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The Personal Is The Political.")
---한동안 저의 화두가 되었던 말입니다.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을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이 가슴이 짠했습니다.
칠순의 할아버지가 아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 품에 안기면서 "엄마" 하고 울먹이는데, 함께 눈물이 나지 않을 리 없지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한 사람의 개인사에 얼마나 정치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는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이 이론은 사실은 급진주의 여성운동의 슬로건이라고 합니다. 함께 그 수업을 들었던 친구와 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것을 이해했지요... 급진적이고 과감한 (왜냐하면 순수하기 때문에) 친구. 그 친구 생각이 나더군요.
해마다 이맘때면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그 친구와 그래서 통화를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 그 친구는 노동 여성에 대한 독립 저예산 다큐멘터리 제작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 당신답군."
"넌 어때?"
"나야 뭐, 여전히 재미있지. 어린이 책 만드는 거.."
"어휴, 너는 왜..."
"왜 운동하지 않냐고 할 거지? 오랜만에 전화해서 또 그 소리 해야겠어?"
그렇게 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알 겁니다. 저에게는 이 일이 운동이고 매일매일의 일상이 운동이라는 것을. 전화를 끊고서, 저는 일을 시작할 때의 다짐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운동의 방법도 달라져야겠지요.
70, 80년대에는 이른바 "공동의 적"이 분명히 눈에 보였고, 따라서 힘을 모아 싸우는 것이 필요했겠지만 요즘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부당한 힘의 횡포가 일상의 곳곳에 숨어있으니 그 싸움도 곳곳에서 개인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어린이 책을 만들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것으로 운동하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책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싶고, 책 속에서 드러나는 어른들(어린이들보다 힘이 센)의 횡포로부터 어린이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어린이들의 정신을 해치는 위험한 책이나, 결국 책을 사는 것은 부모들이니까, "부모들 마음에 드는" 어린이 책을 만들어 팔아서 어린이들로 하여금 책 읽기가 괴로움이 되게 하는 책을 보면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에 화가 납니다.
막연하게 꿈과 사랑이 넘치는 환상의 동산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현실을 건강하게 딛고 상상을 키우게 하는 책, 나는 소중한 존재이며 마찬가지로 내 친구도 소중한 존재이므로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이고, 그것이 저의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좋은 책 만들기 - 개인적인 싸움을 위해서 끊임없이 사회에,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기. 많이 읽고 생각하고, 많이 얘기하고 많이 듣기.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나의 "개인적인" 견해를 갖추기. 저 멀리에 있는 이념이나 거대한 대의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지만, 일상에서는 싸우고 있단다 친구야.
나를 개인주의자라고 할지도 모르지. 정책에 항의하고 시위하기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이용자 몫으로 돌리는 우체국 직원에게 항의하는 내가 소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친구야. 강력하고 열정적인 운동이 힘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너는 거기에서 운동하렴. 나는 작은 항의 하나가, 작은 의심 하나가, 작은 권리 찾기 한 가지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에 여기있을게.
나는 환경미화원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자고 시위에 동참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공원 벤치에 마시다 만 음료수를 두고 일어서는 것에 분노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단다. 소파를 개정하고 미군을 철수시키는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하고 어린이들로 하여금 선입견을 갖게 하는 행태들에 맞서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는 거야. 나에게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란다.
오늘 아침, 친구와의 통화를 생각하고 저를 돌아보며 출근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편집을 진행했던 첫번째 책이 "책"으로 완성 되어 책상 위에 와 있군요.
친구, 이 책이 나의 정치적인 운동이라면, 너는 믿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