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제발 나를 떠나지 말라
신앙의 맛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더 ‘주님 안에 머무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태와 게으름과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있어도 하느님을 떠나지 않아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떠나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분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떠나간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신실하심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귀찮을 정도로 끈질기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그런 하느님을 사냥감을 쫓는
사냥개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1893년, 로마가톨릭 시인 프란시스 톰슨은 하느님을
‘천국의 사냥개'로 묘사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떠나는 쪽은 언제나 우리들입니다.
죄책감으로, 부끄러워서, 감히 얼굴을 들고
하느님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 하느님 앞에 나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더 긴급하고 더 중요한 것을 찾아 하느님을 떠납니다.
실제로 긴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착각하고 떠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이고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느님을 만나려고 그분 앞에 나오는 일,
그분을 기다리는 일을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무엇인가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혹은 하느님의 준엄하심에 지레 겁먹고
두려움으로 하느님을 외면하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께 붙어있기만 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인 내게 하느님의 손길이 올 때
그건 회초리나 징벌이 아니라 나를 살리시려는 의사의 손길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포도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그 손길이 나를 치료하셔서 살려내십니다.
오직 소망은 나무 본줄기 뿌리에 있고 그 나무를 가꾸는
농부에게 있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나무의 본줄기의 생명력과 치유력을 믿고
농부의 손길에 내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나무 밑둥으로부터 물과 양분이 솟아 올라와서
나에게까지 전달될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그 나무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끝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을 떠나지 않고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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