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성숙함에 대한 시험

2010. 7. 28. 오전 6:20:06

글자





    우리의 성숙함에 대한 시험
    만일 탕자 -그는 우리 각자 안에 있습니다-가 집을 떠나기 전에 자기 아버지를 잘 몰랐다면 돌아와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될 것이고, 마침내 드러난 아버지의 자비의 무한한 선물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인식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가장 불행한 처지에 있을 때 당신을 가장 잘 드러내신다고 나는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바벨탑에서 자신들의 하느님을 다시 인식하게 되고 그 끔찍한 고독과 어둠 속에서 그분에게 참된 희망을 두게 됩니다. 그 희망은 얼마 안 되는 '남은 자'들을 일으켜 세워 마침내 메시아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합니다. 그 메시아 시대는 우리도 맞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각자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나약함을 통해 하느님의 참된 신비를 발견했듯이 우리도 같은 길 위에서 그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천상도시의 계획과 최대한 유사한 길을 가기 위해 지상도시에서 행해야 하는 여정은 우리의 참된 모습을 드러나게 할 것이며, 우리의 성숙 또는 미성숙에 대한 시험과 같을 것이며 항상 더 나은 것을 향한 추진력 또는 진리의 부름과 같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지상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인 신적 생명, 곧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의 생명의 원천을 인간적 특성을 지닌 우리의 신비 안에서 찾고자 하는 갈망과 같을 것입니다. 유토피아라구요? 분명 유토피아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제시하시는 모든 것은 유토피아로 분류될 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하느님은 사랑이예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