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소리
여름 시계는
느려터진 줄만 알았습니다.
바람 잔잔한 한여름 오후, 나뭇가지도
더위에 축 늘어져 옴짝 하지 않고
떠돌던 흰 구름도
움직임을 멈추고 있기에
여름 시계도 늘어져서
가지 아니할 줄 알았습니다.
가을은 멀리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철모르는 코스모스가 한두 송이 피고 지지만
철을 아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꽃물결의 장관은 아직 연출되지 않기에
가을은 저 멀리서 천천히 올 줄만 알았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가고 또 가봐야
가을을 만나볼 줄 알았습니다.
눈 감고 가만히 들어보면
들리는 소리가 여름 파도소리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가을이 오는 소리였나 봅니다.
가을은 미리 가을 색으로 마구 칠해놓고
그 길 따라 천천히 오는 줄만 알았더니
그런 게 아니었나 봅니다.
푸름이 아직 한창인데
알알이 익은 포도송이를 맛보면서
성큼 가을이 다가옴을 알았습니다.
가을에는 아프다고들 하기에
그게 거짓인 줄 알았습니다.
코 끝에 미리 전해지는
가을 내음에 보고 싶음에,
가슴이 미리 아프려고 하니
가을이 짙게 물들어 오면
얼마나 아파해야 할지 나는 모릅니다.
-좋은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