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3

2006. 11. 1. 오전 7:29:24

글자


침대 열차     


수많은 사람들이 1주일 간의 연휴를 맞이해 고향에 가려는 듯 
큰 보따리들과 함께 광장에 몰려 있다.
가이드의 독촉에 눈 한번 돌리지 못하고 驛舍안으로 밀려 들어 가며 
다시 한번 가방들의 X-레이검사 받았다.

오후 8시의 출발시간이 임박해서야 하는 개찰 덕분에, 
그야말로 탈북자들 대사관으로 도피하듯이 
혹은 군기 바짝 선 신병들이 자대 배치 열차에 올라타려는 듯이
에스카레이터나 기타 아무 이동 설비도 없이, 
무거운 가방들을 끌고 들고 당기며 지하 통로 계단들을 오르내리며 
허둥지둥 소란끝에 기차에 오르니 의외로 
방들의 비품이나 관리 상태들은 양호하고 차분했다. 

기차 자체도 오랫만이지만, 생전 처음 4인용 침대차에 타는 기대가 크다.
더운 물을 이용해 컵라면 취식도 가능하고, 화장실이나 세면장도 양호한 편이다.
중국을 여행하려면 침대차에 익숙해져야 할 듯해 약간의 사진을 덧붙인다.

이곳은 원칙적으로 5월부터 10월 말까지만 관광이 가능한 곳이라, 
시즌이 끝나면 KAL 항공기, 관광 전세버스, 침대열차, 기타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이나 식당등 모든 체제가 중지, 혹은 축소 된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가 타고다닌 버스엔 에어콘 설비는 쨍쨍하게 설치되어 있으나, 
추위에 대비한 히터 장치는 아예 없고, 추운 기간은 천막을 씌워 동면에 들어간다고 한다.

차량마다 무뚝뚝해 보이기는 하나 여승무원이 주재하며,
화장실이나 세면장을 계속 관리해 준다. 
주행중에도 매우 조용한 편이다. 
이동 매점차가 다니고, 비치된 침구들도 산뜻하다.
우루무치 국제공항과 돈황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중국에선 거진 최고급 기차라고 한다. 

단지 우리 식구들은 
밤 늦는 줄 모르고 마시는 면세점용 싸구려 양주로 
또한 한쪽 방에서는 고스톱을 친다며 그나마 좁은 공간을 오염시킨다.
     

투루판 정거장에서
"넝 마이 뚱시 마?"라고 조심스럽게 중국어 책을 읽자, 
어리둥절하던 안내 아줌마(사진)의 입가에 미소가 질 듯하더니 
"꺼이, 꺼이"하며 승낙을 한다 
잽싸게 뛰어가 피땅콩과 하미과(커다란 참외로 현지 특산물)를 사다가 다시 술판을 연장 시켰다. 
우리 동행은 우리 가족이 8명, 외조부와 초등생 3명을 동행한 7명 가족, 
그리고 4쌍의 부부. 계 23명이 A조로 같이 행동했고, 
B조는 싱글들로 구성된 젊은 처녀 총각들 16명으로 한 팀을 이뤘다. 

8명이면 식당에서 한 테이블이고, 기차에서도 4인용 2칸인 
중국 여행에서는 황금 숫자이기는 하나, 
하도 우리 집안이 드세고 주량이 막강해 다른 손님들에게 미안하다. 

   
    (사진은 초상권 분쟁을 피하면서도, 침대의 수준을 가늠하시라고 올린 것이다.)

 
술김에 잠에 떨어졌다가 깨어보니 날이 개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평선에서의 일출을 맞이할 참이다 
동쪽하늘부터 붉어지는 지평선을 느긋하니 지켜 보는 즐거움이란... 

의외로 지평선에서의 일출은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화장실을 사용해 보려고 몇번의 시도를 해 보았으나
도저히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 

짐을 정리하다 집에서 싸온 약식이 보이길레 
어제의 안내 아줌마에게 선물로 주니 
잠시후에 답례인지 다음의 물건을 건네주는데...

요상하게 생긴 것은 바로 배인데, 
생긴 것과는 달리 매우 달고 시원해 이후에도 자주 사서 먹었다. 

(사진은 기차에서 바라본 해뜬 후의 사막의 경치이다) 아침 8시 30분 12시간 넘어서 드디어 종착역인 유원에 도착했다.
   10월 2일 아침

 유원


돈황역은 돈황시내로부터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시내와 역이 그토록 먼 이유는 철로를 놓을 때 돈황시내를 거치지 않고
직선거리로 놓았기 때문이다.

역 이름은 돈황역이지만 도시이름은 유원(柳園)으로서,
유원은 돈황 때문에 생겨난 인구 1만의 소도시인 셈이다

유원역 역 구내에서도 짐 나르기가 고역이었으나 
아주 아담한 동네(돈황에 오는 관광객을 기차로 모시기 위한 간이역같은)의 
쬐끄만 역이라 바로 코앞에 대기한 버스에 탑승했다. 

타자마자 바로 내려 유원에서는 제일 고급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우선 화장실로 직행하는 게.. 
중국에서는 먹는 거야 지천이지만, 화장실은 훨씬 그에 못미치니, 
사람들 몰리기 전에 해결하는게 급선무이다.
칸막이가 반만 설치되어 있어 모자를 눌러써야 다른 손님과 눈맞춤을 방지한다. 
그나마 기차에서의 좌절을 이겨내고 다행히 성공!!! 

자그마한 동내에 위치한 驛舍, 거기에 어울리는 식당및 아주 검소한? 상차림, 그리고 식당 주변.... 유원에서 돈황 가는 길 돈황으로 달린다. 년중 강우량이 16mm라는 돈황. 실크로드의 시발점이요, 이번 여행의 백미인 막고굴이 있는 돈황. 당나라때는 서역 최대의 도시였던 돈황. 그러나 몇 백년동안 잊혀졌다가 이제서야 다시 개발되기 시작한 돈황.. 돈황으로 들어 가는 길에 마주친 양떼들이다.
경운기에 실은 목화솜이 매우 이채롭다.
수확기가 거진 끝나감에 불구, 많은 곳에서 목화가 재배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비가 한 방울 내리지 않아도 목화와 포도의 재배엔 수로를 이용해 전혀 걱정이 없는 모양이다. 중간에 간이 유료 화장실에 멈추는데 위그루 소년이 너무 장사에 심취해 호객 소리를 높이다가 제풀에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울움을 터뜨린다. 그래도 손에 쥔 잔돈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 꼬마가 생활 할 듯한 집이다. 대부분의 집들이 -비가 안 오니- 지붕에 대해선 신경 쓸일이 없다)
(우리가 이틀 묵을 돈황 산장과 길거리의 사진이다. 관광지답게 매우 깨끗하고 잘 정돈 되어 있다) < B> 10월 2일 오후 양관
점심 식사 후, 돈황에서 양관으로 가는 길은 사막의 연속이다. 막막한 사막속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오아시스에 놀라 옆의 사람들을 소리쳐서 깨웠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는가? 보트까지 몇척 보인다. 사막에 홀로 서 있는 양관이 보인다. 현재의 출입국 사무소및 검문소의 역활이다. 이렇게 삭막하고 불편한 곳에서 지냈을 병사들의 외로움이 뇌리를 스쳤다. 여기만 지나면 당시 중국으로선 異國인 서역으로 나가게 된다.
작은 오아시스를 끼고 있는데, 예전의 건물은 봉화대만 남겨놓고 모두 모래바람에 씻겨 날라가고,
전부 새로 지은 것인바, 막말로 사막을 뚫고 70km이상 달려와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온 관광객이 본전 생각 나지 않게 차리느라 애쓴 흔적이 보인다. 돈황고성 명사산의 한쪽 끝에 영화의 세트장으로 지어 졌고, 우리나라의 장보고라나하는 연속극도 몇장면 찍었단다.
(불원 萬里 찾아와서 세트나 구경하다니... 강아지까지도 못마땅한 듯 졸고 있다) 양관까지는 참을만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돈황 고성 세트장은 탐탁치 않았다. 다시 돈황 시내로 돌아와... 자! 이젠 명사산이다! 맞은 편에 보이는 명사산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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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글.좋은영상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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