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12/10)

2004. 12. 10. 오전 7: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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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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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 48,17-19
너를 구하시는 주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인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네가 잘 되도록 가르치는 너의 스승이요, 네가 걸어야 할 길로 인도하는 너의 길잡이다. 네가 만일 나의 명령을 마음에 두었더라면, 너의 평화는 강물처럼 넘쳐흐륵, 너의정의는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으리라. 너의 후예는 모래 벌판과 같고, 너의 소생들은 모래알만큼 많아졌으리라. 네 이름이 내 앞에서 꺼지지도, 없어지지도 아니하였으리라."


복음 마태오 11,16-19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갈라 앉아 서로 소리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라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요즘 저는 방에 들어가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따뜻하거든요.

사실 저는 그동안 난방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있는 강화에 이제야 도시가스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몇 달 따뜻하게 살겠다고 보일러를 새로 놓는 것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지요. 그래서 올 겨울은 춥더라도 난로 하나로 버텨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요, 어떤 사람들은 신부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더군요.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의미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서 말이지요.

아무튼 저는 이 몇 명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속죄의 의미로 그동안 춥게 살았던 것은 아니고, 도시가스 공사가 모두 마치면 가스보일러를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난로 없이 그동안 벌벌 떨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지요. 이번 겨울을 이런 환경에서 보낼 수 있을까? 정말로 저 난로 하나로 버틸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보일러를 새로 놓으라는 사람들의 권유에 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돈 아깝다는 이유로, 제가 아직 젊으니 버틸 수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년에 도시가스가 들어오면 하겠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며칠 전, 제가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쎄 가스보일러는 LPG용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LNG로 바꿀 때는 보일러에서 스위치와 노즐만 바꿔주면 된다고 하네요. 이런 것도 모르고 혼자서 어떻게 지내나 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하던 지요. 더군다나 저의 이런 고충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던 분들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던 저의 고집스러움에 대해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도 편해질 수 있는 것을 왜 그렇게 꽉 막힌 마음을 가져서 고생을 했을까요? 이런 모습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너무나도 자주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에 대해 갖게 되는 고정관념. 그 관념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을 때는 얼마나 많았나요? 한번 갖게 된 그 생각이 마치 그 사람의 전부인양 말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들. 그 모습들로 인해서 내가 얻게 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잃은 것들이 더 많을걸요?

제 동창 중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 신부가 있습니다. 그 신부는 전임 신부에게 새 부임지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았지요. 그런데 인수인계를 받던 중에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인수인계는 안 받아~”

함께 지낼 직원에 대해서 미리 이러쿵저러쿵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왜냐하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직원을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며, 또한 그 말을 들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게는 불행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많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 또한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 모두 자신들의 고정관념으로 구원으로 가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말고, 남에 대한 이야기도 듣지 맙시다.



진정한 친구란?

첫번째,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두번째, 고쳐야 할점은 충고해 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세번째, 서로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네번째, 서로 잘못이 있으면 덮어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다섯번째, 서로 미워하면서도 생각해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여섯번째, 서로 허물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여덟번째,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아홉번째, 다른 이와 그가 가까이 있으면 질투나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번째, 뒤돌아 흉보아도 예뻐보이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한번째, 더이상 가까이 할 수 없을때 답답함을 느끼는것이 친구입니다.

열두번째, 한팔로 안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세번째, 떨어져 있을때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다섯번째, 한밤중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여섯번째, 아픔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일곱번째, 기쁨을 두배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여덟번째, 이유없이 눈물을 머금게 되는 것이 친구입니다.

열아홉번째, 싸우면 둘다 마음이 아픈 것이 친구입니다.

스무번째, 때론 내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한번째,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두번째, 기쁜 소식을 먼저 알리고 싶은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세번째, 둘이서 아무말 없이 카페에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네번째, 마음이 쓸쓸할 때 같이 여행을 가고 싶은 친구가 친구입니다.

스물다섯번째,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여섯번째, 상대방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일곱번째, 서로를 위해 주고 의지하는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여덟번째, 믿음으로 쌓여 이뤄지는 것이 친구입니다.

스물아홉번째, 친구란, 친구로서, 친구답게, 친구처럼 대하는 친구가 친구입니다.

서른번째, 지금 말없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바로 나의 소중한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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