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던 책, 신 달자(엘리사벳)님이 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를
아는 아우의 딸에게 부탁하여 구입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 내려 가며 가슴이 메여오고 눈물이 흐른다.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울고도 부족하여 휴지통을 아예 들어다 놓고는
콧물 눈물을 흘려가며 읽어 내려가다가는 책을 덮어 버리고 누웠는데도 자꾸 눈물이 흘러 베게를 적신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나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나이 서른다섯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병수발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엘리사벳님이 너무나도 나의 지나온 세월과 흡사하여
동병 상련이랄까, 그녀의 아픔이 나의 아픔 같아서 차마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추석 한가위 전이어서 추석준비도 해야 하고 성당에서의 이런저런일로
바쁘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이 오면 퉁퉁 부운 얼굴을 보고 무슨일인가 놀라기도 할까봐서
명절지나고 아이들 다 가고 나면 마저 읽으리라 했었다.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다시 책을 들었다.
내 나이 마흔 하나에 마흔 여덟의 남편은...
25년전, 안개 내리던 여름 새벽에 벌건 선지덩어리를 쏟으며 마당에 쓰러졌었다.
병명은 위궤양 파열이었다.
사람의 몸은 수분이 60~70프로라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그렇게 많을 줄은 짐작도 못했었다.
택시를 불러 병원 가는 동안에 차안을 더럽힐까봐 커단 수건으로 입을 틀어 막다 시피하고
성모병원으로 달렸었다.
새벽이라 응급실에 눕혀 놓으니 다시 또 시뻘건 피를 쏟아댄다.
어떻게 검사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급하게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위를 완전히 드러내고 식도와 작은 창자를 이어주는 대수술을 받았다.
사람의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내려다 보고 있는 동안에 풍선처럼 금방 부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아들아이가 놀라 얼마나 덜덜 떠는지 바지가랑이가 마구 흔들리던 가슴아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일 년후에, 수돗가에서 넘어지며 뒤머리가 깨져
또 다시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식사를 하려면 먼저 뜨거운 물을 마셔서 식도를 고무호스처럼 부드럽게 해 주어야만
음식물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음식물이 목에 걸려 파랗게 질리곤 했었다.
차마 그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밥상을 차려놓곤 뒷산으로 피하곤 했었다.
그러고도 남편은 10년 4개월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힘들고 곁에 있는 가족들도 힘들고...
그 힘들고 아픈 고통의 나날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그런데 엘리사벳님은 24년...
그리고도 시어머님이 9년...
그렇담 그녀는 32년이라는 고통의 시간을...
그녀가 처음 들어간 혜화동 성당에서의 울음의 시간....
나는 온 몸으로 울던 그때의 그녀와 함께 울었다.
원래도 까탈스런 성격의 남편이 어찌나 힘들게 하던지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어느날이었다.
지금의 주교좌 성당인 의정부 2동 성당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간 성당에서는 참회예절이 행해지고 있었다.
성당안은 이미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컴컴한 성당안에서 신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리지는 않고
성가책을 무릎에 놓고 고개를 숙이고 앉는 순간,
후둑 후둑~ 우박이 쏟아지듯
성가책위로 쉴새 없이 떨어지던 눈물...
지금 생각하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참회와 반성을 해서였는지 내 처지가 너무도 비참해서였는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이 부끄러웠다.
겨우 십 년이었는데...
시어머님도 안 계셨었는데...
아이들은 다 자랐었는데...
그녀의 아이는 막내가 세 살이었지만 우리 막내는 중2년이었는데...
그녀는 서른 다섯밖에 안된 나이였지만 내 나이는 그녀보다 여섯살이나 더 많았었는데...
그리고 유방암으로 수술대 위에 눕혀지지도 않았었는데...
32년의 3분의 일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지고 갈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는데...
그때는 나에게만 주어지는 모진 형벌 같아서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러시는가 너무하시다는 원망도 했었다.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 시련을 주심으로...
그럼으로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된 것이라는 것을....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를
아는 아우의 딸에게 부탁하여 구입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 내려 가며 가슴이 메여오고 눈물이 흐른다.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울고도 부족하여 휴지통을 아예 들어다 놓고는
콧물 눈물을 흘려가며 읽어 내려가다가는 책을 덮어 버리고 누웠는데도 자꾸 눈물이 흘러 베게를 적신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나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나이 서른다섯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병수발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엘리사벳님이 너무나도 나의 지나온 세월과 흡사하여
동병 상련이랄까, 그녀의 아픔이 나의 아픔 같아서 차마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추석 한가위 전이어서 추석준비도 해야 하고 성당에서의 이런저런일로
바쁘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이 오면 퉁퉁 부운 얼굴을 보고 무슨일인가 놀라기도 할까봐서
명절지나고 아이들 다 가고 나면 마저 읽으리라 했었다.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다시 책을 들었다.
내 나이 마흔 하나에 마흔 여덟의 남편은...
25년전, 안개 내리던 여름 새벽에 벌건 선지덩어리를 쏟으며 마당에 쓰러졌었다.
병명은 위궤양 파열이었다.
사람의 몸은 수분이 60~70프로라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그렇게 많을 줄은 짐작도 못했었다.
택시를 불러 병원 가는 동안에 차안을 더럽힐까봐 커단 수건으로 입을 틀어 막다 시피하고
성모병원으로 달렸었다.
새벽이라 응급실에 눕혀 놓으니 다시 또 시뻘건 피를 쏟아댄다.
어떻게 검사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급하게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위를 완전히 드러내고 식도와 작은 창자를 이어주는 대수술을 받았다.
사람의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내려다 보고 있는 동안에 풍선처럼 금방 부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아들아이가 놀라 얼마나 덜덜 떠는지 바지가랑이가 마구 흔들리던 가슴아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일 년후에, 수돗가에서 넘어지며 뒤머리가 깨져
또 다시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식사를 하려면 먼저 뜨거운 물을 마셔서 식도를 고무호스처럼 부드럽게 해 주어야만
음식물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음식물이 목에 걸려 파랗게 질리곤 했었다.
차마 그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밥상을 차려놓곤 뒷산으로 피하곤 했었다.
그러고도 남편은 10년 4개월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힘들고 곁에 있는 가족들도 힘들고...
그 힘들고 아픈 고통의 나날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그런데 엘리사벳님은 24년...
그리고도 시어머님이 9년...
그렇담 그녀는 32년이라는 고통의 시간을...
그녀가 처음 들어간 혜화동 성당에서의 울음의 시간....
나는 온 몸으로 울던 그때의 그녀와 함께 울었다.
원래도 까탈스런 성격의 남편이 어찌나 힘들게 하던지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어느날이었다.
지금의 주교좌 성당인 의정부 2동 성당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간 성당에서는 참회예절이 행해지고 있었다.
성당안은 이미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컴컴한 성당안에서 신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리지는 않고
성가책을 무릎에 놓고 고개를 숙이고 앉는 순간,
후둑 후둑~ 우박이 쏟아지듯
성가책위로 쉴새 없이 떨어지던 눈물...
지금 생각하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참회와 반성을 해서였는지 내 처지가 너무도 비참해서였는지...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이 부끄러웠다.
겨우 십 년이었는데...
시어머님도 안 계셨었는데...
아이들은 다 자랐었는데...
그녀의 아이는 막내가 세 살이었지만 우리 막내는 중2년이었는데...
그녀는 서른 다섯밖에 안된 나이였지만 내 나이는 그녀보다 여섯살이나 더 많았었는데...
그리고 유방암으로 수술대 위에 눕혀지지도 않았었는데...
32년의 3분의 일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지고 갈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는데...
그때는 나에게만 주어지는 모진 형벌 같아서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러시는가 너무하시다는 원망도 했었다.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 시련을 주심으로...
그럼으로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된 것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