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11. 9. 16. 오전 7:14:37

글자
2011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1티모 6,2ㄹ-12

사랑하는 그대여, 2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3 누구든지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신심에 부합되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4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쏟습니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기와 분쟁과 중상과 못된 의심과 5 끊임없는 알력이 나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 갑니다. 그들은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6 물론 자족할 줄 알면 신심은 큰 이득입니다.
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9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10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 루카 8,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미국의 어느 신학대학에서 교수님께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 주에 ‘누가 착한 사마리아인인가?’에 대한 임상실험을 한다고 공지했답니다. 수업 당일, 이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수업시간이 한 시간 늦추어졌으니 천천히 오시오.’라는 문자를 보냈고, 또 다른 한 그룹에게는 ‘수업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졌으니 빨리 강의실로 오시오.’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자를 본 학생들이 오는 길목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세워놓았지요. 길을 헤매면서 어려움 속에 있는 할머니, 청소가 힘들어 도움을 요청하는 청소부, 벤치에서 배가 아프다고 괴로워하는 젊은이... 등등의 상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실험인 것이지요.

실험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고 직접 도움을 준 학생은 강의 시간이 한 시간이 늦어졌다는 문자를 받은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여유가 많다보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강의실로 향할 수 있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었던 반면, 강의시간이 앞당겨졌다는 문자를 받은 학생들은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인가? 바로 바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정말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해야 할 것을 얼마나 많이 뒤로 미룹니까? 바빠서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나중에 사랑하고, 나중에 봉사하고, 나중에 나누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바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바쁘고 여유가 없습니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가야지 중요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며, 봉사와 희생을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여성들은 지금의 여성과 비교해서 많은 차별을 안고 살았지요. 따라서 행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고,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을 따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런 제약들을 내세워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고 이야기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여인들이 있었음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 이유를 찾기보다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면서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있어 많은 제약을 먼저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지극히 합리적이며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 있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주위를 둘러보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인생은 모든 것이 곤란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성실한 마음으로 물리칠 수 없는 곤란은 세상에 없다(소크라테스).



만족하는 마음

벨라뎃다 성녀 동상. 성녀는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요?

어떤 사람이 끊임없이 하느님께 청원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가시게 끊임없이 부탁하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로 작정하셨지요. 그래서 그에게 나타나 “네가 원하는 소원 딱 3가지만 들어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도 기뻐서 곧바로 첫 번째 소원을 말했습니다.

“하느님, 지금보다 더 좋은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제 아내를 없애주십시오.”

곧바로 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디를 가도 자기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사라진 아내. 이제 정말로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의 좋은 성품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바가지를 긁었지만, 그 소리가 이제 얼마나 그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제 아내를 다시 보내주십시오.”라고 두 번째 소원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소원은 딱 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이제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정말로 중요한 한 가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생명, 건강, 재산, 권력, 사랑.... 그런데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 여쭈었지요.

“하느님, 정말로 죄송한데요. 제가 무엇을 청해야 할지 조언을 좀 해주세요.”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명답을 내려주셨답니다.

“살다가 무슨 일이 닥치든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청하려무나.”

만족할 수 있는 마음. 우리가 하느님께 바쳐야 할 진정한 청원기도가 아닐까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 신 앙 ┐묵상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