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25 (녹) 연중 제 25주일 토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43ㄴ-45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9월 25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바로 앞에 있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악령을 쫓아내시는 내용이고, 사람들이 모두 놀라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9월 25일 복음 말씀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놀라워하는 사람들 속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시니 못 알아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인 사람들은 일차적으로는 바리사이들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사두가이파와 연합하고 헤로데 당파와도 연합해서
예수님에게 누명을 씌우고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서 사형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군중심리가 그걸 거들었습니다.
원래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 많은 군중은 어떻게 된 것일까?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수많은 병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라고 경탄하고 찬양했던 사람들은?
바리사이들이 무서워서 다 숨어버렸을까?
아니면 바리사이들의 음모에 가담했을까?
당시의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이 처형될 때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고, 십자가 밑에는 여자 몇 명만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도 십자가 밑에 있었던 것 같고...)
겉으로 드러난 배반자는 유다 한 사람뿐이지만,
사실 예수님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배반당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했던 그 군중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그 군중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인지, 같은 사람들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섞여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떻든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는 혼자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더욱 비극적입니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라는 구절의 사람들...
그 말은 그냥 “모든 사람들”로 해석될 수도 있는 말입니다.
물론 실제로 예수님을 죽인 것은 바리사이들 같은 적대자들이지만,
침묵, 방관, 무관심, 외면... 그런 사람들이 다 공범입니다.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예수님이 좋다고 따라다니더니...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더니, 왜 그랬을까?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바로 연상됩니다.
먹고살기가 편해지면 금방 우상숭배에 빠지고,
그러다가 살기가 힘들어지면 살려달라고 야훼 하느님께 애원하고,
우상숭배에 빠졌다가 하느님께 돌아왔다가 다시 우상숭배에 빠졌다가...
창세기부터 마카베오 하권까지 그런 역사가 수도 없이 반복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백성을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고 꾸짖고 혼내고,
별 방법을 다 쓰셨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딴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존재...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은
편무(片務)계약이 아니라 쌍무(雙務)계약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방적으로 한쪽에게만 의무를 강요하는 계약이 아니라
쌍방이 공평하게 의무를 지는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은 인간 쪽의 의무만 적어놓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 쪽의 의무는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쪽의 의무는 무슨 조항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라 포괄적입니다.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탈출 20,6) 라는 식으로...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쌍무계약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들의 의무는 잊어버리거나 대충 하고
하느님에게만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께 뭔가를 달라고 하는 기도는
사실상 하느님에게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의무는 하기 싫고, 예수님께 바라는 것은 많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이 바라는 것과는 다른 말씀을 자꾸 하시니까,
실망해서 그냥 죽여 버린 것....... 이 아닐까?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이천 년 전의 유대인들보다 나은 점이 있긴 있습니까?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