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2005. 2. 23. 오후 11:07:41

글자

지난주 보좌 신부님이 사순특강에서 본인의 상본에 나오는 지거괴더 신부님의 십자가의 길중에서 5처의 '시몬과 함께 십자가를 짐' 그림을 보여 주셨었습니다. 그때 기억이 나서 지거괴더의 십자가의 길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제1처 사형선고 받으심

넘겨주다

이 사람을 보라!

예수께서는 가야파와 빌라도 앞에 서 있다.

그분께서는 종교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의 맷돌 사이에서 가루가 될 밀알이셨다.

가야파는 토라 두루말이를 꽉 붙잡고 있는데, 그것이 그에게 성스러운

하느님의 율법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걸치신 붉은 옷은 왕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고난 받는 야훼의 종으로서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긴다" (이사 50,5-6)는 말씀처럼

내맡겨진 자세이다.

 

 

 

제 2 처 십자가 지심

끌어안음

"그분은 몸소 십자가를 지셨다."

채찍질 때문에 피를 흘리는 그의 손이 십자가를 잡고 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예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다.

 

 

 

제 3 처 첫번째 넘어지심

 

 

 

제 4 처 성모님을 만나심

아무말이 없으심

 

 

 

제 5 처 시몬이 함께 십자가를 짐

유일한 아들

"그들은 그로 하여금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얼굴 둘, 몸 둘, 손 넷, 무거운 들보 하나가 있다.

그들은 짓누르는 십자가 들보를 어깨에 짊어졌다.

팔 하나는 공동의 짊을, 하나는 상대방을 감싸고 있다.

두 얼굴은 얼마나 닮았는가.

그들은 함께 하는 일로 서로 얽혀있는 살아있는 십자가이다.

"나는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지게 되었지만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기있는 내 형제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와 연대하겠습니다.

우리 둘이 서로 부축하며 짊어질겁니다."

"나는 인간들의 고통에 너무 깊이 관여했다.

사랑과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그들은 유죄판결을 내렸다.

나는 이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가겠다."

예수께서는 고통당하는 인간 '십자가를 진 사람'과 연대한다.

그는 나를 받쳐주고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짊어질 것이다.

그는 인간들의 형제이다.

 

 

 

제 6 처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림

진정한 이콘

베로니카, 그녀의 수건에 고난받는 자의 얼굴이 찍혔다.

베일 뒤의 여인의 눈은 끌려가는 예수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 앞에는 무릎을 꿇고 빈 대접을 들고 구걸하는 흑인이 있다.

온정에 대한 간청이 구체적으로 필요한 곳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은 계속된다.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제 7 처 두번째 넘어지심

당신과 더불어

 

 

 

제 8 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돌보기

 

 

 

제 9 처 세번째 넘어지심

아멘!

 

 

 

제 10 처 옷 벗김을 당하심

누구의 것?

"그들은 내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

"위에서 아래까지 이은 곳없이 통으로 짠" 예수의 하얀 속옷은

나눌수 없는 교회의 일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묘사된 ''성의''에 흐트러지고 쪼개지는 십자가 형태로 찢어진 틈이 보인다.

예수님 유언의 본뜻은 십자가의 그림자 속에 제시된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간들의 어려움과 다시 섞이지 않는다면,

예수의 십자가는 오히려 그 해방시키는 구원의 힘을 죽이게 될 것이다.

 

 

 

제 11 처 십자가에 못박히심

마주보고

"그 곳에서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십자가의 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예수님의 눈.

팔다리를 뻗고 십자가에 누워 잿빛하늘을 올려다보게 한다.

그 하늘에서 죽은 태양이 그를 내려다본다. 얼굴들이 내려다 본다.

"그들은 자신들이 찌른 사람을 바라볼 것이다."

 

 

 

제 12 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대학살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십자가에 처형된 이 가련한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로

하느님이 심지어 가장 가난한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의 삶에

얼마나 불멸의 사랑을 품고 있는지를 계시해준다.

그는 이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 삼는다.

하느님의 아들과 딸들을 제외시키고

그자녀들을 죽이는 체제 속에서는 더 이상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다.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제 13 처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예수의 등에는 노아의 홍수 때, 방주로 돌아온 비둘기처럼

부리에 올리브 잎을 물고 있다.

이것은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일깨운다.

그의 죽음이 세상을 구원하였다는 표지이다.

마리아의 초록색 외투는 말씀에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교회의 표상이다.

즉 절망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교회 구성원들의 믿음을 말해주고 있다.

 

 

 

제 14처 무덤에 묻히심

누에고치

"그러고 나서 그는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놓았다."

수건으로 싸매어진 예수가 있다.

캄캄해야 할 무덤 안에서 이 사람의 몸은 빛을 내고 있다.

죽은 자의 머리 위쪽에서는 부활의 신비의 빛이 강렬하게 반짝이고,

조심스러운 표징 속에서 부활의 신비를 볼 수 있다.

약한 빛이 앞쪽으로 굴려진 돌 사이를 통해 무덤 안으로 스며든다.

첫 번째 연한 밝음은 떠오르는 태양의 전령이다.

죽음은 더 이상 삶의 끝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시작이다.

믿는 사람 누구에게나 새 날의 시작인 것이다.

부활절 아침의 예고는 모든 무덤을 넘어서는 것을 가리키고,

또한 우리를 잠들게 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을 암시한다.

 

 

 

그림: 지거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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