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2012. 4. 21. 오전 6: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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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고, 눈이 녹으면( )이(가) 됩니다." 여러분은 위의 괄호 안에 뭐라고 쓰시겠습니까? 어느 초등학생은 이런 답을 썼습니다. "눈이 녹으면 '봄'이 됩니다." 정말 창의적인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만물이 소생하는 완연한 봄입니다. 산과 들에 새순이 봄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식탁에도 달래, 냉이, 쑥과 같은 나물들이 봄 냄새를 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딱딱한 나무를 뚫고 얼굴을 내미는 새순의 고통은 모릅니다.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의 고통은 모릅니다. 그러나 자연은 어김없이 '나 여기 살아 있소'하며 부활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세속에서 부활이라 하면 말 그대로 '다시 사는 삶', 흔히 '보너스 인생' 쯤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부활은 예수님의 지상 생활 전체를 봤을 때 마냥 기쁘고, 화려하고, 행복한 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그분의 33년 인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부활이 있기까지는 치열하고 처절했던 십자가의 사투가 부활의 전초전으로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을 꿈꾸며 삽니다. 예전에 교리문답 1번에도 '사람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라는 질문에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났도다.'라는 답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 즉'부활'을 희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마치 운동선수가 열심히 훈련하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것처럼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내 인생 전체를 놓고 예수그리스도의 사심판과, 공심판을 통해 선물로서 주어지는 사후 은총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삶을 희망한다면 지금 십자가 짊어짐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이 생깁니다.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매 순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고민하고 묵상해야합니다. 경제적 이익, 육체적 편리함, 인간 중심의 자연관등 세상의 논리만 따르다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는 삶과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짊어질 십자가이며, 이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이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제1독서에서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 사도가 그 해답을 말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또한,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 역시 바오로 파다, 아폴로 파다 싸우는 육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삶, 즉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답게 세상의 논리에 타협하지 말고, 예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세속의 논리로 자연을 훼손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에 맞서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부활을 희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수원교구 김태규 방그라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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