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야고보 아저씨의 샬롬 묵상

2007. 6. 29. 오후 5: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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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 야고보 아저씨의 샬롬묵상-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6월27 연중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마태7,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나를 보고 예언직분을 잘 수행하는 평신도라고 사람들이 추켜세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우쭐해져서 그런 줄 알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언직분이 무슨 의미인지, 예언직분을 잘 수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일인지 생각해보면 그런 얘기를 들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말을 잘못하거나 잘못 가르친 적도 많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행실이나 행동을 하도록 권고하면서도 내 자신은 하나도 실행하지 못하니 예언자의 직분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거나 복음을 묵상하는 것도 예언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만약 그 일을 잘못하였다면 이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거짓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언자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으로 그 직분을 수행하는데 모범이 되어야 하고 마음과 말과 행동이 모두 일치 되었을 때 완전히 예언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만 번지르르한 신앙인이고,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게걸스러운 이리가 되어 있지 않은지 반성해보면 나는 오늘 주님께서 조심하라는 거짓 예언자가 아닌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고 교회에서는 평신도의 사명을 가르치면서 평신도의 사제직분, 예언직분, 왕 직분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말이기도 합니다. 감히 어떻게 평신도가 사제직분에 참여하고, 예언자의 직분에 참여할 수 있으며, 왕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명을 부여받았는지 꿈같은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명을 받았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사제직분이고, 예언직분이며, 왕 직분인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드물고, 구체적인 설명을 들은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직분들에 대해서 설명을 들으면서 무언가 미흡하고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예언직분에 대한 것을 설명하면서 예언(豫言, 預言)이라고 쓰는데 예언(豫言)이 아니고 예언(預言)이라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장래를 예언한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사람이라고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언(預言)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저장하였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펴놓아야 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그 의미를 잘 새겨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안에서는 예언자(豫言者) 또한 필요하고, 우리도 예언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그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열심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징표(徵表)를 보고 세상의 모든 사정(事情)을 식별(識別)하여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세상의 나아갈 바를 옳게 진단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앞날을 올바르게 인도하여야 하는 예언자(豫言者)의 역할도 해야 한답니다. 옳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여야 할 책임이 있으며, 정의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여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고, 그 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잘 살게 하고,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영접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 또한 예언자의 직분입니다.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예언자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복음을 선포하고, 선교하는 것은 우리의 예언직분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면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예언직분을 수행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언직분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변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리에는 교회의 예언직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언직분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예언직분은 구원의 진리, 즉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활과 말씀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서 쉬지 않고 그 예언직분을 수행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완전히 드러낼 때까지 예언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와 함께 하신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고 하셨다. 따라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직분에도 참여한다. 특히 신앙과 사랑의 생활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산 증거를 널리 전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입술의 열매를 찬미의 제물삼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그 예언직분에 참여한다.”(교회헌장 12).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는 성령의 인도로 예언직분을 오류 없이 세상 마칠 때까지 충실히 수행한다. “각 주교들이 무류(無謬)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온 세상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일치하고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사정을 유권적으로 가르칠 때에 결정적인 한 가지 판단에 의견의 일치를 본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교리를 오류 없이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주교들이 공의회에 모여서 세계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가르치고 판단할 때에 무류성은 더욱 명백한 것이니, 이 결정사항은 신앙의 순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교회헌장 25).

  -선교사랑방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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