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있다 설거지 한다고 말하고선 미적댈까
양파 갖다줄 때 껍질도 까줄 생각을 못 할까
"베란다에서 양파 좀 갖다 달란 말 못 들었어요?"
아내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남편은 거실에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지만 책장은 좀체 넘어가지 못한다. 아내가 자꾸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5분만 더 읽다가 양파를 갖다 주고 싶은데 아내는 사정이 급한 모양이다. 나는 읽던 책을 내려놓는다.
"몇 개나?" / "하나만."
나는 아내에게 양파를 갖다 주고 소파로 돌아온다.
"그냥 가면 어떡해. 까 줘야지."
진작에 말할 것이지, 불평이 혀끝에 맴돌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양파를 깐다. 다시 나는 책을 펼친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읽던 문장을 찾기도 전에 아내가 또 부른다. "냉장고에서 깐 마늘 좀 꺼내줘."
아내는 요리할 때 자주 남편을 찾는다. 요리사에게는 곁에서 보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내가 요리할 때 남편은 보조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앉아서 책만 읽는 보조를 그냥 두고 보는 요리사는 없다. 아내가 요리하는 동안 나는 가게 가서 두부와 감자를 사 오고, 대파를 다듬고, 참기름 뚜껑을 열어야 한다. 요리가 끝난 뒤에도 보조 남편은 거실 소파로 돌아갈 수 없다. 식탁을 닦고 수저를 정리하는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자마자 나는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통에 그릇을 담근다.
"5분만 있다가 내가 설거지 할게."
나는 정말 5분만 쉬었다가 설거지를 해야지, 다짐하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나 책 속의 시간과 책 바깥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책 속에서는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책 바깥의 시간은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게다가 책 바깥의 시간에는 한 시간 전부터 개수대에 쌓인 그릇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아내가 살고 있다.
"정말 설거지 안 할 거야." / "5분만 있다 할게. 읽던 것 마저 읽고."
"5분 좋아하시네. 놔둬요. 내가 할 테니."
아내는 싱크대로 가서 고무장갑을 찾아 낀다. 요리사가 요리를 하면 설거지는 당연히 보조의 몫이다. 물소리의 시끄러움과 그릇 부딪히는 소리의 날카로움이 요리사 아내의 심사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보조 남편은 책을 읽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자들이 설거지 소리에 다 깨지고 씻겨 내려간다. "정말 5분만 있다 내가 설거지 하려고 했는데."
나도 가사분담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발적인 남편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내가 5분만 있다가 하려는 일을 항상 아내가 먼저 시킨다. 그러니 나는 아내가 시켜야 겨우 움직이는 게으른 남편이 된다. 게으른 남편의 속이라고 편할 리 없다.
나는 책을 들고 일어나 핫바지에 방귀 꺼지듯 거실에서 사라진다. 요리사의 후각은 예민하다. 아내는 수도꼭지를 잠근다.
"어디 가?" / "나 지금 똥 눌 거야."
"그래서?" / "찾지 말라고."
"화장실 가서 책 읽으려는 거지? 책 읽는다고 밥이 나와? 돈이 나와?"
"똥이 잘 나와."
"그래, 실컷 똥이나 누고 오세요."
똥을 누며 나는 화장실과 욕실을 둘러본다. 똥 누고 5분만 쉬었다가 화장실 청소를 할까, 하는 기특한 생각을 한다. 그때다. 아내가 화장실 밖에서 소리친다.
"들어간 김에 화장실이랑 욕실 청소 좀 해요."
김삼득의 남편 생활백서 - 중앙일보
2007. 4. 7. 오전 7: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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