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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모습사진2008. 9. 29. 오후 10:22:30

염소...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오래 전에, 한국에 있을 적에
어느 방송을 통해 들은 일설로 기억됩니다만
염소들은 아무리 더운 한여름일지라도
둘씩, 셋씩, 혹은 여럿이서 서로 몸을 엉켜붙여 지내고,
추운 겨울에는 저만치 뚝뚝 서로 떨어져
홀로 지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에 내 몸 더운 것은 견딜지라도
남이 시원한 것은 눈 뜨고 못 보기 때문이며,
겨울에는 내 몸이 꽁꽁 얼어 죽을 지경이 되어도,
내 몸의 온기로 인해 남이 따뜻해지는 것은
싫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덜덜 떨면서 서로
떨어져 지낸다고 합니다... 
 
 
이건, 이 글을 올린 뜻에서 빗나가는 멘트인데요. 
동물들의 이런 심리나 소행을 알아내는 인간들이 참 대단해요.
그렇지만, 만에 하나, 염소의 뜻이 사실 그게 아니라면
염소는 얼마나 억울할까요, 말도 못하고...
 
 
 
 
우수 클럽2008. 9. 29. 오후 5:05:16

무엇이라?? 미끄러 졌다고라고라....

굿 뉴스 우수 클럽 선정 기준이
 
심히 의심 스럽구먼....
 
많이만 들락 날락 거리고 자국만 많이 남기면
 
우수 클럽이라면  평생이라도 하겠네  참내.
 
질을 바야재  질을... 양이 아니고 말이여.
 
성령께서 얼마나 자주,   오래,  그리고 찐한 마음으로
 
이 클럽에 머무시는지를....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님의 사랑으로 충만해 지는지를.....
 
좋다 이거여  해보자 이거지 응응.
 
우수 클럽 보다  훨씬~ 좋은
 
최고 클럽을 맹글어 줄탱께
 
흥흥!!!
굿뉴스2008. 9. 29. 오전 9:13:15

멜번의 남대문이 되봅시다. 시끌시끌~ 북적...북적...

 
이 방이
 
 
굿뉴스 우수클럽에서 미끄러졌시우.
 
진짜 이유가 다른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당은~ ☜ (노평협회장님 버젼^^) 
 
 
열심히 들어와서
 
 
열씸히 글 쓰고
 
  
열쓈히 댓글 달아봅시다.
 
 
정스텔라의
성공적인 수술과
힘찬 회복을 기원하며~!!~!!!
 
 
 
멜번에서2008. 9. 20. 오후 9:40:19

고마워요

아래 글 써주신 김상원님 정말 고마워요.
까페에서 이런 글들 보며 느끼는 건데요.
제가 얼마나 충실하지 못한 신자인지요.
홍은동.....복잡한 고가도로가 생각이 나네요.
많은 사람과
산가득 들어서 있던 집들과
도로에 가득했던 자동차도 떠오릅니다.
성당에서 많은 활동ㅎㅏ시는 모습 훌륭하고 멋져보여요.
봉사와 여러 활동 그리고 이런 격려의 글도 주시는
분 보며 많은걸 느낍니다.
저도 더 봉사하고 넉넉한 마음가지고
진짜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요.....
김상원2008. 9. 19. 오후 11:30:41

보편되고, 공번되고, 하나인 카톨릭 사랑합니다.

찬미예수님! 안녕하십니까?
홍은동 성당의 김상원 안셀모입니다.
"홍은동3구역" 클럽지기이기도 하지요.
우연히 멜번한인성당이라는 클럽을 서핑하다,
"거양성체차별주의"라는 글을 읽고 피싯 웃음과 함께 감상했습니다.
사실 저희 공동체 속에서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판에 밖힌 습관, 그릇된 편견, 근거없는 두려움"을 
죄를 짓는 3요소로 정의하셨지요.
새삼스럽게 공동체의 일치를 위하여 각자 소임을 다하여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좋고 아름다운 멜버른이라고 하니,
저희가 있는 홍은동 공동체가 왠지 초라해 보이는듯 합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비록 누추한 곳이기는 하나,
주님 오시면 따스하게 맞이할 곳은 된답니다.
 
홍제동 본당에서 분가한지 4년이 되어
샌드위치 판넬 성당을 정리하고 새성전을 짓기 위하여
2008. 08. 24일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님을 모시고
기공식 미사를 바치고, 1년을 목표로 새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3구역 봉사자이기도 하면서, 건축TF팀원이기도 하지요.
사실 성전 짓기 시작 전에는 성가대 활동도 했답니다.
하나인 교회 안에서 저희 공동체의 소망인 성전이
무사히 잘 완성되어질 수 있기를 아름다운 성가로써 기도 부탁합니다.
저희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성가는 2배의 기도"라고...
머나먼 이역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한 믿음, 한 형제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 귀하의 클럽에 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
멜버른 한인 성당의 공동체에 축복과 함께 평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주님 보시기에 참 좋은 공동체 되시길 바랍니다.
김 상원 안셀모 배상.ㄲㅃ
 
찬미의삶2008. 9. 19. 오전 8:31:11

성체차별주의

 
25년을 넘게 가톨릭신자로 살면서 교회 안에 성체차별주의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4개월 전인 지난 5월 시드니의 한 레스또랑에서였습니다.
시드니의 한인자매님 십여명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한 자매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모신부님은 영성체 때에 거양 축성했던 성체는 아껴두었다가 자기가 이뻐하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말을 하는 자매님이 너무 이상하게 여겨져 바로 말대답을 했지요.
“자매님, 그건 말도 안 되요, 미사 때 거양된 성체든 감실 안에 보관되었던 성체든 모두 예수님의 몸이신데요…”
그런데 그 자매님의 말씀에 몇몇 분들이 힘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이에요, 저 역시 그런 일을 경험했으니까요. 너무 표시나요.”
그 말을 했던 자매님은 사제의 그 행위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를 내보이는 듯 아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성체 차별에 대한 말은 도대체가 금시초문인지라 저는 신자들이 거양한 성체를 선호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꽤 계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속으로 믿지 않았으며 단지,
“그런 생각 자체가 죄가 아닐까요?” 라는 말을 했고 그 자리에 계신 모든 자매님들은 동감을 표했으며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후로 제가 한번씩 홀리패밀리 미사 중에 성체분배자로 봉사할 때 그날의 대화가 제 머리를 문득문득 지나가고,
그럴 때면 제 손에 들려있는 성작 속 성체 중에 거양했던 성체가 왠지 특별나 보이는 분별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지요. 생각조차도 싫어서 애써 떨쳐버리며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제는 바로 제 눈앞에서 성체차별주의의 현장을 목격하였네요.
영성체를 기다리는 중 제 차례가 되어 사제 앞에 섰는데, 제 앞을 가로막으며 한 남자가 성체를 받으려고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순간적으로 흠칫 하다가 제게 주려던 성체를 그 남자의 입으로 옮기려 했지요.
그 순간, 남자는 신부님이 주시려는 성체를 받지 않고 성작안의 거양되었던 성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부님, 이것(?- 성체를 “것”이라해서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만 달리 해석이 안되네요.)을 주십시오.” 하는 겁니다.
사제는 더 당황하여, “모두가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십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하셨고,
남자는 똑같은 동작으로 특정한 성체를 가리키며 그것을 주십사고 했습니다.
사제와 그 남자와의 잔잔한 실랑이가 계속 되는 가운데 저는 바로 옆에서 참으로 쑥스럽더군요,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영하겠습니까? 영하지 않겠습니까?"
그 남자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신부님, 그렇게 큰소리를 내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사제가 성체를 들고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
그제야 그는 성체를 모시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떠나며 남긴 한마디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신부님,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사제는 제게 성체를 건네시며 잠깐 눈을 마주쳤고 너무 황당한 시선을 주고 받았습니다.
 
믿음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릇된 믿음으로 오히려 죄를 쌓는 일은 없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던,
바람이 무척 심했던 어제 하루였습니다.
 
 
정신아2008. 9. 18. 오후 7:29:42

글라라씨

+ 글라라씨 반갑습니다.
 
제가 잠시 다른 분과 혼동했네요.
새로 성가대에 들어오신 분인데,
 
마음이 따뜻한 이들이 모여있는,
살아가며 느끼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느낌이 확 옵니다.
많은 성가대 활동 그 경험 저희에게 나누어 주시길..
 
이종애2008. 9. 17. 오후 9:26:55

방갑습니다.

방갑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의 따스한 보금자리에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노부부가 70평생을 함께 살다보면

눈길만 보아도, 손만 잡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듯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감정과 정서를 알 수 있지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은~~ 초면이지만

모든이들의 맘을 알 것 같은 ~~~그런 따스한 맘들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우짰든 !...... 방가~~반가~~방갑습네다.

매일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하모니 속의 삶이 길 바라며,

이만 총총 ...............

글라라

나홀로2008. 9. 17. 오전 8:32:11

9월 반모임을 하다. - 주제 [용서]

 
대문호 괴테에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충실하게 일해 왔던 한 하인이 재산을 횡령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어떻게든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으나 배신감이 너무나 컸던 나머지 괴테는
도저히 그의 잘못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 그는 하인을 해고하고 좇아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오랜 기간 같이 살아온 하인을 쫓아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온갖 방법을 다 써 봤으나 언제나 그의 머리엔 그 하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하다하다 안되겠다고 느낀 괴테는 커다랗게 글귀를 써서 그의 책상 앞에 붙여놓고
독하게 마음먹기로 다짐하였다. “하인 OOOO를 잊고 용서하자.”

하지만 매일 그의 이름을 쳐다보는데 어떻게 그를 잊을 수 있겠는가?
괴테는 그 하인을 잊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는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 쫓겨난 하인은 비참한 마음 때문에 괴로워했겠지만,
괴테는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고통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용서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준다는 것. 노여움이나 분노를 버리는 것, 등이다.
보다 실제적 의미로는 잘못 때문에 깨어진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킴을 뜻한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노여움이나 분노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노여움과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는 것이다.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말 속에는, 
대상을 향해 비수를 품고서 복수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 녹아 있고,
설령, 직접적인 복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이 정죄한 이들이 다른 루트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마땅한 댓가를 치루기를 바라는 악의(=저주)를 품고 살아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 내 안에 용서할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는가.
 
 
 
 
도시의은수자2008. 9. 16. 오후 7:06:39

믿음과 수인

 
 
요셉신부님의 죽음을 두고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요셉신부님의 죽음을 두고,
“당신(들)의 책임이야!”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대상을 가진 사람이 부럽습니다.
요셉신부님의 죽음을 두고
하느님을 원망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부럽습니다.
 
광활하고 황량한 광야 한 가운데 땅집을 짓고 
밤과 낮으로 단식하며 묵상하며
그 척박한 모래땅에서 생을 마감한 사막의 은수자들
사막의 교부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믿음은 가끔씩 사람을 탈진케 합니다.
그 탈진은 매일 꿈 꾸는 황홀입니다.
 
하느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하느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하느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당신의 영원한 수인으로 만드셨으니 영광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길이 찬미 받으소서!
 
 
 
 
그림자2008. 9. 11. 오후 12:37:28

그림자 같이 사는 삶

+  마구마구  찬미
 
누구나 어릴 적엔 (아님 어른이 된 지금도)  조금은 황당한 꿈들을 꿉니다.
 
슈퍼맨이 되어 날아 다니고,  투명 인간이 되어 악당들을 혼내 주고 뭐 등등
 
어느 날 교인이 되어
 
겸손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기 시작하면서 
 
나름 자기 만족의 방법으로 ''숨어 하는 봉사'' 를 얘기 합니다.
 
엊그제 누군가 서울의 한 큰 본당에서 어느 현직 국회 의원이 선거 때 만이 아닌
 
매 주 묵묵히 남들이 잘 안하려 하는 지하실 주차 정리 (매연이 심해 매우 힘듬) 등을 하며 
 
그림자 같은 봉사, 희생을 하다 보니 말 한마디 안하고도 많은 이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아름다운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한땐 우리 본당에서도 화장실 청소를 서로 하시겠다고 몇 교우가 동시에 얘기하며 
 
가슴 뿌듯하고 따뜻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
 
단체에 속해 할 수 없이 드러나게 봉사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게도
 
보이지 않느 곳에서 지금도 많은 교우가 그림자처럼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기에
 
우리가 이리 편하게 노래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삶을 항상 태양을 보고 나아가며 그림자를 보지 말아라 얘기들 합니다.
 
하지만 때론  자기 그림자가 어떤 모습인지 돌아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난 분명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앞을 보다가 우연히라도 뒤를 보니 내 그림자가
 
바로 그 나의 그림자가   일그러진 모습이라면.....
 
그 그림자라는 것을 우리에게 선물하신 주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리며
 
때론 그림자처럼 타인을 위해 계산 없이 봉사하고 희생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않을까요.
 
최소한 하늘에 계신 그 분만은 모든 걸 다 알아 주실테니 말입니다.  
사이비 신자2008. 9. 6. 오후 8:47:24

....만 한다면

+찬미
 
내 삶의 어느 순간  높으신 분의 따스한 초대로
익숙치 않은 성당안 그 것도 많은 이가 미산지 뭔지
하고 있는 동안  통한의, 터질 듯한 슬픔의, 이유를 알 수 없던
뜨거운 그 무엇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오열을 그것도
주위에 지장을 줄 만큼의 소리로 한참을 울었드랬습니다.
아마 내 나이  19쯤 이었나봅니다.....
 
한땐 신부가 돼 보고도 싶었고
이젠 또 그 신부라는 분들 때문에 이렇게 아파도 해보며
그동안 수많은 날들을 천주교 신자라는 탈을 쓴 채
때론 으쓱대기도 때론 쥐구멍을 찾기도 하면서 자주 자주
묻곤 합니다. 그 분께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 분께서 나에게 바라시는게 도대체 무엇일까
또 난 그 분께 해 드릴 만한 어떤 능력 나부랭이가 있는 걸까....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건 순서가 없다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가끔은 난 정말 하늘나라에 무얼 얼마나 쌓아 가고 있는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닐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릅니다. 단순히 적선을 하고( 눈꼽보다도 작은),
성당을 다니며 나름 뭔가를 한다며 봉사라 스스로 칭하고( 누구를 위한 건지도
잘 모르면서 ).....
 
골프를 아주 좋아하시는 어느 분이 그러시더군요.
아무리 삶이 바빠도 시간이 없어 골프를 못 한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하려고 마음만 먹어봐  새벽인들 못 치나  하십니다.
 
아하!
그래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인들....
하물며 그 일이 하늘에 있는 내 통장에 입금 되는 일임에야 마다할 이유가...
그래도 우린 자주   '' 인간인지라 ''   또는   '' 사느라 '' ,   '' 바빠서 '' 등등의 이유로
상식선 안에서만 선행을 하고 봉사를 하고 희생을 하지요.
 
요즈음 부쩍 그 통장의 바닥난 잔고를 보며
성경 어디쯤엔가  '' ....만 한다면 '' 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닿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에만 감사한다면...
차고 넘쳐 남아 도는 것으로만 사랑한다면...
 
어차피 나의 또 우리의  시공을 초월한  이 모든 것이 다 그 분께서 공짜로
주신 그 분 것이거늘 그 분에게 아부(?) 하는 일  이외의 그 어떤 일이 더 
중요할 수 있으리....
 
그  분께서 나에게서 바라시는 것,
이 먼 나라에까지 와 살며 이루라 하시는 그 분의 뜻,
그래서 허락하신 달란트들이 결코 우리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우린 아름다운 가락으로 주님을 위해 쓰여져여 하지 않나 감히 여쭈어 봅니다.
 
여러분께 드린 제 작은 넋두리에 불편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지극히 가식적이며 용기없는 사이비 신자일 뿐임을 감히 고백하며
이 모든 것이  우리 정말 눈물나게 사랑하고 싶은 높으신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 지시기를 온 마음으로 빌어 봅니다.
 
 
 
 
 
 
사랑과 영혼2008. 9. 5. 오후 4:28:18

얼마나 큰은총을 받아야 나는 참으로 변화 할 수 있을지...

 
 
일전에 홀리패밀리성당 존신부님께서 다음의 일화로 주일 미사강론을 시작하셨습니다.
두 명의 자녀를 둔 어느 다복한 가정에서 네 식구가 주일에 성당에서 미사 참례를 한 후
귀가하던 길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남편이 차고로 차를 천천히 운전하던 한 순간에
누군가가 쏜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아이 둘과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몇 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녁 기도 중에 한 아이가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죽인 그 사람도 세례를 받고 뉘우치면 천국에 가는 거야?"
"그럼! 그렇고 말고! 그 사람도 세례를 받고 죄를 뉘우치면 천국으로 가."
"엄마, 나 천국 안 갈래! 아빠를 죽인 그 사람 보기 싫어!" 
 
부인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세례를 받고 죄를 뉘우치면 새사람이 된단다. 그는 과거의 살인자가 아닌,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주님의 사람으로 하느님은 그를 변화시켜 주신단다. 그러니 넌 전혀 걱정할 것 없어.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이 강론을 한 주일의 복음말씀은, 예수님과 교회를 모질게 박해하던 사울이 바오로로 변화하는 내용을
담은 복음이었습니다.
 
나는 과연 주님의 사람인가?
주님의 사람인 척 가죽만 번지르하게 내세우며 속은 아직 구린내나는 아집과 교만과 이기심과 
승부욕에 불타는 자존심 덩어리가 아닐까...?
 
 
갑자기 의문이 생겨서 써 보았습니다.
 
 
 
 
정혜원2008. 9. 4. 오후 1:37:51

요셉 신부님 사제관을 개방합니다!

항상 우리들과 우리 공동체와 함께 하시는 요셉 신부님의 사제관입니다.

http://club.catholic.or.kr/kcm

매일 방문하시고 마음과 기도의 꽃다발 바쳐 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님께서 우리들 곁을 떠나 하느님 곁으로 가시기 바로 전에는

그렇게도 편지를 기다리셨고 많은 분들과 얘기하고 싶어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신부님과 못다한 마음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쓴이미상2008. 9. 3. 오후 2:12:50

세상은 보는 대로 있다.

 

신발 사러 가는 날 길에 보이는 건 모두 신발 뿐이다.  길가는 모든 사람들의 신발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 전체는 안중에도 없다. 미장원을 다녀오면 모든 사람의 머리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안보인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근처 도장방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나는 갑자기 멍해진다.  어디서 본듯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바로 회사 앞에 있는 그 도장방을 아침 저녁 지나다니면서도  도대체 기억속에는 남아있질 않는 것이다. 마치 그 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다. 세상은 내마음 끌리는 대로 있기 때문이다. 조화도 그게 가짜인줄 알 때까진 진짜꽃이다. 빌려온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리고는 그걸 진짜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한 모파상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이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내가 보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있다고 또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있는 게 다 보인다면 대뇌중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져 착란에 빠지게 될꺼다. 그러기에 대뇌는 많은 자극 중에 몇가지 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선택의 기준은 그때 그때의 대뇌의 튠(TUNE)에 따라 달라진다. 정말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고로 세상은 공평하다.

신나게 기분 좋은 아침엔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더 넓고 명랑해보인다. 그래서 휘파람이라도 절로 나오는 튠이 될 땐 슬픈 것들은 아에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은 우리가 보는것만 보인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저녁 문득 바라다 본 수평선에 저녁달이 뜨는 순간, 아 ∼ 그때서야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우린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느끼질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별이, 저녁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리도 찬란히 열려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대신 우린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 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인다. 비었다고 울든지, 찼다고 웃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요 책임이다. 다만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대로 있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겠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다.

비바람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장구름 꿰뚫어 볼 수 있는 여유의 눈이 있다면, 그 위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이다. 

세상은 보는 대로 있다.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