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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전적으로 당신의 방법인 결코
반복된 적이 없는 말씀과 모든 개념을 추월하는
개념을 통해서 당신을 내게 나타내 보이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에서는 능동적 자세보다는
수동적 자세가 더 요구됩니다.
즉 말보다는 침묵이, 연구보다는 훔숭이,움직임보다는
수용할 자세가, 이성보다는 신앙이 더 요구됩니다.
진실한 기도는 하늘이 땅에, 성부께서 성자께,
신랑이 신부에게, 가지신 하느님이 갖지 않은 인간에게,
충만하신 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주는 은총의 결실입니다.
그러나 이 충만하신 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가까이 다가서면 그만큼 더 무지의 한계가 없어집니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이 우리 안에 증가하는 것을
느끼게 될 때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서서히 증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인식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에 대한 인식이 감미롭고 신비롭고
위격적이고 난해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마디도 첨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나타내 보이겠다."
(요한 14,21 참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시는 당신 자신에 대한
이'게시'는 소위 관상기도의 혼이요 열매요 숨결입니다.
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참된 예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 예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곧 하느님 아버지이신 당신을 알고
당신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참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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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 까레또의 매일 묵상 중에서
♬ 주여임하소서-부산가톨릭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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