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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2. 11. 오후 3:24:59

글자

 류시찬 보나벤뚜라 신부님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류신부님 하면 이냐시오 영신수련 기도의 대가로 통하시는 지라.. 저도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그 분을 보러 갔습니다.

요즘 저에게 사람을 천천히 바라보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같이 대화를 하는 상황에서는 어렵지만 강의를 듣거나 강론을 들을 땐 내용이야 들리면 듣고 안들리면 안듣고 그냥 바라 봅니다.

그렇게 천천히 바라보면 귀로 들리는 것 보다 더 많은 얘기들이 그 사람의 몸을 통해서 들릴때가 있습니다.  아무 얘기도 안들릴 때도 있구요..

얘기가 들릴땐 그 사람이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자기 얘기를 할 때 그 사람의 몸의 언어와 일치해서 힘있게 제 안에 들어와 제 안에 휘돌게 되는 것 같네요.

 

좋은 얘기야.. 여지껏 책을 통해 강의 강론 면담.. 뭐 여러가지를 통해서 많이 듣는 편이라서 귀에 두터운 지방층이 쌓여서 오히려 맘으로 잘 전달이 안되는 때가 많습니다.

귀가 먼저 알아서 또 그얘기야? 하고 마음에 닿기 전에 먼저 걸러 낼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강의에 주제인들리십니까?와 다르게 류시찬 신부님을 보러 갔습니다.

 

하얀 머리, 중년후반기의 신부님들에게 보이는 무기력함. 공허함? 속세? 사람들보다는 몇박자 느린 피정 모드.. 그래서 어벙벙해 보이는 모습..말씀또한 좋게 말하면 단백하게 나쁘게 말하면 감칠맛 없이 면담하듯 조곤조곤 졸음모드로 몰고 가기에 딱인듯하나..

 

하루가 지난 지금 그분의 말씀이 내안에서 살아서 휘돌고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뭔가 정리를 해 보려고 오랜만에 대산회 홈피에 들어와 산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들을 주절 거려 봅니다.

 

그날 강의 내용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듯이 추함과 아름다움 건강함과 허약함 똑똑함과 멍청함이 공존해야 하는데 우리들은 양만을 고집하고 음은 쳐 내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이 병들고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효리 같이 늘씬하고 예쁘면 효리의 아름다움이 빛날 수 없지만 우리의 평범함으로 인해 효리의 예쁨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렇게 효리의 예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우리의 평범함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남자들은 이효리를 참 좋아 하나 봅니다. 신부님이 알고 있는 유일한 연예인이 이효리고, 한국 말을 잘 못하시는 우리 교수님도 수업시간에 한번씩은 어색한 발음으로 효리를 부르는 것을 보면) 그래야 낮은덴 높아지고 높은데는 낮아져서 모든게 평평하게 되어서 주님의 구원이 열리는 것이라고..

 

당신도 외로움을 무기력함을 또 사람들을 주님께로 잘 이끌고 가고 싶은 욕망앞에서 좌절도 하셨을 듯한 신부님의 삶을 잠시 예수님의 숨은 어린시절 관상하듯이 그렇게 혼자 그려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순간에도 그냥 그 느낌 그대로 예수님 앞에 머무르셨던 그분의 모습이 지금 저 분의 말씀에 예수님처럼 권위가 느껴지는 것이구나.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마귀를 쫓고 기적을 일으켰던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죽음앞에서 두려워 하시면서도 당신의 뜻데로 하십시오.하고 아버지 뜻에 머물렀던 예수님의 모습이 신부님을 통해 보여 졌습니다.

 

좀더 발걸음으로 말해야 겠습니다. 사랑한다고

좀더 눈으로 들어야 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고 있다고..

 

댓글 1

  • 2006년 12월 11일 오후 4:42

    감사합니다.

기행글.좋은영상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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