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창가에서

2005. 12. 13. 오후 12:05:17

글자



땅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하얀 눈이
올려다본 하늘은 천연덕스럽게 시리도록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언제 함박눈이 내렸는지 모를 정도로
추위는 꺾이고 응달 속에 발목 잡힌 하얀 눈만이
겨울의 풍경을 품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책상위에 놓인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습니다.

(수녀원 입회 후 지원기) 0월0일
…성모상 앞에 놓여진 꽃을 며칠 전부터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드디어! 아무도 모르게 성모님께 사랑을 드릴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님, 감사드려요. 기쁘고 행복해요.’
꽃이 예쁘게 꽂혀지지 않았지만 다른 자매들이 보고서 더 예쁘게 꽂혀드렸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제가 외적으로 당신께
해드리고 싶은 게 전부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사랑이 행동으로 드러나게 이끌어주소서…

수녀원 입회 때 선물로 받은, 벌써 10년이 훨씬 넘은 일기장이었지만,
그때 시간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답니다.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라는 감탄과 더불어
‘숨은 사랑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었지’ 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한 순간도 주님께로부터 시선을 놓지 않으려 했던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그리워짐과 동시에 오늘을 무디게 살아가고 있는
저의 ‘부끄러움’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3개의 촛불이 켜지는 대림 3주일. 내 마음의 방에 준비된 기다림의 간절함을
‘어떻게 표현해 볼까?’ 라는 행복한 고민을 잠시 해봅니다.
그리고 겨울에 어울리는 시 한 편도 떠올렸습니다.
……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해인 님의 <겨울 아가2> 중에서-

기다림 속에 사랑이 빠지면 어떤 맛, 어떤 표정, 어떤 기분일까요?
이제 곧 오실 아기 예수님의 ‘육화’는 사랑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비워 인간을 찾아 나서십니다.
나를 찾아 나서시는 그분의 사랑이, 낮추고 낮추신 그분의 사랑이,
우리 기다림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를 찾아 나서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행복한 한 주간 보내세요.



행복지기 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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