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 말씀양식-봄오는 주말 행복하세요

2006. 2. 25. 오전 11:28:42

글자
To  형제자매님들

2월25일 말씀양식-봄오는 주말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2월 25일(토) 독서 복음묵상

 

독서 야고 5,13-20

주님 앞에 분향으로 피어올라 그 크신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

음악을 지어내는 작곡가가

수많은 관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온갖 심혈을 기울이는 것처럼,

그만큼의 기도가 돼야 하는 건 아닌지요.

주님의 마음이야 더 할 나위 있을까요.

그보다 더 크게 감동시켜드리지 못한다면

내가 하게 되는 기도에 어디 눈길 하나라도 돌리시겠는지요.

오늘 독서 말씀에서 느껴지는 엘리야의 기도하는 모습은

하늘을 우러르면서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의 손짓 하나 하나에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비가 멈추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감동하셨으면, 더할 수 없이 지체 높으신 그 분께서

의인이긴 하지만, 한낱 인간인 엘리야의 마음 하나 하나에

비를 내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했을까요?

요즘 세상엔 의인을 보기 어렵다고 하더니

이런 기도도 보기 힘들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어떻게 해야 이만큼의 기도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엘리야처럼 주님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멋진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방법 저 방법 궁리해보지만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별 뾰족한 수는 없는 듯합니다.

대부분 오랜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기도,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기도,

형식적인 숫자만 늘려가는 기도,

그러다가 주님을 감동시키는커녕,

내 자신부터 지레 시큰둥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선지자 엘리야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주님께선 과연 무엇에 그렇게 감동하셨을까? ...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오케스트라의 멋진 거장처럼 보이던 그가 문득 매우 작아 보입니다.

그는 자기의 일을 두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가장 낮은 이라고

하늘 아래 무릎꿇을 줄 압니다.

이런 기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늘 그렇게 기도하셨기에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그토록 사랑과 감동에 벅차하셨습니다.


복음 마르 10,13-16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는

유다인들의 경직된 사고방식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죠.

그 굳어버린 생각들이

하느님에 대해서마저도 그들의 방식대로 가르치고,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헐벗게 하는 데 도구로 쓰여졌습니다.

당시에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은

마치 인도의 불가촉 천민쯤으로 여겼는데요,

옷깃만 스쳐도 부정타는, 그런 존재로 여겼던 거죠.

그들은 하늘에 죄를 지은 죄인과는 달리

이 땅의 사람들에 의해 죄인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죄 지어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면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치실 순 없었겠죠.

누구보다 먼저 안아주시고

이 땅으로부터 사슬을 끊어주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 것이라고 하니까,

그건 옛날 얘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어디 아이다운 순수함이 있느냐 하면서요.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을 대하면서

그래, 이런 마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과 같은 마음이구나,

하면서 뭔가 깨닫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는 백 퍼센트 어린이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도 주장을 하니까,

다른 편에선 참 비현실적인 주장을 한다고 돌아서기도 하죠.

예수님 말씀에 너도나도 아이가 이렇다 저렇다,

그래서 이런 건 도무지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라면서

그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래설까요?

그래서 또 나름대로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그저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어린아이가 아니고 말이죠.

내 안에는 세월에 따라 경직되고 변질된 생각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어른스럽고 점잖아졌다고 했던 것들이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수님과 멀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첫 마음이 자꾸만 흐려지고 있는 거죠.

어린아이와 같아지라는 말씀은

이처럼 내 안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것,

곧 주님을 향한 회심은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겨우내 언 땅이 제 몸을 녹이고

풋풋한 기운을 끌어올리며 물기를 머금는 아침입니다.

보드라운 연갈색으로 풀어지는 그 땅에서는

무엇이든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생명을 가진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하늘 향해 가지를 뻗고 잎을 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세상의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살리는

내 어머니의 품과 같은 땅,

봄이 달려오는 들녘으로 끝이 없습니다.


예수님

숨을 크게 들이쉽니다.

내가 나의 사랑으로 살리겠다던 그 모든 것을

내쉬는 숨결과 함께 자유롭게 합니다.

나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소유하고자 했던 사람들,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사랑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들,

그 모두를 나의 밖으로 자유롭게 날려보냅니다.


묵묵히 내려앉는 봄의 땅과 같이

나도 모든 생명을 심고 키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이 아닌,

나의 힘이 아닌,

그 모든 자유로운 생명의 사랑과 힘으로

저절로 뿌리내리고 잎을 내고 가지를 뻗는

그들의 땅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

나무에 피는 어여쁜 빛깔의 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늘 너머로 훨훨 나르는 무지개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무런 빛깔 없이도

그 모든 생명의 빛깔들을 품어 안는

대지의 사랑과 헌신을 나도 따르고 싶습니다.


세상에 드러내려는 나의 사랑, 나의 빛깔을

내 안으로부터 결결이 갈라내고

새하얗게 모아지는 당신의 하늘로 날려보냅니다.

나도 그렇게 당신을 닮은

하나의 빛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멘

 

 

주님안에서 좋은 하루 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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