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보는 사람(12/29)

2004. 12. 28. 오후 11: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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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오늘의 말씀

 

  성탄 팔일축제 내 제5일 (2004-12-29)
독서 : 1요한 2,3-11 복음 : 루가 2,22-35

구원을 보는 사람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예수의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주셨던 것이다.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으로 데리고 왔다.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였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루가 2,22-­35)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나는 그동안 이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을 할아버지로 알았다. 언제부터 이런 착각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착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종은 이제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라는 고백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니 나이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이, 내 선입견이 작용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나, 내 생각으로 보는 것에 익숙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실로 확신까지 하는 나는 아무리 봐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새로운 시므온을 만날 수 있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성령이 머물러’ 계셨던 사람, 성령께서 친히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주셨던’ 사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 시므온을 만날 수 있었다. 아주 확실하게.
그는 존재의 이유가 바로 ‘구원을 보는 것’이었다. 구원을 보는 것, 본다는 것. 본다는 것은 내 생각과 내 경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보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이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후임 목사(새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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