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여행하면 이 나라의 저력에 놀라게 됩니다. 지구촌의 중심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절감하게 되죠.
1504년 오늘(11월 26일)은 이런 기틀을 세운 이사벨라 여왕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우리의 세종대왕처럼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이사벨라는 프랑스어로 이사벨, 영어로는 엘리자베스입니다.
이사벨라는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3살 때 아버지가 죽고 이복 오빠 엔리케 4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박해를 받습니다. 세고비야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0세 때에는 공작으로 강등됩니다.
이후 귀족들이 이사벨라의 남동생 알퐁소를 대표로 내세워 엔리케와 대립합니다. 하지만 엔리케는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가 나중에 알퐁소를 독살합니다.
귀족은 이사벨라를 대표로 내세우지만, 이사벨라는 천추의 한을 삭히고 엔리케와 타협을 하며 때를 기다립니다. 엔리케가 자신의 딸 후안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해도 때를 기다립니다.
이사벨라는 엔리케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웃 아라곤 왕국의 황태자 페르디난트와 전격적으로 결혼합니다. 그리고 엔리케가 죽자 재빨리 움직여 후안 지지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를 차지합니다. 그는 남편과 함께 스페인을 공동통치하며 중앙집권과 경제, 사법개혁을 이룹니다. 특히 가톨릭교의 확대에 크게 기여해 로마 교황청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왕권을 확립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1492년 두 가지로 세계사를 다시 쓰게 만듭니다.
하나는 이슬람이 지배하던 그라나다를 점령함으로써 스페인의 실질적 통일을 이룬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군대의 캠프가 불타자 다시 지었는데, 그 이름이 현대 차 이름으로도 유명한 산타페입니다. 스페인어로 ‘성스러운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두 번씩이나 그라나다 왕을 잡았다 풀어주며 완전 점령 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라나다의 왕은 이슬람교를 계속 믿을 수 있다는 ‘지켜지지 못할 권리’를 약속받고 항복합니다. 이사벨라는 ‘물의 궁전’ 알함브라 궁전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했고, 사후에는 유언에 따라 그라나다의 왕실예배당에 묻혔습니다.
이 해의 또 하나 업적은 콜럼버스를 후원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왕에게 인도 항로 개척을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았습니다. 이사벨라는 그를 후원해 세계사를 바꿉니다. 그녀는 콜럼버스가 약속한 황금을 갖고 오지 못해 문책을 당했을 때 신하들을 설득해 또 한번의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그녀는 누가 뭐래도 세계사 최고의 여걸입니다. 세계사 최초의 ‘엔젤 투자가’였고 철저한 전략가이면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사벨라는 콜럼버스에게 “내 백성인 인디언도 하나님의 귀한 창조물이니 스페인인과 마찬가지로 정의와 공정함으로 대하라”고 신신당부했고 똑같은 말을 유언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딸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시키면서도 바느질을 가르쳤습니다. 자신도 남편의 옷을 직접 만들어 주었습니다.
뜻이 크고 목표가 뚜렷하면 기다림도 기쁜가 봅니다. 그 속에서 감사함과 사랑이 살아 넘치게 되는 듯합니다. 이사벨라가 떠난 날 스스로 묻게 됩니다. 삶이 초조하고 빠듯한 것은 삶의 목표가 희미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정말 아이들에게 큰 뜻과 목표에 대해 잘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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