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2010. 9. 18. 오후 2:58:12

글자

제1독서 1코린 15,35-37.42-49

형제 여러분, 35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오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36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37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
42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4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47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48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복음 루카 8,4-15

그때에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공지사항 하나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내일까지 지방의 어느 성당에서 특강을 합니다. 따라서 내일 새벽에는 묵상글도 또 방송도 할 수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착오없으셨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의 새벽묵상글 시작합니다.

종종 휴대전화를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외출을 나가서 잊어버린 것은 아니고, 집 안 어디에 두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아서 한참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워낙 지저분하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서 그리고 방에 널려 있는 각종 물건들 사이에서 찾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찾을 때에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화를 하면 되니까요. 전화벨 소리를 듣고 휴대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습니다. 외출을 나가야 하는데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강의 준비를 하느라 책상 위에는 책들이 가득했고, 그래서 이 책들 사이에 휴대전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했지요. 그러나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낮에 회의가 있어서 소리가 나지 않는 무음으로 변경했음이 기억났습니다.

결국 온 집안을 다 뒤진 끝에 소파 틈 사이에서 어렵게 발견했습니다(소파에 앉다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빠진 듯합니다). 아무튼 이 일을 통해 소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렇게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함을 묵상해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내는 소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께서 들을 수 있는 소리, 즉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를 통해 내 존재를 주님께 알릴 수 있으며, 주님의 선택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의 밭 역시 잘 가꿀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과 주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좋은 땅이 될 때 주님의 좋은 씨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시지요. 그러므로 좋은 땅이 되도록 내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주님께 끊임없이 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나의 필요에 의해서만 기도를 하려 하기에, 내 마음의 밭을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형편없는 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 소리가 나면 귀를 막고 들으려고 하지 않지요. 우리가 이렇다면 주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가 주님의 모상대로 그리고 주님의 숨을 받아 창조되었기에,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주님께서도 싫어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주님께서 원하는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그때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 영적인 몸이 되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라면, 당신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토마스 머튼)



받아들이는 마음(‘좋은생각’ 중에서)

일본 고전 연극인 가부키의 대부 모리타 간야가 나그네 역을 맡아 공연할 때였다. 분장을 마치고 무대에 오르려는 찰나 한 문하생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스승님, 잠시만요. 짚신 끈이 풀렸습니다.”

간야는 문하생의 지적에 고맙다고 대답한 뒤 무릎을 굽혀 짚신 끈을 꽉 맸다. 그러고는 문하생이 없는 곳에서 다시 느슨하게 풀었다. 사실 그는 오랜 여정에 지친 나그네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끈을 느슨하게 맸던 것이다.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기자가 공연이 끝나고 간야에게 물었다.

“왜 말하지 않으셨나요? 그 문하생은 공연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던데요. 그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 선생님의 의무 아닌가요?”

그러자 간야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른 사람의 친절한 관심과 호의는 받아들여야지요. 그러고 나서 가르쳐도 충분합니다. 연기 기술을 가르칠 기회는 많으니까요.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호의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댓글 1

  • 2010년 9월 18일 오후 5:08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진중한 말씀 듣고 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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