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참을성 없는 저는, 사순절 동안 금식과 금육을 잘 지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이 다가오는데,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는 고민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예식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 적어도 사순절의 시작은 그럴듯하게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우리 본당 수요일 미사는 오전 열 시. 저는 고민하다가 옆 본당의 새벽미사에 참례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본당도 아니고, 꼼짝없이 차타고 가야하는 본당의 그것도 새벽미사라니, 결심을 내리기까지 아찔한 순간이 없지 않았으나, 한번 마음먹은거 뒤로 무르면 하느님이 더 괘씸하다 하실까봐서요. (내 이름, 사실은 김소심...)
해서, 오늘 새벽미사를 드렸습니다. 시계를 다섯 시에 맞추어 놓았는데 시계가 울리기 정확히 15분 전에 깼어요. 기특하다, 내 손으로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 미사에 갔습니다. 중림동 주임신부님을 처음 뵈었어요. 스테인드글래스 사이로 조용히 들어오는 신새벽을 바라보다가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흙으로 돌아갈 나의, 사람의 운명에 대해 잠깐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 천문학자 이영욱 교수의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든 일이 있거든요. 그분 말씀이, 저 먼 별이 사실은 우리의 고향이래요. 우리 몸의 원소들은 까마득한 옛날, 우주 끝의 어느 별에 있는 흙에서 만들어졌다는 군요. 그러니 우리의 삶은 150억 년 전부터 우주가 준비해 준 것, 뜨겁게 살아서 우주에 보답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어요.
어느 순간 우연히 ’펑!’ 터져서 우주가 생겼다구요? 시계 조립을 해체해서 부품을 케이스 안에 넣고 막 흔들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우연히 정상적인 시계로 조립되는 순간이 있나요? 한낱 시계를 만드는 데도 손이 가고 땀이 나는 법입니다. 하물며 우주야 말할 것도 없지요.
사람이 진화했다구요? ’천만의말씀만만의콩떡’입니다. 우주 저 먼 별의 흙 한 줌에서 생긴 인간에게 150억 년 동안 하느님께서 숨결을 넣어주신 것을, 이제 조금 알겠습니다. 그러니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느님, 당신의 오묘한 섭리였어요. 당신께는 늘 할 말이 없어요. 찬미합니다, 나의 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