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성사

2005. 12. 16. 오전 5:39:37

글자
    *♣* 고백성사 *♣* 수도원에 처음 입회하고 나서, 서너 달을 워밍업을 한 뒤, 드디어 예수회원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관문인 “영신 수련 (Spiritual Exercises)” 를 하게 되었다. 사뭇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30 일 동안의 피정을 임했다. 그 긴 여정 중에서도 가장 부담스럽고 힘이 드는 시간은 물론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뒤돌아보는 “죄 묵상”이 아닐 수 없다. (예수회에 12년 동안 몸을 담고 있자니, 이제는 ‘죄’라는 것이 나를 책망하고 단죄하는 그 무엇이라기보다, 나를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데 가로막는 장애들이기에 그걸 볼수록 하느님의 더 큰 사랑에로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의 길을 더 실감하고 갈망할 수 있기에… 이제는 죄 주간이 그렇게 두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도원 입회 후 처음으로 총고백을 할 때, 그 부담감이 얼마나 큰 지 모른다.) 총고백을 준비하고, 피정 지도 신부님 방 앞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걸 느낀다. 어떻게든 매를 맞아야만 한다면, 빨리 맞고 나오는 게 편한데… 괜시리 뒤에서 기다리면서, 알게 모르게 갖는 긴장감은 심리적인 부담을 더 주기 마련 때문이련가? 마침내 신부님 방에서 한 수련자가 면담을 마치고 나온다. 내 차례다. 신부님 방 안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는다. 방이 평소와는 달리 약간은 어두운 듯 싶다.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다. 하루 동안 기도하면서 느꼈던 내적 체험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예상치도 못 했던 일들이 터져 올랐다. 내 의식은 항상 올바르고 좋은 것을 지향코자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얼마나 외고집스럽고, 편향되어 있는지…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올바름을 향한 의식적인 지향으로 정당화되어 있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나의 방자한 교만을 들추어 보고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기도 중에 약간 졸면서 기도를 했는데, 뜻밖에도 대박이 걸려 들었었다. 나의 무의식적인 교만을 생생히 체험하고 하느님 앞에서 용서를 청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얼마나 하느님께 죄송하고 미안했는지, 눈물에, 콧물에… 목이 메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 했다. 신부님께서 넌지시 크리넥스를 건제 주신다. 보드라운 휴지에 코를 풀고,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잠시 들어 보니, 신부님께서 고개를 숙이시고 눈물을 훔치고 계신다. 당신께서도 함께 나와 여정을 걷고 계셨다. 나에게는 이 고백성사가 하느님께서는 누구든 용서하시고 부드럽게 품어주신다는 원체험이 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전에 멀리 한 본당에 가서 고백성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학생 신분인 나에게는 사실 흔한 일은 아니다. 한 분이 고백소에 들어오셔서 흐느껴 우시며 힘겹게 말씀하시는 걸 따라 듣다가, 나도 함께 울고 있었다. 정말 마음 아픈 상처를 듣고 있었다. 한 인간의 자존심과 존엄이 무너져 내린 아픔이 내 폐부를 찌르는 듯 싶었다. 무엇을 말씀 드려야 할까? 내 머리는 정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 말없이 눈물을 가리고 한 동안 마음 속으로 기도만 드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갈망을 나누시는 걸 들으며, 하느님께서 친히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계셨음에 진한 감사를 드렸다. 성사…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일이다. 미사 성제이든, 고백 성사이든… 그것은 하느님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다. 신부라는 매개를 사용하시기는 하지만, 당신의 사랑이 이미 고백자들에게 임했기에 사제들은 그분의 넘치는 사랑을 확인해 줄 따름이다. 오세일이란 인간을 처음 보는 분들도, 단지 사제라는 이유로 자신를 나누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고유한 수단으로 사제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일인지?! 나는 특히, 고백 성사를 통해서 사제 성소에 대한 지극한 감사를 드리곤 한다. 신자들의 고통스런 몸부림과, 하느님을 찾는 가난한 탄원을 들으며,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가까이 체험하기에… 그것은 우리를 향한 은총의 선물이다. 신부는 국화빵이 아니라 짱아치가 되어 사는 삶인가 보다. 사제는 서품 미사로 훌딱 만들어져 그냥 그대로 가는 삶이 결코 아니다. 신자들의 고통과 탄원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짠내가 몸에 스며들 때 서서히 그리스도를 닮아나가는 현재진행형 짱아치로서 사제 성소를 종신토록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자들을 통해서 사제는 거룩한 성소로 초대받는다. -오세일 수사님 홈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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