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묵상함 2005. 11. 2
아래 글은 지난 11월 2일 위령의 날 강론입니다.,
(용산 성당 내 성직자 묘역, 교구 사제단 합동 위령미사 강론)
7지구 중계동 성당 박성칠 미카엘 주임 신부님의 강론내용
오늘 우리는 위령 성월, 위령의 날을 맞이하여 함께 모였습니다.
교구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 후배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또 많은 교우 분들이 함께 모인 뜻 깊은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기쁜 이야기를 하면 좋으련만,
오늘 우리는 죽음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면 지나 온 시간들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린 듯 합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90,10).
제 나이 어느 새 50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병으로 죽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고 자연사 할 경우,
시편 말씀대로라면, 이제 20년 남짓 더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더 빨리 데려가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이에 곱하기 2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10 살 먹은 아이는 시속 20 킬로로 세상을 살면서 빨리 나이 먹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50 먹은 사람은 시속 100 킬로의 속도로
고속도로를 씽씽 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선배 신부님들 따라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것입니다.
세상에 와서 짧은 시간 살다가 문득 죽고 나면
기억해 주는 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돌아가신 선배 신부님들도
이제 우리 기억에 희미할 뿐입니다.
그분들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도 사라지면
그분들을 누가 더 이상 기억해 주겠습니까?
우리 역시 언젠가는 시간 밖으로 밀려날 것이고,
세상은 우리 없이도 잘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우리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은 인생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제 책상 위에 해골 바가지가 하나 있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도록 재촉하고 제 묵상을 도와주는 제 10년 지기 친구입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해골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 해골을 통해서 저는 두 가지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묵상인데 그런 대로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두 번째는 여자 보기를 해골처럼 하자는 것인데,
솔직히 이것은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해골을 보면서 저에게 이렇게 속삭이곤 합니다.
“그래, 죽으면 저렇게 되는 거다.
너무 욕심내지 말자.
너무 아등바등 하면서 살지 말자!”
우리들이 아무리 아등바등 욕심을 내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하나라도 더 끌어 모으려 안달을 쳐도
죽음 앞에서는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입니다.
지식과 재능도, 권력과 명예도, 돈도 재력도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안달하며 추구해 온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이것, 저것 끌어 모으면서 살아온 삶이
이제 끝장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나버리고 마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며
꼴사납게 붙들고, 욕하고 싸우며,
정신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들 중에는 욕심을 줄이고 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언제 한 번이라도 완전하게
우리의 욕심을 몽땅 내던져 버린 적이 있었던가요?
“아버지, 제 뜻이 아닌, 당신의 뜻을 이루십시오!”
사제서품 때 성서의 이 말씀을 택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 뜻대로 살아온 인생일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맡겨드리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쉬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우리 자신을 모두 맡겨드리는 일!
이것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드디어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이 위대한 신앙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신앙의 행위를 가능케 하는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죽음을 우리 신앙의 완성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며 운명하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다 내어 맡길 때 주님의 삶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 이루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겨내셨고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흙과 친해진다고 합니다.
흙과 날로 친해가다가 흙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사건,
그것이 우리의 죽음입니다.
신앙 안에서는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如來, 善逝).
흙과 친해지다가, 흙을 닮아가다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 흙과 하나 되듯이,
하느님과 친해지다가, 하느님을 닮아가다가,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아가
하느님과 하나 되는 사건!
그것이 우리의 죽음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못난 인간이 하느님과 완전히 하나 되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남은 인생은 하느님과 더 친해지고
하느님을 더 잘 닮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은 인생은 하느님께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들은
기쁘고도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보다, 하느님과 친해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앞 서 가신 선배 신부님들과 수도자들,
열심한 교우분들은 분명 이렇게 살다가
하느님 품 안에 안기셨을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분들을 잘 위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분이 끝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과 위로의 주 하느님!
세상을 떠난 모든 사제들과 수도자들, 우리 교우들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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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성당에는 1899년 이래 초대 조선 교구장이신 소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포함한 4위의 주교님
65위의 사제, 2위의 신학생 .그리고 1위의 치명자등이 안치되어있다.
유럽풍의 용산성당의 전경과 성직자묘지 앞에서 연도 바치는 교우들.
주님, 세상을 떠난 모든이들에게 평화의 안식을 누릴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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