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30)

2004. 12. 30. 오후 4: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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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30일 성탄 팔일 축제 내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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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1서 2,12-17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여러분의 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된 사람들이여,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이 이미 악마를 이겼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어린 자녀들이여, 여러분이 이미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된 사람들이여,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은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니고 살며 악마를 이겨 냈기 때문에 나는 이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복음 루가 2,36-40
그때에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 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 왔다.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못된 사람도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우리들은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 사람을 만날 확률도 적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지요. 그런데 좋은 사람이야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나면 되겠지만, 나쁘고 못된 사람은 어떤 식으로 만나야 할까요? “나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도 않아!”라면서 거부하면 되는 것인가요?

정말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못된 친구를 물리치는 방법” 정말로 눈에 확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 방법을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무상으로 공개합니다.

첫째, 자애롭고 공손하며 친절할 것.

둘째, 참된 말만 입에 담을 것.

셋째,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알 것.

넷째, 항상 배우려고 노력할 것.

다섯째, 노여움을 참을 것.

여섯째, 스스로 만족함을 알 것.

일곱째, 남을 사랑할 것.

여덟째, 웃어른을 공경할 것.

맞습니다. 못된 친구를 물리치는 방법은 그 못된 친구를 바꾸고 그 친구를 보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내 자신의 변화를 일으켰을 때 비로소 못된 친구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바꾸는 일이 단숨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하루아침에 ‘나는 이렇게 바꿀 꺼야!’ 라고 마음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이루어질까요? 아니지요. 어쩌면 평생에 걸쳐서 노력해야 할 우리들의 또 하나의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해서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난 후, 여든 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겼다고 합니다. 당시 보통의 여인들이 15~16세 때에 결혼했던 것을 생각할 때, 한 22~23세에 과부가 되어 60년 이상을 성전에서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겼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어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느님께 바쳤나요? 그렇게 많은 시간을 바쳤기에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너무나 불행해 보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느님의 외아드님을 직접 만나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지요.

60년 이상을 주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였던 안나 예언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을 얻으려는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서두름으로 인해 내 곁에 오신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못된 친구는 바로 내 마음에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마음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겸손한 사람은 참 아름답다.(허영자, '더 아픈사랑을 위하여' 중에서)

겸손이란 참으로 자신 있는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인격이다.

자신과 자부심이 없는 사람은
열등의식이나 비굴감은 있을지언정
겸손한 미덕을 갖추기 어렵다.

겸손은 자기를 투시할 줄 아는
맑은 자의식을 가진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다.

자기의 한계를 알고 한정된 자신의 운명과
우주의 영원 무변성과를 대비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만 겸손할 수가 있다.

또한 겸손은 생명 있는 모든 것,
혹은 무생물의 모든 것까지 애련히 여기는
마음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함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뜻, 옆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모두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겸허함을 가진 이의 삶은 경건하다.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함부로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함부로 속단하지 않으며,
운명을 수긍하고
인내하고 사랑함으로써 극복하는 이이다.

그런 사려 깊은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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