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23)

2004. 12. 23. 오전 9: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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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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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말라기 3,1-4.23-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찻길을 닦으리라. 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 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 보아라. 이제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그가 오는 날, 누가 당해 내랴? 그가 나타나는 날, 누가 버텨 내랴?
그는 대장간의 불길 같고, 빨래터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 내듯, 레위 후손을 깨끗하게 만들리라. 그리하면 레위 후손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순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되리라.
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치는 제물이 옛날 그 한 처음처럼 나에게 기쁨이 되리라.
주님이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엘리야가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하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지 아니하리라."


복음 루가 1,57-66
엘리사벳은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께서 엘리사벳에게 놀라운 자비를 베푸셨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과 함께 기뻐하였다.
아이가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던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가리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가 나서서 "안 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였다.
사람들은 "당신 집안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하며 아기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가리야는 작은 서판을 달라 하여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바로 그 순간에 즈가리야는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모든 이웃 사람들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일은 유다 산골에 두루 퍼져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손길이 그 아기를 보살피고 계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70세쯤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앰뷸런스가 와서 할머니는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갔고, 뒤이어 달려온 경찰들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고는 자살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할머니의 아파트로 올라갔습니다.

실내는 온갖 고급스러운 가구와 사치스런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었지만 왠지 모를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의 살림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닌 것 같고, 혹시 건강의 이유나 불치병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주치의는 할머니가 나이에 걸맞지 않은 건강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골똘하게 고민하던 경찰관은 책상을 뒤져 할머니의 작은 수첩 하나라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수첩을 펼쳐보던 경찰관의 얼굴은 놀라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 하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의 그 수첩에는 365일 동안 똑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도 나에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바로 할머니를 자살로 몰고 갔던 것은 바로 외로움이었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아 있다는 외로움, 그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외로움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끔 만들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혼자 있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치 혼자 살아야 더 잘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양보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보다는 혼자만 잘되면 모든 것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았으면 이제부터 그 사람과는 끝이라면서 다시는 안보겠다는 결심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과연 혼자 있는 것이 좋은가?’ 그리고 ‘주님께서 그 모습을 원하시는가?’를…….

성서의 인물 중에서 하느님의 말을 믿지 않아서 벙어리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가리야입니다. 아기를 갖는다는 말에 늙은 우리가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는 불신을 가졌기에 벙어리가 되었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즈가리야가 자신의 뜻만을 고집했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을 통해서 즈가리야는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제 자신의 뜻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함께 하겠다는 다짐(세례자 이름의 명명식)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맙시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혼자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면서 스스로 불행의 길로 나아가지 맙시다. 세상에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의 사람들과도 함께,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와도 함께 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입니다.


혹시 다신 안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연말이라 좋은 기회입니다. 얼른 화해하세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생각들

힘들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외로워 울고 싶을때 소리쳐 부를 친구가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별의 따스함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슬플 때 거울 보며 웃을 수 있는 미소가 내게 있기에 난 행복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목소리가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비록 우울하지만 나보다 더 슬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발이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가진 것 보잘 것 없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편지 하나 보낼 수 있는 힘이 있어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가슴 활짝 펴내 작은 가슴에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을 감싸 안을 수 있어 나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

만족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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