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2012. 2. 15. 오전 6: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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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간 수요일(2/15)







 
    말씀의 초대
    하느님 말씀을 그저 듣기만 하고 그에 따라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느님 말씀이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제1독서). 눈먼 이가 사람들을 보고 처음에는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았듯이,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안 것은 아니었다. 눈먼 이가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듯이,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에야 예수님을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복음).
    제1독서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1,19-27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누가 스스로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일행은 갈릴래아 호숫가의 벳사이다 항구에 도착합니다. 벳사이다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집이 있는 곳이며 필립보가 이곳 출신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눈먼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고쳐 주십사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로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으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시력이 점차 회복되어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됩니다. 눈먼 이가 보게 되었다는 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표입니다. 눈먼 이가 점차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믿음이 약한 제자들의 눈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차츰 뜨이게 될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한 라삐가 제자들에게, “새벽은 언제 오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제자 하나가, “저 멀리 한 동물이 있는데 그 동물이 양인지 개인지 알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라삐가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또 다른 제자가 답을 했습니다. “멀리 있는 나무를 보고 그 나무가 무화과나무인지 배나무인지 알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자 라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렇게 몇 명이 답을 했지만 모두 틀렸다고 하자 제자들이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새벽은 언제 옵니까?” 그러자 라삐는,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가 너의 형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새벽이란다.” 하였답니다. 새벽은 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백태가 벗겨지는 순간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새벽은 또한 메마른 내 마음에 사랑이 파릇하게 싹트는 때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남이 아닌 내 형제요 자매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 새벽은 주님에 대한 믿음의 눈이 뜨이기 시작할 때 찾아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분을 보리라 - Ephphatha
  
 

댓글 1

  • 2012년 2월 15일 오후 11:57

    나는 얼마나 눈을 뜨고 있으며 얼마나 제대로 알아보고 있을까??생각해 봅니다..눈을 뜨며 제대로 알아 본다는 것의 잣대는 내안의 진심과 인내, 온유와 겸손으로 남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기도 할 것입니다...그런 진정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며 하느님을 알아 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뿌옇기도, 어둡기도 한 사랑 속에서 당신을 찾아 헤매는 제게 조금씩 더 눈을 뜨게 해주실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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