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드리기 위해 용기를 내었습니다.
(침묵)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세상이 좋아졌는데, 나는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는데, 나는 직접 뛰지는 못해도 곳곳에 후원금은 열심히 내는데,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아는 것이 없는데 ...모두가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빠진다면 누가 당신의 얼굴을 닦아드리고 당신의 고통에 동참하겠습니까? 우선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나서야겠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땀과 피로 얼룩진 처절한 당신의 얼굴이 바로 분단된 조국, 고통받는 민중, 억압받는 양심입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닦아 드리기 위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 제7처 /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께서 넘어지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두 번째 넘어지셨습니다. 당신은 힘에 부쳐 넘어지시지 않았습니다. 비겁한 우리가 당신의 가르침을 외면함으로써 당신을 두 번씩이나 넘어뜨린 것입니다.
(침묵)
수입농산물에 밀려 이제 더 이상 심을 것이 없는 농민들의 좌절,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집 없는 서러움, 재해의 위험과 주변의 천시를 무릅쓰고 일한 결과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소외감 때문에 주께서 두 번씩 넘어지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이 주님을 두 번씩 쓰러지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주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5장).
* 제8처 / 예수, 우는 여인들을 위로하시다.
당신께서는 참혹한 고통을 당하고 계시면서도 오히려 당신을 위로하려는 여인들에게 용기를 주시고는 죽음의 길을 계속 가십니다.
(침묵)
죽음을 앞둔 고통은 상상하기 힘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간혹 사람들의 용기를 내어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대신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고통은 당신에게만 가해집니다. 그래서 당신은 외로웠습니다. 차라리 어서 죽은 것이 낫다고 여겨질 만큼 십자가의 길은 만큼 십자가의 길은 멀고 힘듭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에서 여인들을 위로하고 계셨습니다. 주여, 내게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불평을 하고 남을 원망하고, 이웃이야 어떻게 되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던 저의 조급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회개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연민의 눈으로 이웃을 대하는 당신의 착한 마음을, 그 힘과 사랑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 제9처 /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시다.
완전히 지친 예수께서 세 번째로 넘어지셨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고 오직 처참한 고통과 죽음밖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길에서 주께서 다시 넘어지셨습니다.
(침묵)
50년이나 되는 지긋지긋한 분단의 세월을 살아왔던 우리는 여전히 북의 형제들을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통일을 외치는 한 통일의 희망은 없습니다. 이산가족을 둔 사람들이 생이별의 고통과 한을 씻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 정녕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44년이나 감옥에서 분단의 형틀을 지고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희망도 아직은 없습니다. 모든 희망이 봉쇄된 상황에서도, 세 번씩이나 쓰러질지라도, 우리는 고집스럽게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통일을 꼭 이루겠다는 다짐과 그렇데 되리라는 희망, 그것이 바로 부활을 향한 우리 겨례의 희망입니다.
* 제10처 / 예수, 옷을 벗기우시다.
조롱하고 때리던 자들이 이제는 옷마저 빼앗습니다. 저들의 목적은 치욕을 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은 없습니다. 함께 했던 이들도 떠나고 어머니도 여인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침묵)
주여, 이 지경이 되고 참아야 합니까? 도대체 당신의 군대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신 당신이 이런 고통까지 겪어야 한단 말입니까? 어째서 이 고통은 끝이 없어 보입니까?
주여, 이 순간 우리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형제들을 기억합니다. 대를 이어 가난을 물려받아야 하는 사람들, 빈곤이 악순환 되는 가난한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이제는 먹고살게 되었다고, 경제적인 곤란은 벗어났다고 해서 옹졸한 졸부가 되어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 제11처 /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시다.
십자가에 매달렸다.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아프다는 감각도 이제 남아있지 않다. 외롭다.
(침묵)
주님, 우리가 그토록 집착했던 돈, 주변의 평가, 나와 가족의 건강,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이란 것도 결국은 우리가 두고 떠나야 하는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씀으로도 깨닫지 못하고 드리어 당신이 형틀에 매달리시고 나서야 우리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왜 살고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왜 그토록 듣기 부담되는,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말씀을 하시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주여, 우리의 다짐과 깨달음을 당신께 바칩니다.
* 제12처 / 예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다.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침묵)
주여, 당신이 돌아가시다니요.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고 오천명도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당신이 돌아가시다니요. 스스로 말씀하시고 빛이신 당신의 죽음의 암흑에 떨어지시다니요. 우리의 희망이요, 진리이신 당신이 어떻게 무력하게 ...당신이 죽음을 선택하신 이유를 묵상합니다. 살려고만 하시면 얼마든지 사실 수 있는 분이 죽으신 이유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벗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겨례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걸고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정말이지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 제13처 / 예수, 십자가에서 내려져 어머니 품에 안기시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고 이제는 십자가에서 내려지셨습니다. 이제 주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는 남은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이 끌어내려져 어머니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침묵)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더 봐야 변하겠습니까? 믿음으로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분이 죽으시고 힘없이 끌려 내려지는 것을 보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당하시고 죽으시고 끌려 내려지는 당신을 보고서도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당신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주여, 당신의 죽음을 보고서야 우리도 회개합니다. 당신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게 하소서.
* 제14처 / 예수, 무덤에 묻히시다.
아직도 고통은 끝나지 않은 것입니까? 죽음으로 당신은 차가운 돌무덤에 갇히셨습니다.
(침묵)
당신은 힘없이 무덤에 갇히셨습니다. 당신이 진리이시기에, 온 세상의 약한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주님으로 모시기에 죽음은 당신을 완전한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죽은 몸으로 힘없이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뒤를 따라 제2, 제3의 예수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의 진리를 몸으로 사는 사람의 제자들이 당신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두려움 없이 온갖 이기심과 약한 구조와 게으름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죽음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 제15처 / 예수, 부활하시다.
주께서 부활하셨다! 주께서 부활하셨다! 죽으셨던 그분이 죽음을 이기고 우리에게도 돌아오셨다!
(침묵)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주님은 나의 힘, 내 노래이시니, 당신이 나를 구하셨도다. 주님의 오른 손이 나를 일으키셨도다.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보리. 주님의 장하신 일을 이야기하고자, 주님 나를 엄하게 다루셨어도, 죽음에 부치지는 않으셨도다. 주께서 이루신 일이옵기에, 우리 눈에 놀랍게만 보이나이다(시편 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