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선언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보니, 얼마 전에 인기 있었던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조카의 돈까지 뺏어가려는, 재물에 눈이 먼 한 가족에게 도깨비가 벌을 내립니다.
그들에게 황금 덩어리를 주는 것, 그것이 벌이었습니다.
도깨비의 지인이 말합니다.
"그게 왜 벌이냐"고 상이지!
그러나 놀랍게도 상처럼 보이는 그 황금덩어리는 그들에게 벌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그 황금을 서로 차지하려는 욕심을 부려 잠도 못자고 서로 싸우고 급기야
경찰서까지 가게 됩니다.
상처럼 보이는 재물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재물에만 눈이 먼 그들은 처음부터 불행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계속 그런 불행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복선언, 진복팔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행복하여라.는 말입니다.
이는 명령형이 아닌 감탄사라는 것입니다.
'너는 행복해져라'가 아니라 '너는 행복하구나'라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 불행하니 미래에는 행복해 질꺼야'라는 위로가 아니라
현재 '네가 지금 불행한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자칫 조롱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모든 것을 놓고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돈이나 명예, 학벌과 지식 그런 것으로 분명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요즘 온 국민을 분노케한 정권과 그 실세들의 모습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돈, 명예, 지식 등등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난이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부귀영화와 명예가 있지만 하느님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하느님께 매달리며 의지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극빈하지만 하루 한끼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일확천금 로또를 꿈꾸며
하루하루 허황한 꿈속에서 살아가느라 하느님을 찾지 못하고 그분께 의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이 아닐것입니다.
부나 권력, 명예에 의지하지 않고, '겸손되이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깨닫고
하느님께 매달리며 의지하는 사람', 이들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진복팔단은 더 이상 조롱이 아니라 신앙인인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가난, 이는 내가 모든 것을 놓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슬퍼함, 이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나의 죄 사이에서 오는 갈등과 나 자신의
불충분함을 숨김없이 보고 느끼는 태도입니다.
온유함, 이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의로움에 대한 굶주림, 자비, 마음의 깨끗함, 평화를 이룩함 그리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을 준비…. 결국 이 8가지는 인간이 신앙인으로서,
아닌 일반인으로서도 유용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덕목이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때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보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답을 외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현재적인 의미로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8가지 덕에 대한 보답은 덕 그 자체 안에 있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벌써 가난한 사람의 것이고, 그는 이미 하느님을 향해
열려 있고,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자기의 갈망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행복은 현재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은 아닐지라도, 금방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행복을
우리는 주님 안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지훈 힐라리오 신부(주엽동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