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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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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한국에 있을 적에
어느 방송을 통해 들은 일설로 기억됩니다만
염소들은 아무리 더운 한여름일지라도
둘씩, 셋씩, 혹은 여럿이서 서로 몸을 엉켜붙여 지내고,
추운 겨울에는 저만치 뚝뚝 서로 떨어져
홀로 지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에 내 몸 더운 것은 견딜지라도
남이 시원한 것은 눈 뜨고 못 보기 때문이며,
겨울에는 내 몸이 꽁꽁 얼어 죽을 지경이 되어도,
내 몸의 온기로 인해 남이 따뜻해지는 것은
싫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덜덜 떨면서 서로
떨어져 지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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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 글을 올린 뜻에서 빗나가는 멘트인데요.
동물들의 이런 심리나 소행을 알아내는 인간들이 참 대단해요.
그렇지만, 만에 하나, 염소의 뜻이 사실 그게 아니라면
염소는 얼마나 억울할까요, 말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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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라?? 미끄러 졌다고라고라....
멜번의 남대문이 되봅시다. 시끌시끌~ 북적...북적...
고마워요
보편되고, 공번되고, 하나인 카톨릭 사랑합니다.
성체차별주의
글라라씨
방갑습니다.
방갑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의 따스한 보금자리에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노부부가 70평생을 함께 살다보면
눈길만 보아도, 손만 잡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듯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감정과 정서를 알 수 있지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은~~ 초면이지만
모든이들의 맘을 알 것 같은 ~~~그런 따스한 맘들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우짰든 !...... 방가~~반가~~방갑습네다.
매일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아름다운 하모니 속의 삶이 길 바라며,
이만 총총 ...............
글라라
9월 반모임을 하다. - 주제 [용서]
하지만 매일 그의 이름을 쳐다보는데 어떻게 그를 잊을 수 있겠는가?
‘용서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노여움이나 분노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과 수인
그림자 같이 사는 삶
....만 한다면
얼마나 큰은총을 받아야 나는 참으로 변화 할 수 있을지...
요셉 신부님 사제관을 개방합니다!
항상 우리들과 우리 공동체와 함께 하시는 요셉 신부님의 사제관입니다.
http://club.catholic.or.kr/kcm
매일 방문하시고 마음과 기도의 꽃다발 바쳐 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님께서 우리들 곁을 떠나 하느님 곁으로 가시기 바로 전에는
그렇게도 편지를 기다리셨고 많은 분들과 얘기하고 싶어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신부님과 못다한 마음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보는 대로 있다.
신발 사러 가는 날 길에 보이는 건 모두 신발 뿐이다. 길가는 모든 사람들의 신발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 전체는 안중에도 없다. 미장원을 다녀오면 모든 사람의 머리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안보인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근처 도장방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나는 갑자기 멍해진다. 어디서 본듯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바로 회사 앞에 있는 그 도장방을 아침 저녁 지나다니면서도 도대체 기억속에는 남아있질 않는 것이다. 마치 그 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다. 세상은 내마음 끌리는 대로 있기 때문이다. 조화도 그게 가짜인줄 알 때까진 진짜꽃이다. 빌려온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리고는 그걸 진짜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한 모파상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이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내가 보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있다고 또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있는 게 다 보인다면 대뇌중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져 착란에 빠지게 될꺼다. 그러기에 대뇌는 많은 자극 중에 몇가지 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선택의 기준은 그때 그때의 대뇌의 튠(TUNE)에 따라 달라진다. 정말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고로 세상은 공평하다.
신나게 기분 좋은 아침엔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더 넓고 명랑해보인다. 그래서 휘파람이라도 절로 나오는 튠이 될 땐 슬픈 것들은 아에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은 우리가 보는것만 보인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저녁 문득 바라다 본 수평선에 저녁달이 뜨는 순간, 아 ∼ 그때서야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우린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느끼질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별이, 저녁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리도 찬란히 열려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대신 우린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 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인다. 비었다고 울든지, 찼다고 웃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요 책임이다. 다만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대로 있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겠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다.
비바람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장구름 꿰뚫어 볼 수 있는 여유의 눈이 있다면, 그 위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이다.
세상은 보는 대로 있다.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